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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이란-이스라엘 관계


이란인들이 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란인들이 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공공연히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는데요. 더불어 이란의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 살펴보겠습니다.

“중동의 앙숙, 이란과 이스라엘”

오늘날 중동에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인 나라를 들라면, 이스라엘과 이란을 꼽을 수 있습니다.

중동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사와 종족, 종교적 배경 등 여러 이유로 갈등과 마찰을 빚는 나라가 여럿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은 드러내 놓고 상대가 자국의 주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란은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위협하곤 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경계하며 외교적 힘을 앞세워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왜 싸우는 걸까요? 얼핏 봐서는 그 이유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처럼 이스라엘과 영토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이란, 이 두 나라는 흔히 국가 간 마찰의 대표적 이유가 되는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 나라는 육로로 무려 2천300km 넘게 떨어져 있고요. 그 사이에는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같은 나라가 있습니다.

두 나라는 전쟁을 벌인 적도, 경제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지금 중동에서 가장 앙숙 관계, 말 그대로 앙심을 품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입니다.

놀랍게도 이란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서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던 나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두 나라가 지금은 등을 돌려 적으로 여기고 있는 겁니다.

“제1시기: 이스라엘 등장과 이란의 인정”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주요 사건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시간에는 크게 3단계로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공식 선언한 1948년부터 1953년 이란에서 팔레비 왕조가 다시 권력을 잡기 전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시기 두 나라 관계는 양면성을 가진 일종의 탐색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란은 유엔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중재하며 내놓은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에도 반대했고, 이스라엘의 유엔 가입에도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란은 튀르키예의 뒤를 이어 1950년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데요.

이란은 같은 이슬람권 국가이긴 하지만 팔레스타인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과는 전혀 다른 민족인 데다, 역사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아랍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뿌리부터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제2시기: 우호와 연대 관계”

두 번째 시기는 1953년부터 1979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벌어지기 전까지로, 이때만큼 양국이 우호적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란은 친미, 친서방 성향의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요. 그 당시 이란은 오늘날과는 달리 세속주의를 추구하고 있었고, 이란의 청년들은 미국의 음악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도 크지 않았고, 양국 관계는 크게 개선됐습니다. 양국 간에 비행기도 오갔고, 심지어 두 나라는 함께 미사일 개발 협력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제3시기: 이란 혁명 후 대립과 갈등의 시간”

세 번째 시기는 1979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 정부가 들어선 후 지금까지입니다.

1979년 친미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들어선 이란 혁명정부는 반미, 반이스라엘을 주창하고 이스라엘의 합법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외교적, 상업적 관계를 단절하는데요. 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양국 간에 은밀한 물밑 거래, 협상은 존재했습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는데요.
이 때 이스라엘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지원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도운 것은 중동의 복잡한 역학 관계 때문입니다.

당시 이라크는 핵 개발을 추진하며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었는데요. 이스라엘은 이를 자국의 안보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이란도 이라크의 원자로 건설이 핵무장을 위한 것으로 의심했는데요. 여기에 양국의 입장이 일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에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라크 원자로를 폭파하는 일명 ‘오페라 작전’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식으로 양국의 은밀한 관계는 간헐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반미, 반이스라엘을 기치로 한 이란의 대외 기조는 변함이 없고요.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이란의 태도”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단행하면서 중동의 안보가 다시 큰 격랑에 휩싸였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갈등이 주변국의 개입을 야기해, 과거 역사에서 몇 차례 보여진 것처럼 이른바 ‘중동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와 위기감입니다.

이미 시리아, 레바논의 무장 세력들은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측면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들 세력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란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마스를 물질적, 재정적으로 지원해 온 이란은 연일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미국을 규탄하면서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요. 만일 이란이 이번 사태에 개입한다면 이는 사실상 확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란이 가자지구에 실제 병력을 투입하는 식으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금 이란의 국내 사정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요. 이란은 지난해 발생한 마흐사 아미니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반정부 여론과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2021년부터 시작된 미국 등 서방과의 핵 합의 복원 협상도 지지부진한 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은 더 깊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새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 국가들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도 이란으로서는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진행되던 평화 구축 노력, 외교 관계 복원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난하고 있고, 다시 틈새가 벌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완전히 섬멸하겠다며 대대적인 공습과 지상전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 이란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신임 총리입니다.

최근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신임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피초 총리는 다만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피초 총리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슬로바키아의 대표적 친러시아 성향 정치인인 그는 선거 유세에서 우크라이나에 단 한 발의 탄약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습니다.

피초 신임 총리는 지난 9월 실시된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중단, 독립적인 외교 정책 수립 등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그는 2006년부터 2010년,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총리를 지낸 슬로바키아의 베테랑 정치인입니다. 2014년 대통령 선거 때 출마했다 결선투표에서 고배를 마신 적도 했습니다.

피초 총리는 1964년생, 59살입니다.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사회주의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 해체 후 1993년,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됐습니다.

피초 총리의 어린 시절 꿈은 정치인, 스포츠 기자, 고고학자 등 여러 가지였다고 하는데요. 그는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코메니우스대학에서 법을 공부했습니다.

1986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했고요. 1989년 벨벳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붕괴한 후 그는 공산당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총선에서 승리해 의회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년째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신임 총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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