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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무기거래 러시아 화물선, 미 정부 제재 선박...AIS 끄고 추적 회피


지난달 12일 러시아 선적 앙가라(Angara)호가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 동부 두나이항에 정박한 모습이 포착됐다. 미국 백악관이 13일 공개한 사진.
지난달 12일 러시아 선적 앙가라(Angara)호가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 동부 두나이항에 정박한 모습이 포착됐다. 미국 백악관이 13일 공개한 사진.

북한 라진항에서 러시아로 무기를 운송한 화물선이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선박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를 오갈 때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상태로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북한에서 러시아로 무기를 운반한 선박은 러시아 선적의 앙가라(Angara)호입니다.

8천811t급 화물선인 앙가라호는 지난 5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과 국무부의 제재 목록에 오른 선박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을 이유로 앙가라호와 이 화물선을 소유한 ‘M리싱’사를 독자 제재했습니다.

불법 행위로 미국 정부의 제재 목록에 오른 선박이 불과 3개월 만에 북한 해역에 진입해 또다른 제재 위반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 1718호 등 다수의 대북 결의를 통해 북한의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VOA가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ISIS) 자료에서 앙가라호의 등록 정보를 확인한 결과, 실제로 앙가라호는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M리싱 사 소유로 나타났습니다.

앙가라호의 등록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M리싱 사가 등록 소유주로 등재돼 있다. 출처=IMO GISIS
앙가라호의 등록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M리싱 사가 등록 소유주로 등재돼 있다. 출처=IMO GISIS

앙가라호는 지난 2018년 오션에너지호라는 이름으로 한국 마산항에 입항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국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오션에너지호는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마산에 도착한 뒤 약 이틀 후 싱가포르로 떠났습니다. 당시 오션에너지호에는 외국 국적의 선원 23명이 탑승했습니다.

또한 선박의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아태지역항만국 통제위원회 자료에는 앙가라호가 2018년 중국 저우산항에서 안전검사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는데, 다만 당시 소유 회사는 M리싱이 아닌 ‘마린 트랜스 쉬핑’으로 기재됐습니다.

마린 트랜스 쉬핑은 미국 정부가 앙가라호 등을 제재할 당시 제재 목록에 추가한 회사입니다.

물론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 달리 북한과 러시아 등 제 3국이 미국의 독자 제재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재 대상자들의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는 것은 물론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금지되면서 사실상 국제무대에서 퇴출당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입니다.

이는 앙가라호와 M리싱, 마린 트랜스 쉬핑 등과 거래를 하는 제 3국 개인이나 회사가 ‘세컨더리 보이콧’ 즉 미국의 2차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VOA는 국무부에 미국 제재 대상인 앙가라호가 북러 무기 거래에 관여한 것에 대한 논평을 요청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 미국 백악관은 지난 13일 북한이 컨테이너 1천개 분량의 군사장비와 탄약을 러시아에 제공한 과정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불법 행위에 가담한 2척의 선박 중 1척을 앙가라호라고 밝혔습니다.

13일 미국 백악관은 "북한은 러시아에 컨테이너 1천개 이상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면서, 컨테이너들이 선박과 열차를 통해 이동하는 정황이 담긴 사진 3장을 공개했다.
13일 미국 백악관은 "북한은 러시아에 컨테이너 1천개 이상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면서, 컨테이너들이 선박과 열차를 통해 이동하는 정황이 담긴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VOA는 14일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북러 무기거래 현장인 라진항에 지난 8월 이후 대형 선박이 최소한 4척 입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앙가라호는 최근 약 2달 동안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상태로 운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VOA가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자료를 확인한 결과 앙가라호는 지난 8월 10일 러시아 오호츠크해를 끝으로 더 이상 AIS를 통한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선박 앙가라호의 마지막 포착 지점. 지난 8월을 끝으로 위치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자료=MarineTraffic
북한에서 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선박 앙가라호의 마지막 포착 지점. 지난 8월을 끝으로 위치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자료=MarineTraffic

AIS 신호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건 운항을 하지 않고 있거나 AIS를 끈 채 운항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공개한 위성사진에서 운항 장면이 포착된 만큼 앙가라호가 의도적으로 AIS를 끈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AIS는 선박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외부에 알리는 장치로,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 수역을 운항하는 선박들이 AIS를 상시 켜둔 상태로 운항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하지만 앙가라호는 지난 8월 이후 AIS를 끈 채로 운항하며 자신의 위치 정보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나타사 브라운 IMO 언론정보 서비스 담당관은 16일 앙가라호가 AIS를 끄고 운항 중인 것과 관련한 VOA의 질의에 “선박이 항해 중이거나 정박 중일 때 AIS를 항상 작동시켜야 한다는 지침은 매우 명확하다”고 밝혔습니다.

[브라운 담당관] “The guidelines are very clear - AIS should always be in operation when ships are underway or at anchor. If the master believes that the continual operation of AIS might compromise the safety or security of his/her ship or where security incidents are imminent, the AIS may be switched off.”

그러면서 “선장이 AIS의 지속적인 작동이 선박의 안전 혹은 보안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보안 사고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AIS를 끌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적 출몰처럼 선박의 보안이 위협받을 때 AIS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설명인데, 이는 러시아와 북한 해역을 왕래한 앙가라호에는 적용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대북제재 위반 선박이 AIS를 끄는 사례는 과거는 물론 최근에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VOA는 북한 유조선 2척이 중국 해역에 출몰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선박은 중국 해역에 진입하며 위치 정보를 외부로 드러낼 뿐 중국 해상을 벗어날 땐 곧바로 AIS를 껐습니다.

또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발행한 보고서에서 다이아몬드8호와 호콩호, 뉴콘크호, 수블릭호 등이 2021년 북한 서해에서 불법 선박간 환적을 하는 장면이 위성사진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AIS 기록을 통해 이들의 운항 기록을 살펴보면 대부분 2020년을 끝으로 더 이상 항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위성사진에선 운항 기록이 확인되지만 AIS를 통한 기록이 없다는 건 의도적으로 AIS를 끈 상태로 운항을 지속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2017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2397호는 북한 깃발을 달거나 북한이 운영하는 선박들이 안보리 제재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AIS 의무 조항을 무시하는데 우려한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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