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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우크라이나 전쟁 1년과 북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맞은 24일 크이우 외곽의 우크라이나 전사자 묘소를 찾은 시민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맞은 24일 크이우 외곽의 우크라이나 전사자 묘소를 찾은 시민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개전 1주년을 맞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질서뿐 아니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상황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과 북한의 셈법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1주년을 나흘 앞둔 2월 20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1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는 건재하다. 민주주의도 건재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 세계도 함께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바이든 대통령] ”One year later Ukraine stands. Democracy stands. The Americans stand with you, and the world stands with you.”

바이든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5억 달러의 추가 군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은 275억 달러에 달하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년간 추진해 온 외교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2020년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당초 추구했던 것은 중국 봉쇄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중국을 ‘21세기 최대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일본, 한국, 호주, 인도, 필리핀 등을 규합해 중국을 봉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중국에 더해 러시아 봉쇄까지 추진했습니다.

미국의 중-러 봉쇄망은 태평양(한국, 일본, 타이완, 호주, 필리핀)과 인도양(인도, 이스라엘)을 넘어 대서양(북대서양조약기구)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에워싸는 초대형 포위망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러 포위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해 7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나토 30개 회원국 정상은 물론 회원국이 아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참석해 미한일 3국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한국과 일본, 호주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시킨 것은 중국 봉쇄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국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유명환 전 장관은 국제 정세가 신냉전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한국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명환 전 장관] ”옛날에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었는데 지금은 민주주의와 독재이고,푸틴과 시진핑이라는 전체주의 성향의 지도자로 인해 우리가 그런 상황을 원한 게 아니라도 끌려간 거죠.”

나토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략개념’을 완전히 수정했습니다.

그동안 나토는 러시아를 ‘잠재적 전략적 파트너’(potential strategic partner)로 규정해 왔는데 이를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most significant and direct threat)으로 바꿨습니다.

나토는 또 “베이징의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이 서방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이 되고 있다”며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s)으로 규정했습니다.

국제 질서가 신냉전 구도로 재편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도 ‘편가르기’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즉, 북쪽에는 중국-북한-러시아가 참여하는 북방 삼각관계가, 그리고 남쪽에는 미국-한국-일본의 남방 삼각관계가 형성돼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의 전략적 셈법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 비핵화를 한층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1991년 옛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세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핵탄두 1천700여개와 170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12월 우크라이나는 ‘유럽안보협력기구’ (OSCE) 회의에서 ‘안전보장양해각서’에 서명했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독립과 영토 보전을 약속 받은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같은 안전보장은 한갖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본 북한 수뇌부가 핵을 포기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층 더 굳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핵무기가 없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현저한 열세에 있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더 커졌을 겁니다.”

북한 수뇌부는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성된 신냉전 구도에 편승해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고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지난해 3월 2일 유엔은 긴급 특별총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놓고 찬반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이 표결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 141개국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중국과 인도, 이란 등은 기권했습니다.

북한은 이 결의안에 반대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북한과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 러시아 5개국뿐이었습니다.

북한의 이같은 외교적 도박은 두 달 뒤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5월 26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발사를 규탄하며 추가적인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해 이 결의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북한은 더 이상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지난해 ICBM 8회를 비롯해 40회에 걸쳐 적어도 65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북한 역사상 한 해 가장 많은 미사일을 쏜 겁니다.

북한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13일 북한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괴뢰정권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을 승인했습니다.

이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돈바스 친러시아 공화국 간에 상당한 경제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난 11월에는 러시아 용병집단인 바그너그룹에 포탄과 보병용 미사일 등 군수물자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북한이 러시아에 노동자를 송출할 경우 상당한 외화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노동자 파견 협상은 이미 합의가 됐구요, 보도된대로 10만명의 노동자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할 경우 연간 10억 달러의 현금이 생기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에 새로운 탈출구, 기회가 생겼다고 봐도 무방하죠.”

문제는 미-러,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북한 핵 문제를 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중국의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이 중국에도 이익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같은 신냉전 시대에 중국이 미국에 협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상황에서 왜 중국이 미국을 돕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We are containing China, why China help us to North Korea?”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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