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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세상보기] '발로 뛰는 중고차 딜러' 탈북민 이유미 씨


[탈북민의 세상보기] '발로 뛰는 중고차 딜러' 탈북민 이유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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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한국에 정착해 중고차 딜러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째가 다 되어가는 한 탈북민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중고차 딜러이자 탈북 유튜버로 활동하는 이유미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지난 2006년 한국에 정착해 중고차 딜러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째가 다 되어가는 한 탈북민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중고차 딜러이자 탈북 유튜버로 활동하는 이유미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유튜브 현장음]

중고차 영업원인 탈북민 이유미 씨가 단골에게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중고차를 출고하기에 앞서 성능을 점검하고 경정비하고 있는데요.

[녹취: 유튜브 현장음]

중고차 딜러 10년 차인 탈북민 이유미 씨. 중고차 딜러는 중고차를 파는 영업사원을 뜻하는데요. 이제 이유미 씨는 단골이 줄을 설 정도로 베테랑 딜러로 불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해설 강사로 일하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장사를 했는데요. 어떻게 한국에서 중고차 딜러가 됐을까요?

[녹취: 이유미 씨] “일단 북한 사람들은 자동차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저도 이제 차를 좋아하다 보니까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북한에 있을 때부터 제가 워낙 장사를 잘했었고 중고차 장사를 해보지 않겠느냐, 주변에서 누가 아는 사람이 권유해서 시작했는데 사실 중고차 딜러를 하겠느냐 하면 제가 그런 건 모르니까 안 하겠다, 이랬을 거예요. 근데 장사라는 그 말이 되게 직관성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그래서 한 번 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눈물, 콧물 많이 뺐죠.

중고차 딜러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입니다. 중고차 관련 일을 하기 전에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신차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는데요. 이때 이유미 씨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좀 더 다양한 차를 팔고 싶다는 생각에 중고차 일을 배우게 됐고요. 중고차 판매회사에 취직해 1년 만에 한 달에 25대의 차를 판매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중고차 딜러가 자기 적성에 잘 맞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녹취: 이유미 씨] “이게 중고차는 기계잖아요. 차는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손님들에게 중개하다 보면 일단 내가 모르는 건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에게 배우기도 했지만, 중고차 시장에는 법적으로 성능 검사를 맡게 돼 있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건강 검진이에요. 차에 대한 그 검사장이 따로 있어요. 거기를 6개월 동안 매일 커피 들고 가서 그 친구들한테 차 보는 방법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그리고 10년 전만 해도 탈북민, 여성 딜러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고 하고요. 중고차 시장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미 씨는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건 홍보였는데요. 중고차 시장 안에서도 경쟁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자기만의 차별점을 만들어야 했고요. 그렇게 이유미 씨는 주말도 반납해가며 손님을 모으기 위해 발로 뛰었습니다.

[녹취: 이유미 씨] “처음에는 광고 이런 것도 있긴 하지만 광고는 그야말로 돈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온라인 광고보다도 오프라인으로 많이 활동했었어요. 처음에, 발로 뛰어다니고 저는 10년을 넘게 주말을 쉬어본 적 거의 없고요. 그게 너무 몸에 배어있다 보니까 주말 되면 쉬어야지 하는 사람 제일 부러워요. 제일 힘들었던 때가 1년 차 때 아마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고 재밌었고 하다가 어느 정도 내가 알 것 같고 자신 있는데 팔 사람이 없잖아요. 그때 막 전단을 가지고 유동 인구가 많은 식당가도 많이 돌아다녔었고 신차 영업소에 가게 되면 ‘내 차 잘 받아주십쇼.’ 하는 차주분들이 신차 영업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도 다니고 정말 열심히 다녔는데 지치더라고, 왜냐면 그렇게 발로 뛰는 데 전화가 안 오는 거예요.”

이렇게 이유미 씨는 매일매일 차에 대해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첫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전단을 돌렸고요. 명함과 홍보물을 우편으로 부쳤습니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이유미 씨에게 첫 문의 전화가 왔는데요.

[녹취: 이유미 씨] “그 전단을 뿌리고 한 몇 달 만에 첫 전화가 왔었어요. 그때 당시에 첫 구매를 해주셨던 분이 업체 대표님이셨는데 점심시간에 제가 너무 열정적으로 전단을 계속 그 자리에 나와서 드리는 게 너무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랑 지금 진짜 VIP가 돼서 그분은 회사 차를 바꿀 때마다 전화 와서 관리해드렸는데 ‘아, 이렇게도 되는구나.’라는 희망을 가졌고...”

그렇게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까지 이유미 씨도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요. 힘들 때마다 자신이 정착한 순간,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그 어려웠던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유미 씨] “또 정말 힘들었을 때 제가 북송을 엄청나게 많이 당했어요. 근데 그런 생각은 한번 해봤어요. 내가 이렇게 지금 힘들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살면서, 중국에서 북송당했을 때 그때 힘든 거랑 지금 힘든 거랑 비교가 안 되거든요. 지금은 최소한 밥은 안 굶잖아요.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옛날을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당시 다시 우뚝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수기를 한 번 썼었어요. ‘10번의 북송’이라는 수기를 썼었는데 그때 커뮤니티 상에서 정말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거기서 제가 힘을 얻었고, ‘아 맞다. 이렇게 어렵게 자유를 찾아서 대한민국까지 왔는데 이거를 힘들다 하면 안되지.’ 거기서 제가 많이 힘을 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한번 힘을 낸 이유미 씨. 누구보다 성실히 고객을 대하고 매물을 확인하고 차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는데요. 이러한 노력의 성과일까요? 매매단지가 자체 검증 절차를 거쳐 선발하고 추천하는 딜러를 인증딜러라고 하는데 240:1의 경쟁률을 뚫고 인증딜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유미 씨] “인증딜러가 엠파크라는 매매단지에 3천 명이 넘는 딜러가 있는데 거기서 열 명을 먼저 선출했어요. 인증딜러를, 근데 그거는 내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판매 대수 데이터라든가 손님을 대하는 영업 방식이라든가 그리고 내가 그 한자리에서만 일했거든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래서 클레임이 한 번도 안 들어온 사람, 일하는 과정에 그렇게 여러 가지 조건 그리고 면접, 면접이랑 이런 거 해서 저도 될 줄 몰랐는데… 인증딜러라면 혜택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서류를 넣은 분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에서 이백몇 대 일로 제가 됐어요.”

또한 이유미 씨는 사업이 잘될수록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유미 씨] “손님에게 꼭 지켜야 하는 건 그냥 양심이에요. 중고는 잘 사도 본전이라는 말이 있어요. 중고는 그 본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게 성공이거든요. 사실 저희 쪽에서는 꼼꼼하게 보죠. 출고할 때도 그리고 손님이 돈 없는데 억지로 안 좋은 차를 좋다고… 안 팔지언정 저희는 안 좋을 차를 팔지 않아요. 절대로. 왜냐면 안 좋은 차를 팔고 나중에 시달리면서 다른 일을 못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파는 게 나아요. 다른 일에 큰 지장이 돼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이 원하는 걸 해드리자. 그러면 내가 다음 일을 하는 데 편하잖아요.”

중고차 딜러 일하며 이유미 씨는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갑니다. 지난 2019년부터 탈북 유튜버로도 활동을 시작한 건데요.

[녹취: 이유미 씨] “마케팅 때문에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탈북민이라는 게 ‘먼저 온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에 어긋나지 않게 정말 나중에 통일됐을 때 우리가 지금의 역할이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면 언어도 많이 다르고 또 정착 과정에 적응 잘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교훈적인 얘기를 하기도 해요. 왜냐면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는데 밥이나 먹고 살라고 목숨 걸기엔 너무나도 목숨이 헐값이 아니냐 이런 얘기도 하는데 아무튼 유튜브를 통해서 남북한의 이질감 이런 것도 많이 깨는 경우가 있어요. 최소한 북한(탈북민) 유튜브를 보시는 분들은 나중에 통일됐을 때 너무 생소하지 않겠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죠.”

끝으로 이유미 씨는 한국의 정착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게, 열심히 살자.’는 말을 전했고요. 자신도 지금까지 달려온 만큼 더 많은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이유미 씨] “사실 욕심 같으면 확장하고 싶기는 한데 지금은 대기업이랑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확장보다도 유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더 최고가 되는 게 목표이긴 하죠. 더 최고가 되고 싶은 게...”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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