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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지난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 일정 참가자들이 시진핑(앞) 국가주석을 향해 박수하고 있다. 
지난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 일정 참가자들이 시진핑(앞) 국가주석을 향해 박수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16일부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22일 끝나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일은 차기 지도부를 정하는 것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중국의 정치 구조, 이번 대회에서 눈여겨볼 점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CCP)’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일종의 전당 대회입니다. 흔히 ‘당 대회’ 또는 ‘전대’라고도 하는데요.

통상 일반적인 나라의 경우, 전당대회는 당이 나아갈 미래와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지도부를 결정하는 당내 행사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이 사실상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국정 운영 방향과 정책 등을 결정하는 역할도 합니다.

간혹 통상 3월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NPC)’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다른 나라의 입법기관, 의회에 비견되기도 하는 중국 헌법상 최고 권력 기구입니다.

하지만 전인대의 권한은 상당히 형식적이고요. 사실상 중국의 모든 권력은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인대에서는 당의 결정에 대해 일종의 고무도장,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 각 지역과 기관·부문별로 선출된 공산당 대표(대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당 대회에서 주요 정책이 수립되고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결정은 당 대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대개 만들어지고요. 전체 회의에서는 찬반 정도만 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중앙위원 선출과 당장(당헌) 손질 등을 통해 중국 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 측면만으로도 이 대회는 항상 국제 언론의 관심 대상이 돼 왔습니다.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2002년부터 10월이나 11월에 열리고 있습니다.

대회가 처음 열린 건 1921년 7월로, 당시 중국 공산당은 상하이에서 창당 대회 격인 1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개최 장소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이 된 건 1956년에 열린 제8차 전국대표대회 때부터인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굳혀졌습니다.

대회 기간도 딱히 정해지지 않고 대회 때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통상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진행됩니다.

또한 참석 인원도 대회 때마다 약간씩 다른데요. 보통 약 2천 명 내외입니다. 이번 20차 당 대회에는 약 2천300명의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중국 전체 공산당원은 약 9천700만 명입니다.

“중앙위원회”

당 대회의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기수의 중앙위원회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통상 폐막일 당일 무기명 투표를 통해 중앙위원 약 200명, 예비위원 또는 후보위원을 170명 정도 선출하는데요. 이렇게 당 대회를 통해 선출된 중앙위원들과 중앙기율검사위원들이 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총서기와 25인의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지도부를 선출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20차 당 대회는 22일 폐막하는데요. 폐막 다음 날인 23일에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20차 당 대회에서 선출된 새로운 기수, 즉 20기 중앙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라는 의미인데요. 한 기수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통상 7번 열립니다. 다시 말해 다음 당 대회가 열리는 5년 새, 7번의 전체회의가 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전체회의는 ‘1중전회’, 두 번째 전체회의는 ‘2중 전회’ 마지막 전체회의는 ‘7중전회’ 식으로 부르는데요. 통상 당 대회 직후 개최되는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당 최고지도부가 선출됩니다.

“최고지도부”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공직인 ‘국가주석’과 당직인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군직인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이렇게 3개 직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대개 이 세 직책을 다 겸해왔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집단지도 체계’라는 독특한 권력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이를 위해 7인에서 9인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최고지도부 역할을 해왔습니다.

통상 7인의 상무위원은 총서기 겸 국가주석 겸 군사위 주석, 국무원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부총리 또는 부주석 등의 직위로 채워집니다.

이번 당 대회 전, 7인의 상무위원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 왕양 정협 주석,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러지 중앙기율위 서기, 한정 국무원 부총리인데요.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위원 등 당 대회를 통해 선출되는 직책은 통상 5년 임기입니다.

하지만 장쩌민 총서기 이후 연임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10년 집권이 굳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해 사실상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20기 1중전회에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가 3 연임을 확정할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요. 나머지 6인의 상무위원으로 누가 선출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 상무위원 가운데 최대 4명 이상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새로 등장할 상무위원들이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들로 채워질 경우, 시진핑 주석의 1인 지배 체제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진핑 3기 전망”

시진핑 국가주석의 3 연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중국의 국내외 정책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당 대회 개막식에서 당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주문하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 실현이라는 기존의 국내 정책이나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발언을 했습니다. 중국은 오는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이 되는 해,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로서 초강대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국을 넘어 인도·태평양과 아프리카 국가들을 향해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며 입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수교 이래 최저점을 찍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으로 양국 관계의 골은 더 깊어졌는데요. 시진핑 주석은 이번 당 대회에서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평화통일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무력 사용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미국과의 마찰을 또다시 예고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1953년 6월생으로 올해 69세입니다. 역대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출생한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공산당 혁명 원로로 부총리까지 지냈던 시중쉰입니다. 하지만 시중쉰이 1962년 반역자라는 이유로 모든 지위에서 해임되고, 문화대혁명 때는 투옥되는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시진핑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수도 베이징에서 중국 공산당 고위 관리의 자제, 일명 ‘태자당’의 일원으로 살던 그는 10대 때, 가족과 함께 북동부 산시성의 빈한한 지역으로 추방돼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반동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공산당 입당은 쉽지 않았는데요. 번번이 퇴짜를 맞았지만 1973년 결국 공산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5년 베이징 칭화대학교 화공과에 입학했습니다. 이무렵 중국의 권력은 덩샤오핑이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덩샤오핑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전과를 올리고 신장 지역 등에서 인민의 호평을 받았던 시중쉰을 다시 정계에 복귀시킵니다.

시진핑은 이후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무원 판공청,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비서직을 수행하며 권력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때 시진핑 주석의 군부 인맥이 형성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1982년 허베이성 정딩현 당 부서기를 시작으로 푸젠성, 저장성 등 지방 관리직을 거쳤고요. 1998년 15차 당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16차 당 대회에서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드디어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의 당서기가 되면서 거물급 정치인의 면모를 드러내고요. 같은 해 열린 17차 당 대회에서 25인의 정치국원 자리를 건너뛰고 바로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승승장구였는데요. 이듬해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그는 2010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에 오르면서 후진타오 당시 총서기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공인됐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2012년 11월 18차 당 대회에서 그를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했고요. 이듬해인 2013년 3월 열린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성격은 평소 매우 조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창기 중화권 매체들의 평가를 보면,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모험을 즐겨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는데요. 하지만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으로 당 원로와 정적들을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은 권력을 향한 또 다른 면모를 보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두 번째 부인인 펑리위안과의 사이에 딸 1명을 두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관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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