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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북한, 추수 앞두고 '허풍방지법' 제정?


가을 걷이를 앞둔 북한 강원도 원산의 협동 농장. (자료사진)
가을 걷이를 앞둔 북한 강원도 원산의 협동 농장. (자료사진)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군수공장을 동원해 농기계를 만드는가 하면 양곡 유통 비리를 막기 위해 ‘허풍방지법’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농업 상황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은 10월 가을걷이를 앞두고 식량난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25일 북한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는 농기계 전달식이 열렸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벼 수확기와 옥수수 탈곡기 등 5천500대의 농기계가 전달됐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우리의 혁명공업인 군수공업 부문이 총궐기해서 농업 부문을 비롯한 인민경제 부문들을 지원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특이한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명령으로 군수공장에서 무기 대신 농기계를 생산해 농촌에 보냈다는 겁니다.

같은 날 평양에서는 노동당 정치국 회의가 열려 농업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조용원 조직비서가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는 농사 실태를 점검하고 농업정책들을 집행하기 위한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서를 채택했습니다.

북한은 결정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언론은 이날 회의가 “가을걷이와 탈곡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며 “양곡정책 집행을 저해하는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정치국 회의에서 ‘양곡정책 집행 저해 현상’이 언급된 것을 볼 때 국가 양곡 유통체계에서 `비리 현상’이 드러났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말하는 ‘비리 현상’을 ‘곡물 생산 허위보고’와 ‘곡물 빼돌리기’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2009년에 제정된 북한의 농업법에 따르면 협동농장과 국가는 일종의 계약관계입니다.

국가는 농사에 필요한 토지, 물,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비닐박막 등을 제공하고 농장원은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가을철이 되면 각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알곡을 분배하는 겁니다.

문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가 붕괴하면서 국가가 농자재를 공급하지 않으면서 분배는 종전처럼 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농장원들은 추수철이 되면 곡물생산량을 줄여서 상부에 보고한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평안남도 평성에서 농업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국가가 가져 갈 수 있는 의무수매계획이란 게 있어요. 그걸 집행하려면 일정한 곡물이 있어야 하는데, 농장원들은 100개를 생산했다고 하면 정부에는 50개를 생산했다고 보고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팔아서 농장경영에 소비를 하거든요.”

또 다른 문제는 농민들이 곡물을 빼돌리는 겁니다.

가을철 벼와 강냉이가 탈곡장에 들어가면 국가 수매와 공출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에 농민들은 미리 벼와 강냉이를 베어 자신의 몫으로 챙겨 놓는 겁니다.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어차피 정부가 다 가져가면 식량으로 남는 게 없으니까, 농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보자기에 넣고 오거나 탈곡장에서 빼돌리거나, 그런 일이 있는데…”

한편 한국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허풍방지법'을 제정했다고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국정원은 9월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올해 군수공장을 동원해 생산한 농기계를 황해남도에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허풍방지법을 제정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허풍방지법’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농업 부문에 허풍이 있다”고 질타한 것을 감안하면 당 간부들이 농업 생산량을 부풀려 보고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GS&J 인스티튜트 권태진 북한동북아연구원장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김정은 위원장이 허풍치지 말라고 한 것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거든요, 부풀려서 보고를 하는 게 문제다, 김 위원장이 파악하기로는 식량 생산량이 많지 않은 것같은데 보고는 부풀려서 해서, 막상 조사를 해보면 생산량이 적은데…”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허위보고로 인해 식량 재고를 파악 못해 체면을 구긴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식량가격이 급등하자 김 위원장은 6월17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을 내렸습니다. 군량미를 보관하고 있는 ‘2호 창고’를 열어 주민들에게 공급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그러나 군량미를 풀어 쌀값을 안정시키라는 이 특별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창고에 쌀이 충분히 없었던 겁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6월 29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정치국 상무위원인 리병철과 군 총참모장 박정천, 국방상 김정관을 강등시키고 최상건 당 비서는 해임했습니다.

탈북민들은 국가수매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생산량 허위보고 문제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재 북한에는 두 가지 곡물가격이 있습니다. 국정가격은 쌀 1kg이 46원이지만 시장가격은 5–6천원 선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국정가격을 적용해 쌀을 수매합니다. 만일 국가가 쌀 100kg을 수매하면 농민에게 4천600원을 지불하는데, 이는 농민 입장에서는 큰 손해입니다.

하지만 농민이 같은 양의 쌀을 장마당에 팔면 5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쌀 100kg을 국가에 팔면 49만5천400원이 손해인 셈입니다.

다시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국정가격이 46원이니까, 100분의 1가격으로 가져가는 것인데, 그건 강도 행위죠.정부가 그러면 안되죠. 시장 가격대로 해야죠.”

전문가들은 농업을 개혁하려면 허위보고 근절이나 농자재 공급 정도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국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농업을 개혁하려면 국정가격같은 이중 가격제도를 정리하고 협동농장을 없애며, 농민이 잘사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If you don’t have incentives you don’t work hard. No question.”
식량난은 이제 북한의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북부 도시 지역 주민들은 농촌을 떠돌며 식량을 구걸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무산이나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 현금 수입이 끊어지자 주민들이 농촌을 돌아다니며 식량을 훔치거나 구걸한다는 겁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미 농무부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이 전년도 보다 17만t 증가한 121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 주민 10명 중 약 7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릴 것이란 얘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10년 안에 식량난을 완전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봄 가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집중호우는 그같은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가까운 장래에 주민들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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