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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벽화 작가 루이스 넬슨] “한국전쟁 기념공원 ‘추모의 벽’ 건립으로 ‘이야기’ 완성”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오는 27일 ‘추모의 벽’ 제막식과 함께 재단장한 모습으로 공개됩니다. 기념공원의 주요 조형물인 벽화를 설계한 루이스 넬슨 작가는 ‘추모의 벽’ 건립으로 기념공원의 ‘이야기’가 완성됐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넬슨 작가는 미국의 JFK 공항, 세계무역센터, 뉴욕 지하철 등을 비롯해 유수의 산업 디자인에 참여한 유명 디자이너입니다. 오는 27일 ‘추모의 벽’ 공식 제막식을 앞두고 박형주 기자가 넬슨 작가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오는 27일 ‘추모의 벽’ 공식 제막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데요. 벽화 디자이너로서 소회, 어떻습니까?

루이스 넬슨 작가. 사진 = Louis Nelson © Reven Wurman.
루이스 넬슨 작가. 사진 = Louis Nelson © Reven Wurman.

넬슨 작가) '추모의 벽'을 만들자는 구상은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측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윌리엄 빌 웨버 (예비역) 대령을 비롯해 재단 이사회에서 그런 제안을 했는데요, (2016년)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국전쟁에 전사한 미 육해공군 등 3만 6천여 명과 미군에 배속돼 함께 싸운 카투사 7천여 명의 이름을 벽에 새기는 거죠. 제법 긴 벽이 들어서는 만큼 주변 나무를 옮기는 등 전반적인 재단장을 했습니다. 저는 벽화를 설계한 사람이지만 이번 ‘추모의 벽’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작업이 아주 훌륭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추모의 벽'은 기념공원을 더욱 빛나게 할 아주 멋진 작품이 될 것입니다. 27년 전인 1995년 조각가 프랭크 게일로드 씨가 제작한 '19인 용사상'과 제가 설계한 벽화에 '추모의 벽'이 더해지는 것인데요, 이제 ‘이야기’가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기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과는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넬슨 작가) 1989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미국연방예술(NEA)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종종 워싱턴 DC에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때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공원의 조각 작업을 했던 친구를 알게 됐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저에게 그래픽 디자이너나 벽화 작가를 추천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2~3명 뛰어난 예술가를 알려줬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떠냐?'고 물었죠. 그리고 워싱턴에 내려가 저의 구상에 대해 발표했고, 결국 제가 선택됐습니다. 그게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이었습니다.

기자) 당시 이 작업에 왜 참여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넬슨 작가) 당시 저는 디자이너로서 제법 명성이 있었고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는 1954년 대학에 입학해 58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학군장교(ROTC)'로 육군 헬리콥터 조종사 등으로 약 5년간 복무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대학 시절 친구 중 3~4명 정도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습니다. 막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이었죠. 우리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송이'였는데 그들은 무척 성숙했습니다. 저의 대학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제가 오늘날 '괜찮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개인적 이유로 그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자) 화강암으로 된 벽화에는 인물 사진 같은 다양한 미군 모습이 새겨졌는데요, 벽화 설계에 어떤 부분을 고려하셨나요?

넬슨 작가) 한국전쟁은 미국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한국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벽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방향을 정하는 데 이런 이해를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또 한국과 관련해 제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피카소를 비롯해 다른 예술가들이 전쟁과 군인들을 어떻게 묘사해왔는지도 연구했습니다. 또한 이 기념공원이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 워싱턴 기념비, 링컨 대통령 기념관 등 여러 기념관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고민했습니다.

기자) 작가 시각에서 한국전쟁 기념공원이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공원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넬슨 작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베트남전 기념공원의 목적과 설계의 초점은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전사자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은 '망자'를 기억하는 전통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선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고래사냥 등 바다에서 일하다 변을 당한 이들을 장례 하는 일환으로 교회에서 벽에 이름을 새기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중요한 방식이었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주변에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기념관이 있고 링컨기념관처럼 위대한 지도자를 기념하는 공간도 있었기 때문에 저는 복무 중인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국 가정에선 복무 중인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을 벽난로 위나 침실 탁자에 올려놓곤 했죠. 저희 할머니도 일본, 한국에서 복무했던 제 사촌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게 ‘힌트’를 줬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기념공원 벽에 군인들의 사진을 새겨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0년대 당시에는 그렇게 한 곳이 없었습니다.

기자) 작가님께서 한국전쟁 기념공원과 관련해 가장 ‘감탄’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을 꼽으시겠습니까?

넬슨 작가) ‘인간애(humanity)’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선 나라를 위해 복무한 '진짜 사람'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19인 용사상'이나 벽화에 새긴 사진들을 통해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당시 그곳에 있었던 이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이곳이 다른 기념관과 비교해 무척 ‘개인적’이라는 점입니다. 또 한국인이 이곳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 백악관이나 의사당, 심지어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이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벽화 앞에서 신발을 벗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뭉클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유명한 디자인을 했지만 제가 만든 벽화가 누군가에게 ‘경애’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기자) 지난해 ‘모자이크: 전쟁 기념비 미스터리(MOSAIC: War Monument Mystery)’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한국전쟁과 기념공원에 대해 상당 부분을 할애했는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넬슨 작가) 한국전쟁은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미국인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 구조와 방식을 바꾼 주요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이 처음으로 유엔군에 포함돼 치른 전쟁이었고, 중국 공산당을 상대로 싸운 첫 전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끝났으니까요. 하지만 미국의 참전과 전쟁의 결과가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전쟁 이후 한국이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 국가이자 서방의 주요 동맹국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중요한 점입니다. 현재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놀라운 성취를 이뤘습니다. 저는 항상 미래의 힘은 ‘다음 세대’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그들의 현재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줄 뿐 아니라 어디로 갈지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의 벽화 제작자인 루이스 넬슨 씨로부터 최근 새롭게 단장한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박형주 기자의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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