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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유럽의 북한’ 알바니아계 핀란드인, 탈북 청소년들 초청 격려 “같은 고통 겪어 북한 참상 이해…자유의 날 올 것” 


한국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 국제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핀란드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천기원 목사와 이들을 초청한 밀토 마르코 씨. 사진: 천기원 목사 / Facebook.

과거 공산국가이자 ‘유럽의 북한’으로 악명높았던 알바니아 출신 핀란드인이 최근 한국의 탈북 청소년들을 초청해 격려하고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핀란드인들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옛 공산 치하에서 인권 침해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VOA를 몰래 청취하며 희망을 품었다는 밀토 마르코 씨는 북한이 공산 알바니아와 매우 비슷하다며, 많은 핀란드 교회가 북한의 자유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핀란드의 한 장애인 특수학교에 근무 중인 올해 55살의 밀토 마르코 씨 가족은 지난 18일 한국의 탈북청소년들을 초청해 거의 열흘 동안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한국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 국제학교 관계자들과 학생 8명 등 10명은 핀란드의 대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고 현지 교회들을 순회하며 북한 실상을 증언하고 공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녹취: 탈북 청소년들 (핀란드 교회 공연)]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마르코 씨는 30일 VOA에,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에 탈북 청소년들을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과거 ‘유럽의 북한’으로 불리던 공산국가 알바니아 출신으로 공산 독재국가의 참상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기독교인으로서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는 겁니다.

[녹취: 마르코 씨] “Because I’m Albanian and there it had been considered North Korea of Europe during Communism. In a way, I’m also North Korean.”

마르코 씨는 “어떻게 보면 자신도 북한인과 같다”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북한인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알바니아는 1946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1992년 민주주의 정부로 바뀌기 전까지 동·남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산국가 중 하나로 북한의 우방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붕괴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문호를 개방한 뒤 비약적으로 발전해 지금은 세계은행이 발표한 올해 기준 국민총생산(GDP) 172억 달러, 1인당 GDP 6천 89달러로 유럽의 중상위권 국가로 받돋움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기도 한 알바니아 정부는 지난 2월 VOA에 보낸 이메일 논평에서 “북한 정권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저항과 고립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북한 지도부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을 강하게 규탄하기도 했습니다.

핀란드인 아내와 결혼 뒤 15년 전 핀란드에 정착한 마르코 씨는 자유 알바니아 30주년을 앞두고 북한의 악명 높은 인권 실상을 주목한 뒤 2년 전 자료를 검색하다가 탈북민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와 천기원 목사의 활동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연락한 뒤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녹취: 마르코 씨] “I was so happy that there is a wonderful Christian pastor Chun who is putting his life to…there is a risk to rescue North Koreans.”

마르코 씨는 천 목사가 20년 넘게 위험을 무릅쓰고 삶을 바쳐 탈북민들을 구출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보면서 과거 알바니아 공산정권에서 핍박받던 많은 기독교인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던 알바니아인들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알바니아 공산정권은 세계 최초로 헌법에 ‘신은 없다’란 문항을 넣고 모든 종교를 잔인하게 핍박했다며, 아버지의 사촌인 종숙이 이런 체제에 염증을 느껴 친구들과 조국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하기도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옛 알바니아 공산정권은 지난 1976년 개정한 헌법 37조에서 “국가는 어떤 종교도 인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과학적 유물론적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해 무신론적 선전을 지지한다”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마르코 씨는 또 알바니아 공산 정권 치하에서 열렬한 VOA 애청자였다며, 목숨을 걸고 알바니아를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뒤 VOA 알바니아어 서비스에서 일하던 자밀라 콘다와 이사벨라 콘다 두 자매를 통해 거짓 선전을 깨닫고 자유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스무 살 안팎의 나이로 자유를 찾아 탈출하다 그리스로 향하는 바다에서 남동생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정착한 이 두 자매의 비극적 이야기가 탈북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녹취: 마르코 씨] “There is a very tragic history. Those two sister had worked almost all their life in Voice of America, Albanian department(Service). Because they were persecuted family and…”

실제로 VOA 알바니아어 서비스는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다 남동생을 잃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지난 2013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녹취: 다큐멘터리 중 자밀라 씨] “Greece is a free country that what we were swimming to freedom.”

[이사벨라 씨] “That was a motivation that was driving force for us to undertake what we did”

두 자매는 다큐멘터리에서 그리스는 자유 국가였고 자유를 위해 그리스를 향해 헤엄을 쳐서 12시간의 여정 끝에 이탈리아 요트에 구조돼 미국에 올 수 있었지만, 바다에서 동생을 영원히 잃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의 반정부 활동으로 남부 시골로 추방된 뒤 부모의 권유로 탈출을 시도했다며, 부모가 VOA를 통해 나오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했지만, 알바니아 공산 정권의 고립 정책 때문에 아버지는 재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마르코 씨는 탈북민들의 사연은 많은 알바니아인의 역사와 매우 비숫하다며 여러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탈북민들을 만나고 싶어 이들을 초청하겠다는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르코 씨] “If we don’t take financial risk, no one will follow us, even support us. So we have to be on the frontline. We also have to be brave financially.”

장애인 학교 직원과 음악 교사로 재직 중인 부부가 10여 명이 묵을 숙소와 이동 등 경비를 준비하는 게 큰 도전이었지만, 이런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누구도 탈북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는 겁니다.

다행히 평소 마르코 씨 부부의 독실한 신앙에 감동한 핀란드의 여러 교회가 지원에 동참했고 두리하나 국제학교는 비행깃값을 감당하면서 드디어 2년의 준비 끝에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천기원 목사는 30일 VOA에, 탈북민들의 상황이 어느 때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마르코 씨의 헌신, 탈북민들에 관한 핀란드 기독교인들의 관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의외로 그 한 사람! 자기 나라가 북한하고 똑같았고 자기도 친척들이 친구들이 탈북민과 같은 고통을 받았는데, 지금은 핀란드에서 자유를 찾고 돌아보니까 그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거예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우리를 불렀는데, 핀란드인들이 전부 울고 꼭 다시 만나자며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거예요. 그것은 진정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천 목사는 일주일여 동안 6개 핀란드 교회에서 북한과 탈북민들에 관해 증언하며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서, 자신과 탈북 학생들 모두 이번 여행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천 목사와 마르코 씨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는 탈북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핀란드 교인들과 교류하고 자연에서 즐기는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코 씨는 과거 공산정권에서 받은 박해 기억 때문에 북한 정권을 의식한 듯 자신의 자녀 사진이나 거주 지역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기회가 되면 탈북 학생들과의 교류를 해마다 지속하고 싶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반드시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마르코 씨] “We know how much you are suffering. There are millions of people around the world who pray and sing of you. Because you have been created in the image of God, you deserve the freedom. The time will come…”

마르코 씨는 북한 주민들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기 때문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옛 공산 유럽국가들에 자유가 왔듯이 북한에도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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