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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원, '북한 대사관 습격' 크리스토퍼 안 스페인 신병인도 결정


지난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갈 때 CCTV에 찍힌 크리스토퍼 안. 안 씨의 변호사가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보석 재심신청서에 첨부한 사진이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에 연루된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 씨에게 스페인 신병인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사건 담당 판사는 북한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안 씨의 신병인도에 사실상 반대하지만 법리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상급법원이 자신의 결정을 뒤집길 바란다는 이례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이 크리스토퍼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를 승인했습니다.

진 로젠블루스 판사는 9일 공개한 결정문에서 “재판부가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증거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안 씨가 스페인 법에 따라 강제 침입과 불법 감금, 부상 유발 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개연성은 존재한다”면서 “이런 결과에 기초해 재판부는 안 씨가 4개의 혐의로 인해 신병인도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법원 서기관 사무실이 미 검찰과 국무부에 안 씨의 신병인도 승인서류를 송부하도록 명령하고, 30일 이내 안 씨가 항소하지 않을 경우 신병인도 전까지 연방보안관국(US Marshal Service)이 안 씨를 구금하도록 했습니다.

앞서 안 씨는 자신이 소속된 반북단체 ‘자유조선’ 조직원들과 지난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납치극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후 스페인 당국의 요청을 받은 미국 정부가 안 씨를 체포해 연방법원에 신병인도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안 씨의 변호인은 북한이 안 씨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과 범죄 가담 비중이 크지 않다는 사실 등을 내세우며 신병인도의 부당함을 주장했습니다.

또 지난해 법원에 제출한 문건에선 안 씨 등이 탈북을 희망하는 북한대사관 직원 혹은 외교관과 공모해 ‘납치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안 씨는 스페인 법원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상급 법원이 이번 결정을 유지해야 하며 또 국무장관이 안 씨의 신병인도를 최종 승인해야 합니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안 씨 측의 항소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담당했던 로젠블루스 판사는 이날 자신의 최종 결정과 달리 안 씨의 신병인도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52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결정문 상당 부분을 신병인도가 이뤄져선 안 된다는 내용으로 채우면서, 이번 결정이 법리적 판단에 따라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과거 북한이 해외에서 암살사건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이성윤 미 터프츠대학 교수의 증언을 인용해 안 씨도 북한으로부터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또 안 씨가 스페인 법정에 선다고 해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북한 외교관 등은 재판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안 씨의 유죄 입증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신병인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미 국무부가 안 씨의 신병인도를 막아 달라는 요청을 이미 거절한 사실도 결정문에 담으면서 안 씨를 보호해 줄 장치가 없다는 점을 신병인도의 반대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결정문에 따르면 안 씨의 변호인은 신병인도를 막기 위해 국무부 관계자들과 반복적으로 만나 모종의 거래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재판부에 진술했습니다.

또 신병인도가 무산되면 ‘파장’이 있을 것이고, 미국에서 스페인 정부가 안 씨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식의 판단이 나올 경우 외교적 파장이 클 것이라는 게 검찰 측 주장이라고 로젠블루스 판사는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신병인도 결정이 상급 법원에서 뒤집혀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과거 판례나 다른 법 조항에 묶여 있는 자신과 같은 연방 치안판사와 달리 상급 법원은 인도적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나는 (상급 법원이) 안 씨의 불가피한 신병인도 문제에서 ‘공범(accomplice)’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와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모친 신디 웜비어 씨가 “북한에 맞서기 위해 안 씨에게 강한 여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면서 “고립된 그 나라의 고문과 암살 위협으로부터 그(안 씨)를 구하기에는 내가 너무 약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판사가 자신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상급 법원이 이를 바로잡길 바란다는 뜻을 결정문에 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로젠블루스 판사가 안 씨의 신병인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은 이미 일부 전문가들을 통해 제기됐었습니다.

안 씨의 신병인도 결정을 피하고자 지난해 5월 심리를 개최한 이후 약 1년 가까이 고심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옵니다.

당시 안 씨의 심리에 참석했던 이성윤 교수는 지난해 11월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최종 결정이 늦춰지는 건) 신기한 일”이라면서 “5월 심리 당시 로젠블루스 판사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결정을 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안 씨의 변호인들도 지난해 9월 이전에 최종 결정문을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VOA는 미 국무부에 ‘안 씨의 스페인 신병 인도를 승인할 것이냐’고 질문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스페인은 1970년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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