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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세상보기]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민족대안학교


[탈북민의 세상보기]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민족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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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한민족대안학교'의 얘기 전해 드립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탈북청소년, 탈북가정의 자녀들을 보살피고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2008년 7월에 설립한 '한민족대안학교'인데요. VOA 방송이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한민족대안학교'의 얘기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이아름 교사] “3의 제곱 승이 뭐야? 3의 제곱 승은 3을 두 번 곱했다는 뜻이야. 그럼 3을 두 번 곱하면 얼마야?

[녹취: 탈북가정 자녀] "9."

[녹취: 이아름 교사] "그렇지. 3 곱하기 3은 9야. 그러면 3 곱하기 3 곱하기 3을 3의 삼승이라고 그러거든? 3의 삼승은 얼마일 것 같아? 봐봐. 3x3은 9였지.

9에다 또 3을 곱하는 거야. 그러면 3x9 얼마야, 3x9~"

[녹취: 탈북가정 자녀] "27.”

여기는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한민족대안학교'입니다. 탈북청소년과 탈북가정 자녀들의 방과후학교로 운영되는 곳인데요. 한 가정집을 개조해서 학생들 공부방으로 쓰고 있습니다. 방 하나는 최화숙 교장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고요. 거실에는 컴퓨터를 여러 대 놓아서 학생들이 온라인 교육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도록 마련돼 있었고, 또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탁구대까지 설치된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한민족대안학교'
한국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한민족대안학교'

그리고 제가 찾아갔을 때는 이아름 씨가 진행하는 수학 수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녹취: 이아름 교사] “아 지금 우리 형민이가 소인수분해 공부하고 있는데 거기서 객관식 문제예요. 그래서 틀린 거 찾고 그다음에 옳은 거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도 지켜보고 교사의 얘기도 들어봤는데요. 마침 학교로 돌아온 최화숙 교장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안녕하세요. 한민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최화숙 교장 선생님입니다. 저는 교육 활동은 한 거는 없고요.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을 하다가 탈북 청소년들, 애들을 어디 관리할 데 없는 애들이 있어요. 그럼 그런 애들을 24시간 케어하면서 봐줬죠.”

최화숙 교장은 탈북민으로 20년 전인 지난 2002년에 한국에 정착했는데요. 정착 초기에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신학 공부에 매진했다고 해요.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를 다니면서 복수 전공으로 사회복지학도 공부했고요. 그 이후로도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돌봄이 필요한 탈북청소년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두 명씩 아이들을 돌보다가 점점 규모가 커졌고요. 이렇게 '한민족대안학교'를 맡게 된 것은 2012년 4월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민족대안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이 이뤄질까요?

[녹취: 최화숙 교장] “월요일부터 학교 갔다가 바로 가방 메고 여기 와요. 그러면 여기 지역아동센터나 학원과 같죠. 국어, 수학하고 영어하고 사회, 과학, 국영수사과를 다 해요 여기서.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인터넷으로 저희가 콘텐츠 비용을 내면서 아이들이 듣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선생님께 물어도 보고 그렇게 하면서 관리를 하는데 잘 따라가요. 빨라요. 저게 선생님들이 하나하나 붙들어 가르치면 엄청 시간과 뭐 이런 것들 그래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로 가르쳐야 할 애들이 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너무 바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이 학교는 쉼터 같은 곳이기도 하고요. 자신에게 부족한 공부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24시간 케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학교는 다니는데 방과 후에 학원에 못 가고 그냥 여기서 학원 대신에 공부를 다 시켜주죠. 여기는 방과 후 공부방, 여기는 공부방이고 애들이 자는 공간은 세 군데 또 따로 있어요. 제가 다 관리하죠. 아이들 조금씩 나눠서 관리하는 거니까 통합 관리는 제가 하는 거죠. 거기에 선생님이 3명씩, 한 가구당 3명씩 다 있고..”

최화숙 교장은 현재 공동생활가정이라고 불리는 '그룹홈'도 세 곳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룹홈'은 한 집에 7명까지 탈북청소년들을 보호해주는 집 같은 곳인데요. 최화숙 교장은 방과후학교인 '한민족대안학교'와 '그룹홈' 세 곳까지 모두 네 곳을 관리하고 있는 겁니다. 많은 학생을 돌보고 있고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 가운데 뿌듯한 순간이 있었는지도 물어봤는데요. 최화숙 교장입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아빠가 탈북해서 러시아 여자 만나서 낳은 애. 여기(한국에) 11살에 왔는데, (학교에는) 작년 3월에 16살에 왔어요. 근데 그 4년 동안을 계속 방치한 거예요. 동해에서 왔는데, 작년 3월에 와서 여기서 초등학교 1학년 국어부터 시작해서 6학년 국어를 작년 1년에 다 뗐고 수학까지. 그렇게 해서 제 학년을 거의 따라가고 있거든요. 올해 중학교 1학년 올라갔어요, 그럴 때 보람 있었고…, 그리고 선생님들 칭찬이 많죠. 얘가 어떻게 1학년부터 6학년 국어를 이렇게 뗄 수 있냐, 한 해도 안 되는 사이에.. 작년 3월에 와서 작년 11월까지 다 뗐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잘 따라간다고 선생님들이 막 진짜 놀라죠, 기적이라고....”

현재 한민족학교에는 7세 아동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까지 모두 20명의 아이가 함께하고 있고요. 대부분 탈북가정의 자녀들입니다. 한민족학교는 24살까지 다닐 수 있지만, 대부분은 성인이 되면 이곳을 떠난다고 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여러 교사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요. 사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교사를 구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인력이 부족하죠. 지금도 저 많은 애 혼자서 저 선생님이 하잖아요. 또 코로나 시기라 자원봉사도 마음대로 오지 못하고 그와 같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인력이 두세 명 더 있으면 같이 파트별로 나눠서 공부도 시키고 그러면 좋은데 그런 것들이 부족한 거죠. 후원금 같은 것들이 좀 모금이 되면 선생님들도 두세 명 더 쓰고 그러면 좋죠.”

바로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바람일 텐데요. 마침 이날, 자원봉사로 처음 함께하게 된 한국사 교사의 수업이 열렸습니다.

[녹취: 이영미 교사] “자, 우리 혹시 구석기 시대 알아요?”

[녹취: 탈북가정 자녀] "예."

[녹취: 이영미 교사] "오, 알아요? 한국사의 제일 처음 시작이죠."

[녹취: 탈북가정 자녀] "몰라요."

[녹취: 이영미 교사] "아직 몰라요? 괜찮아요. 우리 친구도 아직 모르겠죠. 그럼 우리 한국사 배우고 있는 친구들만, 우리 두 친구는 들으면 되고, 여기 한국사 알고 있는 친구만, 혹시 구석기 시대 생활 모습으로 딱 떠오르는 것 하나만."

[녹취: 탈북가정 자녀] "주먹 돌, 주먹도끼, 사냥, 사냥도구, 동굴, 이사 생활"

[녹취: 이영미 교사] "우리 친구들 되게 많이 아는데 자, 구석기 시대에는 농사를 지었던 시대가 아니었죠. 그래서 주식이 뭐였죠? 사냥해서 고기를 먹었죠."

이날 한국사 수업을 이끈 이영미 씨는 대안학교 학생들과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우선 아이들이 한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고, 서로 친해져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녹취: 이영미 교사] “지금 한국사 시간을 갖고 있는데, 우리 친구들이 그 한국사를 알고 있는 차이가 있어서 오늘 첫 시간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오리엔테이션 겸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영미 씨는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우선은 이해하기 쉽고, 또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미 교사] “그냥 이렇게 이야기식으로 오늘 첫날이어서 딱히 어떤 교재로 해야 할지도 못 정했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초등학생이어서 제가 어느 정도 오늘 간단하게 보고, 교재를 따로 우리 친구들이 재밌게 할 수 있게, 쉽게 접할 수 있게 솔직히 한국사가 되게 어렵잖아요. 범위도 넓고, 정말 깊고, 다양해서 재밌게 퀴즈로 된 교재를 사서 진행하면 우리 친구들이 집중해서 하지 않겠냐고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최화숙 교장은 이 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 그 바람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녹취: 최화숙 교장] “그 우리 자녀들은 한 부모는 거의 다 100%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부모님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애들이 부모의 고향을 잊지 않고 나중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부모님들의 고향에 가서 기여할 수 있는 뿌듯한 그런 청년들로, 예. 자녀들로 자라기를, 항상 통일의 큰 일꾼들로 자라기를 저는 소망하면서 그러면서 키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얘기도 직접 들어봤는데요. ‘한민족대안학교’를 다닌 지 5년째라는 한 학생은 공부를 잘하게 됐다는 점이 제일 좋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교사들과의 관계가 좋았다면서, 쑥스럽지만 ‘감사한다’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들의 얼굴이 흐뭇해졌습니다.

최화숙 교장에게 앞으로의 목표도 있는지 물어봤는데요. 선뜻 북한에 두고 왔던 아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아들을 두고 왔는데 그 아들이 제가 탈북한 공백 기간에 한 6년여간에 부모가 없으니까 보육원에 있었더라고요. 근데 그 보육원에 애들이 800명이 있대요. 근데 그 애들이 매일매일 자고 일어나면 죽는대요. 애들이 옥수수겨 가루 있잖아요. 껍데기, 그 겨 가루 죽도 없고 토끼풀도 없어서 못 먹고 배고파 굶어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산기슭이나 길옆에 토끼풀 같은 게 나면 소금이라도 조금 빌어다가 그런 거 뜯으면 소금에 찍어서 먹었는데 다른 애들은 소금도 없어서 못 먹었대요. 그러면서 엄마를 그렇게 원망을 했대요."

한국에서 다시 만난 아들과 최화숙 교장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최화숙 교장은 용서를 빌며 사과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두 사람은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녹취: 최화숙 교장] “화해를 하면서 아들하고 약속했어요. 우리 둘이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 성공해서 그 땅에, 네가 고생하던 그 보육원 애들을 가서 돌봐주자 통일되면 약속한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연습하고 훈련하고 나중에 보육원 애들을 가서 돌봐줄 그런 마음을 품고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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