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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인연 깊은 파월 전 국무장관 별세…"대북 외교 강조한 협상파"


18일 타계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장관 재직 시절인 2001년 5월 21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흑인 최초로 미국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전 장관이 신종 코로나 합병증으로 별세했습니다. 한반도와도 인연을 맺었던 파월 전 장관은 공화당 행정부에서 대북 외교적 해법을 강조한 협상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미국의 첫 흑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전 장관이 18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월 전 장관 가족은 사회연결망 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에서 파월 전 장관이 18일 아침 신종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전했습니다.

4성 장군 출신의 파월 전 장관은 193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시립대학교 학군사관후보생(ROTC)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고, 한국, 서독 등지에서 근무했습니다. 또 베트남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6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에 임명됐고 1987년 11월에는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 때인 1989년엔 흑인 최초로 미국 합참의장이 됐고, 1991년 걸프전 때는 합참의장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1991년 7월 3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에서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콜린 파월 합참의장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1991년 7월 3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에서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콜린 파월 합참의장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1년 1월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에 올라 4년 동안 대외 정책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시작한 이라크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 임무를 맡았습니다.

콜린 전 장관은 공화당 소속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2005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는 민주당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당 후보였던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공식 지지했고, 2016년 대선 때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신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한 겁니다.

가장 최근인 2019년에는 현 대통령인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성공한 직업 군인’, ‘흑인 최초의 국가안보보좌관, 합참의장, 국무장관’, ‘유리천장 깬 개척자’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르는 파월 전 장관의 별세 소식에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콜린 파월은 내가 자랑스럽게 나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인 가운데 한 명으로 남을 것”이라고 추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파월 전 장관은 전사와 외교관 두 직책 모두에서 최고의 이상을 구현한 인물”이라며, “ 거듭 인종 장벽을 허물었고 다른 사람들이 따를 길을 개척했으며 전 생애에 걸쳐 다음 세대의 지도력에 대한 투자에 헌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성명] "He embodied the highest ideals of both warrior and diplomat.He led with his personal commitment to the democratic values that make our country strong.He repeatedly broke racial barriers, blazing a trail for others to follow, and was committed throughout his life to investing in the next generation of leadership.Colin Powell was a good man who I was proud to call my friend, and he will be remembered in history as one of our great Americans."

2010년 12월 1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10년 12월 1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날 국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파월 전 장관이 국무부 직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인물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블링컨 장관] "He didn't bother with formalities and he wasn't overly concerned with hierarchy, either. He wanted to hear from everyone. He walked around the building, dropping into offices unannounced, asking what people needed, making sure they knew he was counting on them."

파월 전 장관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하관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또한 예고 없이 사무실에 들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었으며 자신이 동료들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고 블링컨 장관은 덧붙였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오늘은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슬픈 날”이라며 파월 전 장관은 미국을 믿었기에 자신의 삶을 공무에 헌신했다고 말했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파월 전 장관을 추모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전 세계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잃었으며 자신은 친구이자 위대한 멘토를 떠나보냈다고 말했습니다.

파월 전 장관은 자신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았고, 그때마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주며 항상 훌륭한 조언을 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최초의 흑인 미 합참의장이자 국무장관을 지낸 고인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오스틴 장관은 덧붙였습니다.

18일 타계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을 추모하기 위해 워싱턴 연방의사당에 조기가 걸렸다.
18일 타계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을 추모하기 위해 워싱턴 연방의사당에 조기가 걸렸다.

파월 전 장관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조지 부시 W. 전 대통령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파월 전 장관이 대통령의 자유 메달을 두 번 받은 인물로, 미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불일치했지만 항상 파월 전 장관을 존중했고 그의 업적을 존중했다고 밝혔습니다.

파월 전 장관은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지난 1973년부터 이듬해까지는 경기 동두천 주한미군 부대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습니다.

파월 전 장관은 지난 1995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한국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을 때가 군 생활 중 가장 만족스럽고 활력이 있었던 때라고 회고했습니다.

또 2001년부터 4년동안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한반도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특히 대북 문제에서는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핵 포기의 대가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외교와 대화 해법을 강조하며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북한을 깨기 어려운 호두로 비유하면서 북한을 이란보다 더욱 다루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파월 전 장관이 주도한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한 적이 있었다는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고인을 북한 문제 해결책으로 외교적 노력을 강조한 인물로 기억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파월 전 장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작한 외교를 계속하기를 원했다는 겁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do remember when the President Bush was elected, Secretary Powell wanted to continue the diplomacy that President Clinton has started. And the particular we were in the middle of negotiations over North Korea’s ballistic missile program. And Powell expressed the support the continuing negotiations but the White house reprimanded him, and in the end, the White House didn’t continue those talks which I think it was a mistake."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1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백악관이 북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던 중에 파월 전 장관이 협상 지속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가 백악관의 질책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백악관은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했고 자신이 생각할 때 그것은 실수였다고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말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Powell recognized as most of the top military leaders recognized that we just don’t have the military options to disarm North Korea because the cost of military conflicts in Korean peninsula would be extremely high, especially in terms of the damage of South Korea. So I think Powell understood that even though we have to maintain a strong defense and strong alliance with South Korea, we really couldn’t use military force to solve North Korea nuclear problem and the most effective option we had was a diplomacy."

파월 전 장관은 다른 최고 군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군사적 충돌의 대가, 특히 한국의 피해가 너무 클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군사적 옵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파월 전 장관이 강력한 방어와 미한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는 없으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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