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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주권국 자위적 활동' 강조는 대미 핵 군축 협상 포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3대혁명 전시관에서 개막한 '자위-2021'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3대혁명 전시관에서 개막한 '자위-2021'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북한의 핵 무력 증강 활동을 주권국의 당연한 자위적 활동으로 연이어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상을 핵 군축 협상으로 몰고 가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1일 국방발전 전람회 기념연설에서 “강력한 군사력 보유 노력은 평화적인 환경에서든 대결적인 상황에서든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자위적, 의무적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최근 북한을 둘러싸고 조성된 군사적 위험성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계기로 ‘한반도의 봄’이 조성되고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던 3년 전과 또 다르다며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 때 ‘철천지 원쑤’라며 적대했던 미국과, 대적관계를 선언했던 한국에 대해 자신들의 주적이 아니라고 유화적인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이 이번 연설을 통해 북한의 핵 무력 증강 활동이 미국이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여부와는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북 핵 협상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이 그동안 핵무기 개발 명분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과 같은 미국의 위협을 꼽았는데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자신들의 무력 증강 활동이 대미 관계와는 별개 사안임을 시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박사는 김 위원장이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이 단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주권국가로서의 일반적이고 당연한 자위권 차원의 활동이라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논리를 내세운 셈이라며 이는 향후 북 핵 협상의 구도를 핵 군축협상으로 가져 가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이제는 오히려 북한이 쐐기 박듯이 자신의 전략무기 전술무기 개발 프로세스를 완수하고 완수된 것을 사실상 불가역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 그래서 그 이후에 미국과 핵 군축 협상을 하는 방식, 그리고 핵 군축 협상이 안 되더라도 최소한 한국과는 일정한 재래식 무기의 군축이나 훈련과 관련된 서로의 통보라든가 이런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운영적 군비통제 정도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지난달 말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과 이번 국방발전 전람회 연설을 종합해보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공세적 태도가 한층 강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핵실험을 세 차례 감행하면서 핵 보유를 향해 질주했고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비핵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비핵화의 반대 급부로 미국 측에 요구했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들어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격을 떨어뜨린 태도도 비핵화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관측입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한국을 포함해 북한을 둘러싼 지역 내 군비경쟁 현상을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끌어들이면서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압박 메시지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국의 군사력 증강이 북한에 위협이 된다고 하는데 북한은 한-미 동맹을 이미 위협이라고 생각해서 핵을 개발한 것 아닙니까. 핵 보다 더 강한 억지력은 있을 수 없죠. 다만 군비경쟁 프레임을 갖다 쓰기 시작한 거죠. 특히 인도태평양,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 모습이 있으니까 그것을 활용해서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불법적인 핵 미사일 개발도 군비경쟁 프레임에 넣고 정당화하겠다는 게 아주 명확하게 읽히는데요.”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뒤에도 한국을 줄기차게 압박하고 있는, 자신들의 자위적 활동에 대한 ‘이중기준’ 철폐 요구는 핵 보유국을 인정받기 위한, 진화된 논리라고 평가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비록 미국과 한국에 대해 주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연설의 전체 맥락을 보면 이는 관계 개선을 위한 메시지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다만 미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씀으로써 관계 개선의 여지는 남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논리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양보를 해야 할 대상은 미국이고 미국의 선제적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협상구도나 향후 전망과 관련해선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봐요.”

김 위원장이 이번 연설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중기준 철회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이면서도 대화 재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관리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열망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활용하려고 한다며, 김 위원장이 한국을 주적이 아니라고 직접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한국의 현재 상황이 심지어는 문재인 정부 조차도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한 대응 역량을 군사적으로 구축해야겠다는 그런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의 예봉을 일단 무디게 하고 또 앞으로 한국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그런 움직임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북한이 사전에 그런 논리들에 대한 대응논리를 지금 만든 거죠.”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스텔스 전투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 미-한 미사일 지침 개정 이후 미사일 개발 등을 일일이 언급하며 도를 넘은 노골화된 군비 현대화 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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