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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미국 방송계 여성 파워 약진" CBS 런던 특파원, 홀리 윌리엄스


[여성 언론인 대담] "미국 방송계 여성 파워 약진" CBS 런던 특파원, 홀리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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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남성 지배적인 언론 문화에서 예외적으로 꼽히는 방송사가 미국의 CBS입니다. 보도 부문 사장도 여성이고, 뉴스센터 보직 간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CBS 선임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영국 런던 특파원으로 나가 있는 홀리 윌리엄스 기자를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홀리 윌리엄스 CBS 런던 특파원. 사진=홀리 윌리엄스.
홀리 윌리엄스 CBS 런던 특파원. 사진=홀리 윌리엄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윌리엄스) 제 이름은 홀리 윌리엄스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미국 CBS 방송 소속 기자이고요. 여러 방송사를 거쳐 2012년에 국제문제 선임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 특파원을 한 뒤, 런던 특파원이 됐습니다.

기자) 종군기자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2016년 미국 대선 직전, 이라크 모술에 가서 미군의 IS 격퇴 작전을 전한 장면 때문입니다. CBS 종합뉴스 화면이 그다음 날 주요 신문에 실리기도 했어요. 획기적인 취재 활동으로 평가받은 겁니다. 이전에 여러 방송이 종군기자를 보냈지만, 보도용 화면(standing)은 안전한 곳에서 따로 찍고, 전투 상황은 배경 처리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윌리엄스 기자는 직접 전투 현장에 들어갔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옵니까?

윌리엄스) 음…, 기자라는 직업은 사실, 제대로 일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당황스러운(upsetting) 환경에도 자주 처하고요. 위험하고 어두운 곳에도 가야 해요. 그런 곳에 가는 게 힘들다고 외면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가 세상에 전할까요? 전쟁터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이에요. 현장 취재를 안 하면, 군이나 정부 당국에서 발표하는 수치나 통계만으로 뉴스를 다루게 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방송 전파를 타기 힘들어요. 저는 언론 보도의 중심에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안전한 환경에서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살아야 해요. 그런 게 보장 안 되는 것이 제가 볼 때 중요한 뉴스입니다. 모두가 알아야 할 사항이에요. 그래서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기자) 그래도 무섭지 않습니까? 어떻게 감정을 절제하나요?

윌리엄스) 감정을 절제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기자는 냉정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틀린 말이라고 봅니다.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현장의 공포를 전하고, 즐겁고 기쁘면 또, 즐겁고 기쁜 기운을 전해주는 게 좋은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시리아 내전 현장에도 갔었고, 과거 미얀마 야당 지도자였던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 연금,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같은 것들을 다뤘습니다. 정말 다양한 사건과 인물을 경험했는데, 만일 윌리엄스 기자가 태어나기 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하나 취재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하고 싶은가요?

윌리엄스) 와… 엄청난 질문이네요. 현대적인 의미의 언론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뉴스를 기록한 문건은 16세기인가, 17세기경에 이미 존재했어요. 그만큼 인류의 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 뉴스였습니다. 음, 그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알렉산더 대왕을 한번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를 통합해 대제국을 만든 사람이잖아요. 그 역사가 서양 문명의 기반 가운데 하나가 됐고요.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 ‘알렉산더’라는 남자 이름이 아직도 많을 정도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런 큰 인물이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기자) 그동안 다양한 보도 활동 가운데, 가장 아끼는 기사는 뭔가요?

윌리엄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정말 좋아하는 기사가 많기 때문인데요. 음… 최근 것 중에 자랑스러운 게 하나 있어요. 작년에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현장에 가서 세계로 상황을 타전했던 것입니다. 뉴스 시간에만 편성하기 아까워서, CBS 심층 보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 특별 제작해 내보냈는데, 시청자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재방송까지 했습니다.

홀리 윌리엄스 기자가 CBS 심층 보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CBS 뉴스.
홀리 윌리엄스 기자가 CBS 심층 보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CBS 뉴스.

기자) 그 보도가 자랑스러운 이유가 뭡니까?

윌리엄스) 제가 호주 출신이에요. 어린 시절 기억이 깃든 곳이라, 그곳 소식을 전하는 게 특별했습니다.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했거든요. 하버드대학교에서 니먼 펠로우십(Nieman Fellowship)을 수료했고요. 영국 (BBC) 방송에서 일하면서 중국에서 12년 동안 살았습니다. 또 CBS로 이직한 뒤에는 터키에서 살았던 적도 있고, 지금은 런던에서 머물고 있으니까, 미국과 대양주, 아시아, 유럽에서 골고루 살았던 셈이네요. 앞으로는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어요.

기자) 중국에서 12년을 지내는 동안, 혹시 북한 쪽에 접근할 기회나 한국에 가본 적이 있었나요?

윌리엄스) 유감스럽게도 북한에 접근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서울에는 가본 적이 있어요. 매우 좋은 도시입니다. 세계적인 대도시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규모에 놀랐어요. 또 가보고 싶습니다. 중국 수도인 베이징보다 깔끔한 인상을 받았고요. 초고속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 기술 저변이 잘 갖춰진 도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게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보도 활동을 하는 동안, 여성이라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윌리엄스) 여성이라는 점이 장애물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여성에게 적대적인 문화와 관습이 아직도 많아요. 중동이나 아시아의 특정 국가에서는 여성인 제가 기자로서, 언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놀라는 눈길로 바라봅니다. 기자회견을 하는데, ‘CBS 특파원은 아직 안 왔습니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제가 가장 먼저 가 있었는데도요. 또 취재원이 성적인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일도 있습니다. 여성 혐오적(misogynistic) 시각을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외부적인 것들을 제 능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소화하느냐, 기자 본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자) 태도에 달렸다. 좋은 말씀입니다만, 막상 취재 현장에서 그런 일을 겪으면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면요, 취재원이 저를 여성이라고 얕잡아보고 과소평가하면, 기자로서 엄청난 기회가 생깁니다. 특히 권력자들이나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대할 때 그런 일이 많아요. 긴장을 풀고 대하기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겁니다. 주요 국가 정상들을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사실이에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의 경우, 같은 여성이라 더 편하게 말해주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잖아요. 가정을 돌보면서,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취재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윌리엄스) 여자라서, 엄마라서 특별히 어렵지는 않습니다. 아빠건 엄마건 일하는 부모들(working parents)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을 저도 경험하는 것뿐이에요. 그래도 저는 다행인 게, 큰 취재 임무가 없는 시점에는 근무 시간이 매우 탄력적입니다. 제 딸 아이와 함께 있어 줄 시간이 많아요.

기자) 그렇다면 언론사 내부에서는 어떤가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있습니까?

윌리엄스) 네. 지금 CBS를 보면, 보도 부문 사장이 여성(수전 지린스키ㆍSusan Zirinsky)입니다. 또 기자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지시를 내리는 에디터들의 과반이 여성이에요. 그런 것들만 봐도 양성 간의 균형이 잘 맞은 상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주요 언론기관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성 쪽에 쏠려있었어요. 중요한 의사 결정은 남성들이 내렸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수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국 방송계에서 여성의 힘(woman-power)이 약진하고 있어요. NBC나 ABC 같은 다른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 부문에서도 여성 임원과 간부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일했던 BBC를 비롯한 외국 언론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환경입니다.

홀리 윌리엄스 기자가 IS 격퇴 작전 당시 미군을 지원하는 이라크 보안군 장교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CBS 뉴스.
홀리 윌리엄스 기자가 IS 격퇴 작전 당시 미군을 지원하는 이라크 보안군 장교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CBS 뉴스.

기자) 미국 언론계 내부에서 최근 수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은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윌리엄스) 뉴스를 취합할 때, 여러 가지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해야 한다는 ‘각성’이 미국 언론계 전반에서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1시간짜리 뉴스 프로그램을 내보내려면, 여러 기사를 모으잖아요. 그중에서 남자 기자가 리포트한 게 다섯 개라면, 여자 기자의 리포트도 네다섯 개로, 비슷한 비중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소수인종 기자들도 화면에 얼굴을 많이 비추도록 했고요. 시청자들이 볼 때, 뉴스가 ‘더 와 닿도록’ 한 거예요. 흑인 여성이 보는 뉴스에 백인 남성 기자들만 나온다면, 그 방송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성별과 인종, 문화, 출신 국가, 경제적 환경을 비롯한 사회적 ‘다양성’이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점을 방송 보도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 사회적 다양성을 보도에 반영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윌리엄스) 같은 사안을 놓고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양상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안이 어떤 쪽으로 진전되기를 희망하는 방향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제각각이고요. 그래서 언론은 되도록 많은 색깔의 목소리들을 담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공공재’로서 여론을 순환시키는 기능을 제대로 하는 겁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윌리엄스) 숫자를 하나 딱 집어서 점수를 매기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미국의 언론 자유도는 확연하게 (10점에 가까운) 위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의 방송사나 신문사들이 모두 완벽하고, 언론 환경도 완벽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죠. 더 나아지게 만들 여지는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의 많은 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의 매체들과 시청자, 독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윌리엄스) 제 삶의 모든 희망과 욕구는 언론에 집중돼 있어요. 어떡하면 더 의미 있는 뉴스를,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좀 뻔하고 재미없는 답변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겁니다. 언론이 나아져야 세상이 나아지니까요. 저는 언론이 나아지는 방향에 힘을 보태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습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윌리엄스) 몇 년 전에 워싱턴포스트가 표어를 ‘민주주의가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로 바꿨을 때, 미국 언론계에서 많은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비웃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워싱턴포스트가 내세운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세요. 어둠 속에서 이미 민주주의가 죽은 나라가 많습니다. 그걸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언론 자유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양성평등’에 관해서는, 미국과 서방에서 옳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처럼, 나머지 지역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인격체로 대우받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홀리 윌리엄스 CBS 런던 특파원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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