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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남북한도 독일처럼 통일 가능" 로이터통신 선임기자 안드레아 셜랄


[여성 언론인 대담] "남북한도 독일처럼 통일 가능" 로이터통신 선임기자 안드레아 셜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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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언급할 때, 흔히 비교하는 사례가 과거 동독과 서독입니다. 양측은 남북한과 같이 분단을 겪었지만, 통일을 이룬 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통독 과정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40여 년 동안 굵직한 국제 뉴스를 현장에서 보도한 안드레아 셜랄 로이터통신 선임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로이터통신 안드레아 셜랄 선임기자.
로이터통신 안드레아 셜랄 선임기자.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셜랄) 네! 제 이름은 안드레아 셜랄(Andrea Shalal)입니다. 로이터통신에서 오래 일한 언론인이에요. 경력의 대부분을 로이터에서 보냈습니다. 입사한 게 1988년이니까, 30년이 훨씬 넘었네요. 그 전에 다른 언론사에서 근무한 기간을 합하면 40년도 더 돼요. 원래 주요 취재 분야는 통상과 국제 경제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재무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담당했어요. 그러다 군사ㆍ방위 산업과 국제 안보 현안에 관한 심층 보도를 했습니다. 방송에 나가 국제 정세에 관한 평론도 하고요. 얼마 전 다시 ‘선임 기자(senior correspondent)’로 취재 일선에 나섰어요. 6개월 전부터 백악관에 출입하는 중입니다.

기자) 여성 언론인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셜랄 기자를 꼽는 응답이 많습니다. 세계사의 주요 사건마다 현장에 있었던 분이라서 그렇다고 해요. 독일 통일 과정을 베를린에 가서 취재하셨죠?

셜랄) 우선,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존경받을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그때(독일 취재)는 제가 굉장히 젊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1989년 11월이었으니까, 로이터에서 일한 지 불과 일 년 남짓 됐을 때예요. 그런데,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임무를 떠맡았던 거였어요.

기자) 독일에 가는 걸 원치 않았던 겁니까?

셜랄) 네. 국제 뉴스보다는 경제 분야에 관심이 컸거든요. 그런데 담당 국장께서 저를 국제부에 배치하고, (영국) 런던 취재본부 소속으로 발령내셨어요. 유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뉴스를 담당하는 곳이 런던이었거든요. 출국 예정 일자가 11월 10일이었어요. 그런데 (전날인) 9일 밤에 제가 국장께 전화를 드려서 “못 가겠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국장께서는 “아녜요, 꼭 가야 합니다” 하시더라고요.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런던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근무지로 가라는, 상상도 못 한 지시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자) 상상도 못 한 지시,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셜랄) “방한화 챙겨 갔습니까? 두꺼운 외투는 가져갔어요?” 국장께서 국제 전화로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방한화도 있고, 외투도 있습니다”라고 답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뭘 원하십니까?” 국장께 여쭸어요. 그랬더니, “베를린으로 가세요!” 하시더라고요. “(미국이나 영국보다) 훨씬 추운 독일의 베를린에서 얼어 죽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농담과 함께요. 하하하…. 결국 제 의지와 상관없이 베를린으로 다시 날아갔습니다. 저를 거기에 보내신 이유는 나름 짐작이 됐어요. 제가 독일계 미국인이거든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이민 왔어요.

기자) 지금은 그때 베를린에 갔던 걸 후회하지 않으시죠?

셜랄) 물론이죠. 당시 취재 임무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험이었어요. 베를린의 동과 서를 가르던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제 손으로, 제가 쓴 글로 전 세계에 타전했으니까요.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독일 통일로 이어지는 전조이기도 했지만,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던 냉전이 끝나는, 현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차지한 시작점이기도 했고요. 그걸 현장에서 보도한 거예요.

기자) 기자 생활 초창기부터 아주 큰 사건을 다루신 거네요.

셜랄) 맞아요. 동베를린 주민들이 구름 같이 서베를린으로 밀려들고, 서베를린 사람들이 자유롭게 동베를린으로 여행하는 것, 예전에는 꿈도 못 꿀 광경이었어요. 양쪽을 가르는 장벽은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장벽이 사라진 뒤, 베를린은 자유가 분출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념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졌어요. 그 놀라운 감정들이 솟구치는 모습을 보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했고요, 기자로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베를린 특파원으로 다시 독일에 갔는데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 된, 번창하고 역동적인 도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기자) 통독 취재 경험부터 질문한 이유는, 한반도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통일을 바라는 한국과 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셜랄) ‘희망을 놓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독일처럼 남북한도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날이 올 거예요. 사실, 동서독의 통일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왔어요. 우선, 동독 정부가 기득권을 내려놓을지가 미지수였고요. 동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소련이 붕괴하는 것도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기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에 가서 “장벽을 허물라”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촉구한 뒤,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죠?

셜랄) 맞아요. 그전까지 통독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없다시피 했어요. 지금 남북한 사람들이 통일을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 사람들은 극적으로 통일을 이룬 거예요. 한국과 북한은 형편이 낫잖아요. 통일을 목표로 삼은 당국 간 논의와 교류가 꾸준하게 이어져 왔으니까요. 희망과 염원을 놓지 않는다면, 상황이 받쳐 줄 날이 옵니다. 그러려면, 통일과 자유를 향한 긍정적 에너지를 유지해 나가야 해요. 그 주역은 지도자들이 아닙니다. 바로 국민이에요.

기자) 긍정적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셜랄) 통독 직전 동독에서는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거리에 넘쳐났어요. 사람들이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밖으로 나와 자유를 외쳤습니다. (동독의 공산) 정권을 비판하고, 통일을 외쳤어요.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찾아온 거예요. 제가 단지 관찰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 자신 있게 강조할 수 있어요. 통일 문제는 정권에 맡겨둘 게 아니라, 국민이 나서 행동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기자) 하지만, 남북한 관계는 희망이나 염원만으로 풀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북한 핵무기 문제가 있잖아요. 독일 통일 과정에도 이런 현안이 있었나요?

셜랄) 그럼요. 많았어요. 대표적인 게 동독 지역에 배치된 (소련의) 핵무기 확산을 어떻게 막을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서독에 있는 미군 핵무기도 현안이었고요. 당시 동서 양 진영이 맞서는 냉전의 최전선이 독일이었거든요. 양측의 핵과 첨단 미사일들이 경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기자)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남북한 관계에서 참고할 만한가요?

셜랄) 동맹국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다자 협상’이 큰 역할을 했어요. 당사자인 동서독 외에, 미국과 소련이 대화에 참여했어요.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까지 포함한 6자 회담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통일과 동시에 (2차대전 패전국 지위에서 벗어나) 주권을 상당 부분 되찾는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소련군이 동독에서 철수했습니다. 미군은 그대로 남았고요. 아울러, 동독 지역이 편입한 ‘새로운 독일 연방’의 군사적 지위는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같이 된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남북한 관계 발전과 통일도 이 과정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로이터통신 안드레아 셜랄 선임기자.
로이터통신 안드레아 셜랄 선임기자.

기자) 40년 넘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좋은 기자의 요건은 뭔가요?

셜랄) ‘빨리 습득하는 능력’이 언론인 역할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기자라고 원래부터 모든 걸 다 알진 않잖아요. 몰랐던 사실이나 정보를 접했을 때, 신속하게 내 걸로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도움을 얻을 전문가를 빨리 찾아야 하고요.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대중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래서 기자는 똑똑하고 눈치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팩트(사실관계)를 집어 들었을 때 ‘야, 이건 말이 된다’ 혹은 ‘말이 안 된다’, 이런 걸 빨리 판단해야 해요. 그런 판단이 신속하게 서야, 정보를 전달하든 비판을 하든, 기사를 쓰는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 그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이나, 아끼는 기사는 뭡니까?

셜랄) 아, 그것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하하…. 임팩트(영향)가 강한 보도에 마음이 많이 가요. 예를 들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즈음에 썼던 기사가 있는데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CEO(최고 경영자)가 범죄 전문 변호사를 고용한 사실을 입수해서, 속보로 전했습니다. 해당 CEO가 연방 법무부의 수사 대상이 됐던 거예요. 속보를 낸 시점이 그날 주식시장을 닫기 20분 정도 전이었는데, 그 20분 동안 골드만삭스 주가가 5%나 빠졌습니다. 시가로 엄청난 액수였어요. 시장 전체에 충격을 준 소식을 제가 전했던 거예요.

기자) 그럼, 기자 생활에서 가장 안 좋았던 경험은 뭔가요?

셜랄) 음…, 아직 판단하기 이를 수도 있지만, 최근에 일어난 일이에요. 지난 1월 6일 발생한 연방 의사당 습격 사태입니다. 누구의 책임인가 따지기 전에, 사건 자체만으로 모든 미국인에게 무거운 의미였잖아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나쁜 일이었다는 걸 누구도 부인 못 합니다. 저는 그날 워싱턴 D.C.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총체적으로 취재할 계획을 잡았어요.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연설하는 일정, 그리고 연방 의사당에서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일정까지 시간대 순으로 따라가며 보도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날(5일), 정부 당국자 여러 명이 저에게 연락해왔어요. 취재를 말리더라고요. 그날 현장에 나서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자) 폭력 행위가 있을 걸 예측했던 겁니까?

셜랄) 네. 정보 당국 관계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폭동 대응’ 훈련을 받았습니다. 현장 취재진이 모두 방탄 헬멧과 조끼를 입고 워싱턴 시내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집을 나서기 직전, 다시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1월 6일) 취재 현장에 가지 말고, 집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상부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나이도 많고 하니까, 염려해주신 거죠. 저는 그래도 나가겠다고 했어요. 먼발치에서나마 현장을 직접 보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우리가 잘 알죠.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죽어라 싸우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것”이라고 연설했고, 시위대 일부가 의사당에 난입해 대선 인증 절차를 방해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가슴 아팠어요.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기자) 언론인으로서 오랜 기간 다양한 경험을 하셨는데,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셜랄) 후후후, 말도 마세요. 굉장한 일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기자 생활 초창기에,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지역 신문사에서 견습직원(인턴) 생활을 했어요. 어떤 회사의 파업 현장으로 첫 번째 취재를 나갔는데, 시위 중이던 남자가 뒤에서 제 둔부에 손을 대고 더듬더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성추행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지금 뭐 하시는 거죠?”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움찔하고 손을 내리더라고요. 그 뒤로 유럽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일들이 종종 있었어요. 지금은 미국의 대다수 직장에서, 동료를 대할 때 성별이나 직위와 관계없이 ‘동등하게 존중하라’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몇십 년 전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남자보다 뒤처지는 존재로 대우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현실을 보면, 양성이 100% 동등하게 대우받진 않습니다. 주요 언론사 고위 간부나 경영자급 가운데, 여성이 드물잖아요. 인종적으로도 편중돼 있고요. 하지만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어요. 진전을 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셜랄) 음… 아시다시피, 국제기구에서 평가하는 미국의 언론 자유도는 우리(미국인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낮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게 의미가 없다고 봐요. 낮은 평가의 이유가 뭔지 살펴보면, 세 가지 요소가 두드러집니다. 하나는, (일부) 정치인들이 언론 매체들을 상대로 조성한 ‘적대적 환경’입니다. 이 문제는 과거 행정부에서 두드러졌는데, 이제는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까, 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소셜 미디어상의 무질서’입니다. 허위 정보와 음모론이 여과 없이 퍼지잖아요. 그런데 통제 수단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예요. 마지막 세 번째는 ‘지역 언론의 쇠퇴’입니다. 경제 악화가 맞물리면서, 지역 신문과 지방 방송들이 하나둘씩 도태되고 있어요. 얼마 전 ‘볼티모어 선’과 ‘시카고 트리뷴’ 같은 신문들이 헤지펀드(hedge fundㆍ단기 이익을 노리는 모집 자본)에 매각됐잖아요. 이 세 가지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의 언론 자유가 더 발전하는 데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갖가지 문제점들을 짚어주셨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언론계에 뛰어들어도 좋다고 보십니까?

셜랄) 물론이죠! 어려운 상황일수록 패기 있는 언론인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지켜가려면, 자유 언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에요. 이럴 때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언론인을 배출해야 합니다. 스스로 문제점을 고치고, 현실을 바꿔나가야 해요. ‘적대적 언론 환경’을 바꾸는 것도 언론인들의 몫이고, ‘무질서한 온라인 정보’와 싸우는 것도 언론인들의 몫입니다.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언론인들이 얼마나 좋은 기사를 써서, 매체의 존재 이유를 대중에게 확인시켜주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기자) 결국 언론인 지망생들은 어려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셜랄) 아니에요! 언론계는 보상(rewarding)도 큰 곳입니다. 언론인들은 평범한 직장인들이 아니잖아요. 봉급이나 수당을 받는 ‘경제적 보상’ 외에, 우리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보람’, 그리고 독자들 대신 뉴스의 인물들과 만나는 ‘특권’, 이런 것들을 누립니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들도 기자들은 취재 목적으로 갈 수 있잖아요.

기자)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 어디까지 가보셨습니까?

셜랄) 잠수함을 타고 북극해에도 가봤고요, 슈퍼호넷(Super Hornetㆍ미 해군 주력 전투기)을 타고 사막 위를 날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어떤 직업에서 할 수 있겠어요. 나중에 나이 들고 뒤돌아보면 ‘와, 정말 나 멋지게 살았다’고 회상할 수 있는 게 언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셜랄) 경각심(vigilant)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독일은 2차 대전 직후, 분단된 패전국이었어요.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이 한참 모자란 상황이었죠. 그러나 결국 통일을 이루고, 사회 각 방면에 발전을 일궜습니다. 국민이 깨어 있었고, 경각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북한,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안드레아 셜랄 로이터통신 선임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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