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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싱가포르 회담 2주년] 3. ‘톱 다운’ 외교 장점과 한계


미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역사적 첫 만남이었던 2018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번 주로 2주년을 맞습니다. VOA는 세기의 만남으로 주목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되돌아 보는 다섯 차례 특집보도를 전해 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트럼프 행정부 대북 협상의 특징인 ‘톱 다운’ 외교의 장점과 한계를 짚어보겠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처음부터 정상급 외교로 북 핵 협상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으로 출발해 이듬해 2월 결렬로 끝난 하노이 2차 정상회담, 또다시 전격적으로 이뤄진 6월 판문점 회동까지.

70년을 적대관계에 있던 두 나라 최고 지도자가 1년 사이 세 차례나 만난 것은 전례 없는 일입니다.

그동안 두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도 공개된 것만 최소 10차례가 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과 잘 지내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녹취 : 트럼프 대통령] “I mean, we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I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Kim Jong Un”

국가 정상이 전면에 나서 협상을 주도하고 그 동력을 아래로 내려주는 ‘톱 다운’ 방식은 외교에서 흔치 않습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0년 ‘미-북 공동 코뮈니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12년 2.29 합의 등 역대 미-북 합의는 모두 실무진의 거듭된 협상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며 ‘파격’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서도 과거 정부가 시도하지 않은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지난 1994년 10월 18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미국 측 핵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가 백악관에서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북 핵 특사는 5일 VOA에, 미-북 정상회담 개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 갈루치 전 특사] “I think he relished the idea that he would break through the logjam that had been US-North Korean diplomacy for so long, and that he would do it what others could not do. I think that is part of his signature.”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지속된 미-북 외교의 정체 상태를 자신이 깨트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못했던 것을 자신은 할 것이라는 생각을 좋아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특성과 더불어, 모든 결정권이 1인에게 집중된 북한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톱 다운’ 외교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초반의 기대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톱 다운’ 외교의 장점이 일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가능했습니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성사된 1차 미-북 정상회담은 2018년 3월 백악관을 방문한 한국 특사단을 통해 처음 제안이 나온 뒤 3개월여 남짓 만에 성사됐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실무급에서 해결해야 하는 난관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을 ‘톱 다운’ 방식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또 통상적인 방식이었다면 양측이 본격적으로 대화를 재개하고 정상회담을 논의하기까지 훨씬 많은 외교적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첫 정상회담을 했다.

‘톱 다운’ 방식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거나 교착 상황에 ‘모멘텀’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 “미국에 엄중한 경고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중장거리 전략 탄도로케트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

2017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 상황이 2018년 들어 급반전을 이룬 데는 연이어 성사된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 정상 차원의 외교가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미-북 정상외교 추진에 대한 바람과 가능성은 미 행정부 일각에서 항상 존재했지만, 미-북 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면서 그 긴박성이 더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셉 윤 전 대표] “Certainly when I was in the government there was always a possibility that some of us wanted to pursue. And I think it became more urgent. Because the situation was getting much more tense between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윤 전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당시 “뭔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었다며, 미-북 정상회담 성사로 1차 목표인 ‘긴장 완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더딘 진전과 거듭된 교착, 특히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북한의 ‘대미 강경노선’에도 불구하고 협상의 판이 아직

깨지지 않은 것은 ‘톱 다운’을 통해 형성된 정상 간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협상의 장기 교착에도 불구하고 두 지도자의 관계와 신뢰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며, `톱 다운’ 외교의 유용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Nonetheless, as Kim Jong Un has made clear so as President Donald Trump, their relationship, and their element of mutual trust is still intact. So I think top down diplomacy has value.”

정상 간 개인적 관계와 신뢰가 상호 불신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톱 다운’ 외교의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특히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로 끝나자 `톱 다운’ 외교의 리스크가 그대로 노출됐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도 실무진의 사전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정상 차원에서 회담 개최를 먼저 결정한 전형적인 `톱 다운’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실무 협의를 이끌었던 ‘비건-김혁철 라인’은 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비핵화 조치와 대북 제재 해제 등 핵심 쟁점을 놓고 담판에 성공하지 못했고, 회담은 중도에서 끝났습니다.

당시 미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협상 결렬로 개인적 관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의존과 준비 부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습니다.

‘로이터’ 통신 등은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의 의회청문회 기간 중 열린 점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압박 속에 회담에 임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갈루치 전 특사는 정상 차원의 협상에는 실무 협상보다 국내적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루치 전 특사] “When you do involve principals, the chairman and the president, the negotiation has a much higher domestic profile than it would otherwise have. Both of them are going to look to their domestic constituencies…”

정상들은 (협상에서) 유권자를 의식하게 되며, 이런 요소가 협상에 제약을 주기도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도 야당의 탄핵 추진 등 국내정치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의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어떤 합의라도 서명할 것으로 ‘오판’ 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다음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대통령궁에서 열린 베트남 정부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북 핵 6자회담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정상외교는 실패하면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 힐 전 차관보] “Once you get no progress there's nowhere to go because you've already started at the top. What do you do?”

최고위급이 만나서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이후 실무급에 새로운 협상을 시작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속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과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4개월 만에 판문점에서 다시 만나면서 협상 동력을 가까스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듭된 정상 간 만남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와 미-북 관계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실무진들의 ‘후속 협상’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와 같은 `톱 다운’ 외교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습니다.

미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장은 비핵화 등 미-북 간 이슈는 매우 세부적이고 복잡미묘해 전문가들을 통한 기술적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갈루치 전 특사는 “정상들은 세부 사안을 논의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린다”며,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실무 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이 논의돼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셉 윤 전 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모든 쟁점들을 `톱 다운’ 방식으로 협상할 수는 없다며, 실무진들의 충분한 논의가 병행돼야만 `톱 다운’ 방식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 조셉 윤 전 대표] “You cannot negotiate everything. In order for top down approach to succeed, there has to be plenty of meetings at lower level.”

윤 전 대표는 또 북한이 미국의 대선 기간에는 진지한 협상이나 외교에 임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VOA가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은(11일)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의 지난 2년을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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