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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와 북한 주민들의 인식 변화


지난달 17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8주기를 맞아 평양 주민들이 만수대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8주기를 맞아 평양 주민들이 만수대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대북 제재가 북한 정권에 대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는지를 놓고 전문가들이 엇갈린 견해를 보였습니다. 북한 엘리트들이 단결돼 있고 통제도 철저해 제재가 체제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없다는 지적과 수뇌부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엘리트마저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위한 북한 정권의 돈줄을 끊을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김씨 정권에 등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엔 대북 제재가 올해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지속적인 제재가 북한의 체제 안전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엔 제재 대상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에 투입되는 북한 정권의 돈줄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지만, 국제 사례를 보면 제재 등으로 국가 경제가 크게 악화될 경우 엘리트들의 쿠데타 혹은 주민들의 폭동으로 정권이 교체되거나 정치 개혁을 촉진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는 그러나 9일 북한전문 매체인 ‘NK News’ 기고에서 그런 사례가 북한에서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엘리트들이 매우 단결돼 있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도 철저하기 때문이란 지적입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엘리트들을 폭풍이 치는 바다에서 작은 배에 함께 의지한 사람들에 비유하며, 서로 싸우면 승자와 패자에 관계없이 배가 전복돼 모두 익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이 전략적으로 주민들에게 일부 경제 자유를 허용한 장마당 등 민간경제 역시, 얼굴 인식 카메라 등 첨단 감시기술을 개발한 중국의 도움으로 통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가뜩이나 적은 내부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을 더 낮출 것이란 겁니다.

란코프 교수는 이런 요소들을 지적하며 북한 정권은 현 대북 제재 하에서 정치적 타격을 별로 받지 않은 채 5~10년은 버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 국익연구소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장도 10일 VOA에, 강력한 제재로 북한 주민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거나 정치적 권리를 더 요구하는 것, 혹은 정권 교체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순전한 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카지아니스 국장] “However, the likelihood that they could stake some sort of mass revolt, demand more political rights or push for regime change is sheer fantasy.”

“평양 밖에 사는 평범한 북한 주민들과 지배 엘리트 계층이 아닌 사람들은 너무 철저히 통제를 받아 자유로운 생각을 할 기회가 거의 없고, 혁명도 마음에 둘 겨를이 없다”는 겁니다.

아울러 전부는 아니더라도 평양에 있는 대부분의 권력자가 김정은 위원장 뒤에서 단결돼 있고, 김 위원장은 엘리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최상의 삶을 사는데 통치를 계속 집중하는 것을 볼 때 북한 정권의 운명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카지아니스 국장] “When you factor in how most, if not all, of the powers that be in Pyongyang are united behind Kim Jong-un as he has focused his rule on making sure they are content and live the best lifestyle possible we seem…”
이런 현실을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란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과거에 기초한 것으로,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현재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 노동당 전직 고위 간부 A 씨는 10일 VOA에, “대북 제재가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제재 압박이 지속되면 국가의 기능과 통제력이 모두 약화되고 지도자에 대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신뢰도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재로 정부 기관이나 주민들 모두 삶이 힘들어지면 개인주의가 강해진 주민들은 스스로 식량을 찾아 나서고, 엘리트의 불만도 커지면서 정부의 관리와 통제력은 약화된다”는 겁니다.

한국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최근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설문 조사해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북한에 있을 때 ‘개인이 집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응답자가 82%에 달했습니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이런 사례들을 지적하며 “개인과 돈에 눈뜬 북한 주민들은 (제재로) 시장과 일자리가 붕괴되면 2009년의 화폐개혁 때처럼 그 책임을 김정은과 권력층에 돌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 노동당 고위 간부 A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전원회의 보고에서 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통제 강화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지도자만 따르라고 하기 때문에 김정은에 대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옛 공산권 루마니아 출신인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10일 VOA에,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많은 간부가 숙청됐고 과거보다 더 많은 간부와 가족이 탈북했다며, 북한 엘리트가 하나로 뭉쳐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하나로 뭉쳐있는 게 아니라 분명히 김정은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고위 간부들도 많습니다.”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제재로 간부들에게 충성자금과 과도한 할당량 등 중앙당의 요구량이 훨씬 많아지면서 엘리트들도 고생을 많이 하고 불만도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북한의 체제 변화와 연관시키는 것을 경계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과 확산을 막는 겁니다. 목표가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게 아닙니다. 북한 일반 주민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망치려는 것도 아니고 반체제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유엔 제재와 북한의 체제 전환을 연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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