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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그린 최초의 화가, 조지 캐틀린


화가 윌리엄 피스크가 그린 조지 캐틀린의 초상화.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그린 최초의 화가 '조지 캐틀린'을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그린 최초의 화가, 조지 캐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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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캐틀린은 백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서부 대평원의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 지역에 들어가 그들의 얼굴과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입니다. 캐틀린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극히 중요한 화가지만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뛰어났습니다. 그의 인물화들은 주인공의 긍지와 자부심, 지적 이미지 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 느낌은 누구보다도 많이 그린 아메리카 원주민의 얼굴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지 캐틀린은 1796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조지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호사 일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조지는 틈틈이 밖으로 나가 자연 경치를 그리곤 했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독학으로 기능을 연마했습니다. 결국 그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초상화를 그리는 전업 화가로 나섰습니다.

젊은 화가로서의 생활은 무난했지만 늘 자신의 삶과 그림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여 명의 아메리칸 인디언 대표들이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피부색은 구릿빛이었고 머리털과 눈은 검은색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물 가죽옷을 입고 있었고 표정은 날카롭고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들을 처음 본 캐틀린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서부로 가서 원주민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대해 배워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틀리는 1830년, 미시시피강 가까이 있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변방 도시 세인트루이스 너머는 광대한 미지의 평원지대였고 백인 중에는 가본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캐틀린은 다행히 20여 년 전 서부를 탐험한 윌리엄 클라크를 만났습니다. 당시 정부의 인디언 문제 담당 최고 관리로 있던 클라크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캐틀린을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캐틀린은 오늘날의 다코다로 불리는 지역의 포트 유니언(Fort Union)이라는 곳에 화실을 차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부족은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 국경지대에 사는 인디언들로 매우 전투적인 종족이었습니다.

조지 캐틀린이 그린 원주민.
조지 캐틀린이 그린 원주민.

캐틀린은 어떤 백인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모습의 자연, 인디언 남성, 여성, 어린이 등 자신이 본 것은 무엇이나 그렸습니다. 인디언들의 옷, 무기, 마을, 종교 행사, 무용, 버펄로를 사냥하는 모습도 그렸습니다. 지금의 라크로스와 비슷한 경기를 하는 모습도 담았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캐틀린은 그림 도구와 며칠 동안 먹을 식량, 사냥을 위한 총을 지니고 혼자서 말을 타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1930년에서 1936년 사이 당시로써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서부의 인디언 땅을 다섯 차례나 여행했습니다. 여행 거리는 수천km에 달했고 각기 다른 50개 부족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캐틀린은 그림뿐만 아니라 기록도 꼼꼼히 남겼습니다. 사람을 그릴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이름과 그린 날짜를 표시했습니다. 캐틀린은 원주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고 명석하며 위대한 가치를 지닌 또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캐틀린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George Catlin's Indian Gallery’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곳 워싱턴 D.C.와 필라델피아, 뉴욕, 유럽에서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했습니다. 그때마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전시회와 함께 캐틀린은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내용에 대해 강연도 했습니다. 그는 원주민들과 함께 사는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누구도 위협을 가하거나 자신의 물건을 훔친 사람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캐틀린은 사람들에게 원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일깨우도록 애를 썼고, 특히 넓은 땅을 언제나처럼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캐틀린의 그림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는 재정난에 빠졌습니다. 캐틀린은 인디언 갤러리에 전시한 약 500점을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에 매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스미스소니언 측은 자금이 없어 그림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그림은 필라델피아에 사는 조셉 해리슨 이라는 부호에게 팔렸습니다. 해리슨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은 캐틀린의 그림을 스미스소니언에 기증을 하게 됩니다. 새라 해리슨 여사의 기증으로 스미스소니언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 유산을 보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지 캐틀린은 말년에 스미스소니언이 제공한 화실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던 중 1872년에 타계했습니다.

조지 캐틀린의 작품은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미국미술박물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의 렌위크갤러리(Renwick Gallery)에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가 간 지 150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일명 인디언들의 모습은 이제 방금 그린 듯 선명하게 관람객들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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