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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풍경] 한국 내 탈북 청년들, 미국서 북한인권 연수


20대 탈북 청년들이 지난달 워싱턴 D.C.의 ‘흑인역사박물관’을 방문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혁, 제씨, 노을, 일용, 찰스.
20대 탈북 청년들이 지난달 워싱턴 D.C.의 ‘흑인역사박물관’을 방문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혁, 제씨, 노을, 일용, 찰스.

한 주 간 북한 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 시간입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미국 내 북한인권단체의 활동에 한국 내 탈북자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뉴스풍경 오디오] 한국 내 탈북 청년들, 미국서 북한인권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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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외교관’, ‘대학교수’, ‘북한인권 운동가’ 그리고 ‘북한인권변호사’.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20대 탈북 청년들의 꿈입니다.

[녹취: 제씨] “그 땅에서 아빠 어머니가 다 돌아가셨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국제사회에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권운동가가 꿈인 제씨.

가난 때문에 11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장마당과 밀수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14살 북한 소녀.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기에 2011년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교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금혁 씨. 중학교 때 DVD를 소지한 이유로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국 베이징 유학 시절 한국인과 외국인들을 통해 외부세계에 눈을 뜬 것을 계기로 2012년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왔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금혁 씨는 민주주의와 정치학을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외교관이 돼 미래에 북한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중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후, 북한 당국의 심한 감시 속에서 힘들게 살았던 탈북 여성 노을 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술을 만들어 내다 팔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탈북해 한국에서 문헌정보와 문예창작을 공부한 노을 씨는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노을 씨는 자신이 쓴 글로, 남북한이 한국이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북한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은 일용 씨는 북한에서부터 주체사상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서 들려오는 자유의 소리를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탈북 청년 중 유일하게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찰스 류 씨는 가족들에 의해 외부 정보에 일찌감치 노출됐고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꾸렸습니다.

14살에 첫 탈북을 시도했고 북송된 후 집결소에서 고된 노동을 했던 류 씨는 재탈북해 2012년 미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류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서부 실리콘 벨리 지역에서 컴퓨터 관련 공부를 했는데요, 올해부터 미국 내 대북인권단체 링크와 함께 인권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다 온 탈북 청년들. 이들은 지금 이 시각 미국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북한 정권처럼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목소립니다.

각자의 꿈을 찾아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입니다.

이런 활동은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 본부를 둔 대북인권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가 올해 처음 진행하는 ‘2018 Advocacy Fellows(AF)’ 프로그램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링크는 지난 2004년 출범 후 900여명의 탈북 난민을 구출했고, 이들의 탈북 후 정착과 자기개발, 협력사업과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북한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현 시점에서 정치, 안보의 시각이 아닌 사람이 중심에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2018 Advocacy Fellow(AF)’을 기획했습니다.

이 단체는 탈북자 5명을 1대1 면접을 통해 선정했는데요, 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효과적으로 내는 방법을 교육하고 실행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 소통방식을 배우고 기술적인 자문을 받는데요, 각종 학술회를 통해 견문을 쌓고, 무엇보다 탈북자로서 북한인권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를 얻거나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갖게 됩니다.

미국에서 3개월 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북한인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11월 26일까지 90일 동안 진행되는 일정 가운데 2주 일정의 미 동부 방문은 북한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미 국무부와 민간 연구단체, 대북인권단체들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지난 3일 미 국무부 인권 프로그램 ‘인권 영웅들’에 출연한 3명의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습니다.

앞선 지난 29일에는 워싱턴 디씨의 관광지 중 하나인 인권 관련 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정을 가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인종학살 자료들을 모아놓은 ‘유대인학살 박물관-홀로코스트’와 미국 내 흑인에 대한 각종 역사자료 등을 전시한 ‘흑인역사박물관’입니다.

탈북자 청년 연구원들을 두 박물관에 대한 소감을 풀어놨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노을 씨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돌아보며 이런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녹취: 노을] “사람들이 어떻게 선동이 되는지, 왜 선동이 되는지 질문이 들었고, 인간이 악해질 수 있는 끝은 어딘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동기부여가 뭔지.. ”

일용 씨는 박물관의 전시물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일용] “탈북자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는 거 같아요. 북한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 정권에 의해 굶어 죽고 처형당하고. 그렇지만 홀로코스트 같은 경우에는 해결이 됐고, 사과도 하고 마무리가 되고 있지만 지금 북한에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잖아요.”

일용 씨는 북한에서의 장애인의 인권, 아이들의 인권, 굶주림 등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정권 때문이라며 나치 정권 아래 유대인의 상황이 현재 북한 주민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용 씨는 피해자인 북한 주민과 가해자인 북한의 김 씨 정권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대중의 시각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류 씨는 다른 경험을 말했습니다.

[녹취: 찰스 류] “벙크 베드가 있었어요. 저는 청진 도집결소에 들어갔을 때 침대가 생각났어요. 온성단련대에서 밥을 안 먹여요. 벙크 베드 보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뛰쳐나왔어요. 생각난 게 이게 진짜 한 개의 이슈가 아니구나..그런데 이슈들을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청년들은 흑인박물관을 돌며 미국 내 흑인들이 겪었던 아픔의 역사와 흑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박물관을 꼼꼼히 살피고, 두 시간이 넘게 자전거를 타면서 시내를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90일 간의 일정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달라진 스스로를 발견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노을 씨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장음 녹취: 청년들] “여기 와서 글을 쓰면서 고향 이야기를 다 되돌리는 작업을 했었거든요. 한국에서도 도전은 했어요. 그런데 슬픈 기억이 떠오르면 우느라고 이어가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그걸 이겨내고 울면서도 이야기를 써야 했기 때문에 극복 된 거 같고, 앞으로는 책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제 목표인 거죠.”

외교관이 꿈인 금혁 씨는 지금까지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 였다고 말합니다.

[녹취: 금혁] “미국에 와서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인종을 만다면서 내 식견이나 생각이 얼마나 우물 안에 개구리였는지.. ‘정말 세상 밖에 나가서 봐야 하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한 달 동안의 경험 속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에서 양보와 이해와 합의가 필요 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계 청년들에게 알리고 있는 찰스 씨는 더 활발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더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녹취: 찰스 류] “남은 두 달 동안 제 목적은 제 스토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 북한 사람들이 이렇구나 브레인워시 되지 않고, 일반화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에요.”

미국에서 북한인권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제씨 씨는 한 달 동안 그 꿈이 확고해졌다고 말합니다.

[녹취: 제씨] ‘24살에 공부를 시작했고, 영어도 작년에 공부했어요. 내가 세계에 나가 사람을 도와주고 큰 사람이 되려면 이 사람과 소통할 능력을 키워야 겠구나…링크든 기업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내가 배워야 하니까요. “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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