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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미국 포크 음악의 우상, 존 덴버


지난 1975년 존 덴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존 덴버와 함께 하는 저녁 TV' 에 출연해 라이브 콘서트를 하고 있다.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포크 음악의 우상, 존 덴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미국 포크 음악의 우상, 존 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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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시대, 1960년대를 비틀스의 시대라 한다면 1970년대는 존 덴버의 시대다” 이 말은 존 덴버의 매니저 피터 카스트로의 말이어서 자화자찬일 수도 있겠지만, 존 덴버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연예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존 덴버는 미국의 유명 포크 송 가수이자 작곡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사업가, 환경보호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알래스카 천연자연 보호에 뛰어들었고, 우주 환경까지 챙겼으며, 굶주리는 아프리카 구호 운동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노래도 잘 부르고 마음씨 착한 존 덴버는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숨을 거두어 그를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지게 한 연예인이기도 합니다.

존 덴버는 1943년 12월 31일 미국 서남부 뉴멕시코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이름은 헨리 존 도이첸도르프 주니어(Henry John Deutschendorf Jr.)였습니다. 아버지 헨리 존은 공군 장교였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존의 가족은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존 덴버는 음악과 거리가 먼 공대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니던 텍사스 공과대학을 도중에 그만두고 1965년 뉴욕 시로 가서 음악인의 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존 덴버는 뉴욕에 가서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라는 악단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1968년까지 약 4년 동안 이 악단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이때 존 덴버는 ‘제트기로 떠나요(Leaving on a Jet Plane)’를 작곡했습니다. 이 노래는 ‘피터, 폴, 앤드 매리(Peter, Paul and Mary)’라는 포크 송 그룹이 불러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노래가 대박을 치면서 존 덴버는 혜성처럼 떠오르게 됐습니다. 덴버는 이때 자신이 너무나 좋아했던 콜로라도주에 있는 로키산맥 도시 덴버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로키산을 좋아했는지는 그의 히트곡 'Rocky Mountain High'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50개 주는 각기 그 주의 노래가 있는데, 콜로라도 주는 존 덴버의 이 노래를 공식 주가로 삼았습니다.

1970년대는 덴버의 황금기였습니다. 청순한 이미지와 호소력으로 노래도 사랑을 받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의 일생 중 가장 성공적인 곡들은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때 나온 또 하나 유명한 곡은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있습니다. 천국 같은 곳 웨스트버지니아, 블루리지산맥과 셰난도아강…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처럼 웨스트버지니아는 산이 많고 계곡물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존 덴버의 음반 중 베스트 앨범이라 할 수 있는 'Greatest Hits'는 1973년 말에 앨범 차트 정상에 올라 3주 동안 머물렀고, 무려 175주 동안 200위권 내에 머무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고, 전국 어디에서나 그가 공연할 때는 입장권이 일찌감치 동이 났습니다. 덴버는 영화와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습니다.

맨 처음 출연한 영화는 1977년 조지 번스와 함께 한 '오 하느님(Oh, God!) '입니다.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 출연은 상당 기간 계속됐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배우로도 나오고 진행자로도 활약했습니다. 1975년에는 '존 덴버와 함께 하는 저녁(An Evening With John Denver)'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텔레비전 분야의 최고상인 에미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존 덴버는 환경보호, 인도주의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런 활동들로 존 덴버는 여러 가지 표창도 받았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고, 인도주의 활동으로 앨버트 슈바이처상도 받았습니다.

음악 활동으로서는 1974-75년, 음악 잡지 '레코드 세계(Record World) '에서 받은 최우수 남자 녹음상, 1975년 컨트리음악협회의 ‘올해의 연예인’상 등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의 리오 그란데 공원에 위치한 존 데버의 묘지. 묘지비 위에 '로키 마운틴 하이(Rocky Mountain High)' 가사 적혀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의 리오 그란데 공원에 위치한 존 데버의 묘지. 묘지비 위에 '로키 마운틴 하이(Rocky Mountain High)' 가사 적혀있다.

이처럼 인기를 구가하던 존 덴버는 1997년 10월 12일,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만 상공을 비행하다 자신이 몰던 항공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존 덴버는 아버지가 미 공군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뛰어난 조종사였기 때문에 자연 어릴 적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고 비행기 조종은 그의 중요한 취미였습니다. 존 덴버는 2천700시간 이상 비행경험이 있는 노련한 조종사였지만 운명의 그 날은 새로 구입한 비행기 기종에 익숙지 않아서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청량음료 같은 노래를 선사한 존 덴버. 그는 불의의 사고로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오늘도 수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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