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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반미 구호 자제는 대외용, 내부 사상교양과 인권이 잣대”


지난 18일 북한의 트위터 공식계정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선전 포스터.

북한 정권이 최근 반미 구호를 대외적으로 자제하는 것을 변화의 신호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주민에 대한 반제반미계급교양이 바뀌거나 인권에 개선이 있어야 진정한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정권이 혁명 역사를 다 바꿀 수 있을까요?”

북한 대학에서 과거 주체사상을 가르쳤던 현인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은 2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정권이 최근 반미 선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이같이 반문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대외적 협상용으로 보이려는 선전과 대내적으로 세뇌하는 혁명교양교육을 구별해야 변화 의지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데, 밖에서는 이런 내재적 현실을 잘 보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현인애 위원] “북한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것이 반제반미계급교양이다. 이렇게 표제를 달고 사업을 합니다. 그런 게 없어져야죠. 외부에서는 그런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한국은 물론 서방 세계의 많은 매체는 최근 반미 선전을 대외적으로 자제하는 북한 정권의 움직임을 매우 이례적이라며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해마다 6월 25일에 하는 미제 반대 투쟁의 날 행사가 잠잠히 지나가자 ‘AP’통신 평양 지국장은 25일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이은 또 하나의 데탕트, 즉 긴장 완화 조치의 신호”라고 풀이했습니다.

북한 여행 전문 업체 관계자들은 평양에서 비무장지대까지 김일성 광장과 여러 상점에 있던 반미 포스터가 사라졌다며 놀라운 변화라고 서방 언론들에 말했습니다.

언론들은 또 북한 관영 매체들이 지난 6·12 미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반미, 반제국주의 기사들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점, 북한이 최근 공개한 새 포스터들이 전쟁위험을 해소하고 남북이 자주통일, 평화, 공동 번영하자는 구호들을 강조한 점을 관심 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런 보도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현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현인애 위원] “빠른 시간 안에 바꾸기가 어렵지요. 왜냐하면 체제 유지에서 기본 논리가 제국주의 때문에 우리가 못살고 제국주의 때문에 우리가 뭉쳐야 하는데, 당장 적이 없어지면 그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겠어요? 그러니까 미국이 좋다 나쁨을 떠나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적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적을 없앨 수야 없죠. 북한 지도부가 그걸 모르겠어요? 전쟁을 자기네가 일으킨 것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실제로 북한 정권은 6·25전쟁 때 미군으로부터 입은 피해 등을 부풀려 주민들에게 주입해 적개심을 키우고 경제가 어려운 게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이라고 선전해 대미 적대 감정을 고취시킨다고 한국 통일부는 (북한정보포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씨 정권 3대에 걸쳐 우상화 선전·선동을 총괄했던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지난 2016년 중앙계급교양관 개관식에서 반제반미계급교양과 자주적 혁명의 승리를 물과 물고기에 비유할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로 묘사했습니다.

[녹취: 김기남 비서]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는 혁명 영도의 전 기간 반제반미교양, 계급교양을 혁명의 승패와 조국의 운명과 관련되는 자발적인 문제로 내세우고 전체 군대와 인민을 투철한 반제 계급의식을 지닌 견실한 혁명가, 투사로 준비시키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셨습니다. 계급교양을 당 사상교양사업의 주요 방향으로 5대 교양의 중요 내용의 하나로 정해주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는 것처럼 반제반미교양, 계급교양을 떠나 우리 인민의 자주적 삶과 혁명의 승리, 사회주의 승리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서방 세계에 망명한 한 북한 전직 고위 관리는 VOA에 “최고 수뇌부의 내적 의도와 외적 표출이 다르다는 것을 북한 관리들은 다 공인하는 현실”이라며 반미 구호 변화를 반길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독재가 내적 의도를 외부에 그대로 고집하면 대화가 이뤄질 수 없고, 대화를 안 하고 그대로 나가면 다음에 당장 직면할 현실을 우려하기 때문에 김 씨 가족 전원이 나서서 이런 평화적 공세를 취하는 것”이란 겁니다.

이 전직 관리는 그러면서 “핵무기는 김정은의 체제 생명보검이기 때문에 미국이 강요하는 무제한의 핵 포기와 검증, 사찰, 인권 문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북한 최고 수뇌부의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을 40년 이상 연구한 미 국방연구원의 오공단 책임연구원은 북한 정권이 반미 선전을 일시적으로 멈춘 것은 최대의 혜택을 받기 위한 시간 벌기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오공단 책임연구원] “번드르르하게 하는 것 같은데 아무 실속이 없고 빈 강정과 같은 겁니다. (북한에) 돈이 올 곳은 한국과 중국이니까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시진핑의 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거죠. 목소리를 조절하겠다. 잠잠하면서 최대의 베네핏을 받겠다. 이게 시간 벌기에요. 이런 거 해서 괜히 디퓨젼이 되잖아요. 중요한 이슈는 하나도 안 떠오르고.”

미 정보당국 고위직 출신인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평화적 공세 등 여러 움직임은 외부의 잠재적 비판 세력을 위협하면서 김정은의 목표에 우호적인 대외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민주주의 통치 원리를 깎아 내리면서 북한 정권의 압제와 인권 개선을 압박하려는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려고 북한 정권이 이런 기제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 터프츠 대학의 이성윤 교수는 25일 VOA에 북한 정권이 반미 행사를 하지 않고 관련 구호를 자제하는 것을 배우자에게 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1~2주 동안 잠시 이를 멈추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성윤 교수] “It’s about as meaningful as an abusive spouse holding off on beating his/her victim spouse for a full week or two. When one is used to being beaten all the time, a dramatic respite for a week or two set off the illusion of romance…”

폭력을 극적으로 잠시 멈춘 뒤 다음에 다시 배우자를 구타할 때까지 로맨스와 행복, 평화, 새롭게 시작하자며 환상을 심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북한 정권은 적대적 수사와 위협적 행동을 상대가 받아들이도록 아주 효과적으로 상대를 길들여왔다며, 이런 행태를 극적으로 잠시 바꿀 때 상대는 역설적으로 낙관과 흥분, 심지어 감사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실질적인 변화로 볼 수 있는 척도는 모든 정치범의 석방과 강제수용소의 해체, 주민들에게 이동과 정보 접근, 표현, 언론, 종교의 자유, 자유시장체제 등 기본적인 인권 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군사적으로는 휴전선에 집중적으로 전진 배치된 장사정포와 병력 감축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오공단 책임연구원도 정치범 수용소의 해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변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오공단 책임연구원] “지금 그런 것 같고 감동할 시간이에요? 정치범수용소 오픈 하고 인권, 북한인들에게 여행의 자유를 주면서 개방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안 하고 이런 작은 스텝을 갖고 득을 봐서 미국이 아 정말 잘한다. 아 이제 정말 변화가 있는가 보다 이렇게 오판하게 하고 미디어도 속아 넘어가고. 이러는 동안에 시간 벌기를 하고. 얻어먹고 빼 먹으려는 것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하려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민반 생활을 담은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인 한국 이화여대의 김석향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방식이 아닌 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줘야 진정성 있는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자기 방식대로 북한 주민을 사랑하지 말고 북한 주민이 원하는 게 뭔지 먼저 들어보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싫어도 내 옆에 있어야 돼. 그것은 스토커죠. 그러니까 스토킹은 그만하고 (북한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안전하게 (북한을) 떠나라. 위험하게 하지 말고. 그리고 자기는 (북한을) 그 사람들이 떠나고 싶지 않은 장소로 만들어 주면 되는 거죠.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원래 그런 겁니다.”

김 교수는 주민들에게 적어도 북한 내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면 의미 있는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과 미국이 제공하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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