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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원자탄을 만든 과학자들,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엔리코 페르미


J. 로버트 오펜하이머.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최초의 원자탄을 만든 과학자들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엔리코 페르미 이야기를 소개 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최초의 원자탄을 만든 과학자들,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엔리코 페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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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 주 알라모고르도 사막. 이날도 언제나처럼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천둥보다도 더 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구름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하늘은 자주색과 노란색으로 변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서운 무기의 실험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2차 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탄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 핵실험을 실시한 것입니다.

원자탄 개발은 미국의 국립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주관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맨해튼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로 불리는 비밀 원자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그때 이 연구소의 소장은 물리학자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였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핵 구름이 하늘로 치솟자 힌두교의 경전에 있는 말, “나는 죽음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자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고 회상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추진한 프로젝트가 성공했지만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가공할 폭탄을 만들었다는데 고민했습니다.

알라모고르도 시험이 끝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에 원자탄을 투하했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서두르지 않았다면 독일이 먼저 원자탄을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의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원자탄이 떨어지자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원자탄을 개발한 과학자 중에 가장 주목 받은 물리학자는 엔리코 페르미였습니다. 페르미는 중성자 충격을 통한 유도방사능 연구를 했고,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한 노벨상 수상자였습니다.

엔리코 페르미.
엔리코 페르미.

페르미는 파시스트 정권의 이탈리아를 탈출한 난민이었습니다. 엔리코 페르미는 1901년 9월 2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페르미는 독일의 괴팅겐대학교에서 막스 보른 교수 아래 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독일 유학을 마친 페르미는 1924년 로마로 돌아와 이탈리아 최초의 이론물리학 교수가 됐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이를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었습니다.

페르미는 1928년 역시 과학자인 로라 카폰과 결혼했습니다. 로라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는 유대인을 탄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르미는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페르미는 193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페르미 가족은 시상식이 있은 다음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왔습니다. 만약 유럽에 있었다면 그는 나치 독일을 위해 일을 하도록 강요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페르미는 뉴욕 시에 있는 컬럼비아대학, 중북부에 있는 시카고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핵 물리학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페르미와 또 다른 난민 과학자들은 독일이 원자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맨해튼프로젝트’에 합류함으로써, 미국의 원자탄 계획은 큰 힘을 얻게 됐습니다. 페르미는 세계 최초의 지속 가능한 인공적 핵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원자로의 설계와 건설을 지휘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1942년 12월 2일 시카고대학교 운동장 한쪽 관람석 아래에서 조립됐습니다. ‘시카고 파일 1호(Chicago pile)’라 불린 원자로는 가장 초보적인 것으로 직육면체 흑연 덩어리 속에 원통형 구멍을 파고 우라늄 봉을 넣은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페르미는 이 실험용 원자로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실현했습니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엔리코 페르미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엔리코 페르미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44년 엔리코 페르미는 미국 시민이 됐습니다. 그리고 곧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도와 알라모고르도의 원자탄 실험을 추진했습니다. 페르미는 오펜하이머와 함께 핵폭탄의 아버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페르미는 시카고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학에서는 ‘엔리코페르미연구소’로 불리는 핵 연구소의 책임을 맡게 됐습니다. 오펜하이머와 페르미는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수소탄이 개발되고 전쟁에 사용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페르미는 적은 원료로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은 물리학, 화학 심지어 의학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며, 원자력의 평화적인 사용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페르미는 1954년 원자력위원회로부터 핵 에너지 연구로 최고 영예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페르미를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자탄을 만들기 위해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 내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일한 엔리코 페르미는 1954년 53세를 일기로 시카고에서 타계했습니다. 사망 요인은 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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