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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납북·억류자 적극 제기...한국 정부는 침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일본 방문 당시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북한에 억류 중이거나 납치된 자국민들의 석방에 대해 미국·일본과 한국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와 아베 정부는 모두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납치 피해자가 가장 많은 한국 정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남북 화해를 위해 인권마저 희생하는 것은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가장 인파가 많이 붐비는 신주쿠 지하철역.

행인들이 바쁘게 걸어가는 지하도 벽에 빨간 모자, 체크무늬의 치마를 입은 채 남동생들과 환하게 웃는 소녀의 사진이 보입니다.

벽에는 소녀가 학교 운동회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 등 소녀와 가족사진 15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소녀의 사진들을 보며 천천히 걷는 한 할머니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해 보이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메구미를 구해주세요”란 큰 글씨가 보입니다.

이 소녀와 할머니는 지난 1977년 13살 때 일본 니가타현에서 북한 요원에 납북된 요코타 메구미와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 씨입니다.

요코타의 가족을 지지하는 단체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코타와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7일부터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녹취: 사키에 씨] “일본어”

올해 82살이 된 어머니 사키에 씨는 8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음을 바꿔 딸과 모든 납북자를 가족의 품으로 보내 준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일본의 많은 언론이 취재해 주요 소식으로 전국에 보도했습니다.

납북자 문제는 일본 정부와 국민 모두 큰 관심을 두는 국가적 사안입니다. 북한은 과거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다고 시인하고 사망자 8명을 제외한 5명과 가족이 북일 정상회담 뒤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 납북자는 17명, 확인이 되지 않은 실종자들까지 합하면 100여 명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거의 해마다 납북자 가족을 만나고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도 꼭 납북자 문제 해결을 요청해 왔습니다.

지난달 미 남부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납북자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납북자 가족들을 집으로 데려오도록 아주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 said we will work very hard on that issue, and we will try and bring those folks back home. Very, very hard.”

미국 정부 역시 북한에 미국인들이 억류될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석방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We're having very substantive talks with North Korea and a lot of things have already happened with respect to the hostages….”

미국 정부는 과거에도 억류 중인 미국인들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고 혼수상태로 풀려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제외하고 이들을 안전하게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납치된 피해자가 가장 많은 한국은 정작 이 사안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두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서도 납북자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8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한국인 납북자 가족들을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성룡 한국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입니다.

[녹취: 최성룡 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는 것은 좋지만, 미국인 억류자, 일본인 납북자 얘기할 게 아니지요. 당신은 우리 납북자 얘기하고 우리 억류자 얘기를 해야지요. 우리나라 국민을. 참 굉장히 저는 섭섭합니다. 가슴이 더 아픕니다.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북한 정권보다 더 섭섭하고 더 아파요.”

한국에는 6·25 한국 전쟁 때 납치된 전시 납북자 10만여 명, 전후 납북자 3천 835명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가 516명에 달합니다. 게다가 북한에 현재 억류 중인 한국인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씨와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 등 6명에 달하지만, 정부 관리들은 물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인도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8일 VOA에 납북자 사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과거에도 반복했던 답변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그러나 납북자 사안은 인도적 관점은 물론 피해자 가족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합니다.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화해를 위해 인권과 인도적 사안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납치된 자국민을 데려오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인질들을 보호하는 게 미국 정부의 의무이고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한국 정부도 같은 대한민국 주민들인데 북한에 억류돼 있고 수감돼 있는데, 나중에 해결하겠다고 하면 그 형제들, 대한민국 주민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리겠습니까?”

과거 유럽 내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었던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렘코 브뢰커 교수는 8일 VOA에 납북자 등 인권 사안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해 뒤로 미루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뢰커 교수] “문재인 정부는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 굉장히 나쁜 상황 속에 방치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권은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그 다음에 저절로 인권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잘못된 생각 같습니다.”

인류 보편적인 사안에 대해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오히려 북한 정권이 이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브뢰커 교수는 한국인 납북자의 경우 가족들이 많이 사망하거나 노령이기 때문에 더욱 서둘러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부가 남북교류 때문에 힘들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자국민 보호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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