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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대통령의 아내와 어머니, 바버라 부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버라 여사.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버라 여사 이야기를 소개 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대통령의 아내와 어머니, 바버라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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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1일 토요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성마틴 성공회 성당에서는 4월 17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이 거행됐습니다. 이날 장례식에는 남편과 아들 전 대통령을 포함한 4명의 전 대통령, 4명의 전, 현 영부인들, 그리고 1천500여 명의 가족 친지들이 모여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대통령 부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남편과 아들을 대통령으로 둔 여성은 단 2명뿐. 그중 한 명은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부인 애비게일 애덤스 여사로 아들이 제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애덤스 여사는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생전에 남편과 아들 대통령을 모두 본 건 부시 여사가 유일합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검소했습니다. 바버라 여사가 타계하자 어떤 언론은 그녀의 목걸이는 모조품이었지만 마음은 진실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바버라 피어스 부시 여사는1925년 6월 8일 뉴욕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빈 피어스, 어머니는 폴린 피어스였습니다. 아버지는 인기 있는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 회장이었습니다.

바버라의 선조 중에는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뉴욕주 라이(Rye)에서, 고등학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애슐리홀 기숙학교를 다녔습니다. 바버라는 수영, 테니스, 사이클 등 운동을 즐기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바버라는 16살 때 코네티컷주 그린위치에 있는 라운드힐 컨트리클럽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처음으로 조지 부시를 만났습니다. 당시 부시는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 필립스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부시 집안도 소문난 명문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18개월 만에 약혼식을 올렸습니다. 부시가 해군 폭격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동안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부시는 자신이 조종한 3대의 폭격기 이름을 바버라 호, 바버라 2호, 바버라 3호로 명명할 정도로 약혼녀를 사랑했습니다. 태평양 상공에서 비행기가 격추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부시는 1945년 전쟁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바버라는 그해 1월 6일 부시와 결혼했습니다. 그로부터 73년 동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조지 부시가 석유회사를 차리면서 가족은 텍사스주 오데사로 옮겼습니다. 이어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다시 텍사스주 미드랜드, 휴스턴 등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처럼 결혼 후 두 사람이 옮겨 다닌 횟수는 29번이나 됐습니다. 남편이 사업차 외지로 돌아다니는 동안 바버라 여사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부시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건 텍사스로 이사하면서부터입니다. 1963년 부시는 살던 지역(해리스카운티)의 공화당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수많은 선거를 겪게 되는 부시의 생애 중 해리스카운티 선거는 최초의 경선이었습니다. 이어 1964년에는 텍사스를 지역구로 하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합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비록 실패는 했어도 이를 계기로 부시와 바버라라는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시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을 비롯해 선거직과 행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바버라는 부시가 어느 직책에 있을 때나 늘 옆에서 남편을 도왔습니다. 부시가 하원의원이 되자 바버라는 워싱턴 D.C.에서 공화당 여성 그룹이라든지 각종 자선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70년에 상원의원 선거에서 다시 패배했지만 당시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부시를 유엔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버라 부시는 국제 외교계에도 발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1973년 부시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어 닉슨의 후임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4년 부시를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연락사무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부시 내외는 중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미국인들이 별로 가본 적이 없는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부시는 미 중앙정보국장에 임명됐습니다.

대중 앞에서 자주 연설을 하면서 바버라 여사는 차츰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면서도 재치있는 유머를 잘하는 여성으로 부각됐습니다. 1988년 조지 부시 부통령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때 공화당은 바버라 부시 여사에게 남편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연설을 하도록 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전당대회에서 남편의 지지 연설을 한 여성은 엘레노어 루즈벨트 여사 후 바버라 여사가 처음이었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연설에서 자신은 백악관에 들어가면 전통적인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자신은 교회봉사, 텃밭 가꾸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등 보통사람으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1988년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가 플로리다주 걸프 스트림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1988년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가 플로리다주 걸프 스트림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조지 부시는 1988년 11월 선거에서 승리하고 1989년 1월 20일 제41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 부시 대통령 부부는 커다란 리무진보다는 소형 승용차를 타려 했고, 출장을 갈 때도 기차나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경호실은 그럴 때마다 너무 많은 준비와 경호가 필요하고 위협 가능성이 높아 곤욕을 치렀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가능하면 남편과 견해가 다른 정치적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 같은 태도로 여론조사에서 바버러 여사의 인기는 전임 레이건 대통령 부인이나 후임 클린턴 대통령 부인보다 항상 상위에 있었습니다.

바버라 부시 여사가 부통령과 대통령 부인으로 있는 동안 가장 역점을 둔 활동은 문맹 퇴치 운동이었습니다. 바버라 여사가 이 운동에 관심을 둔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부통령 재직 시절, 아들 닐이 독서 장애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바버라 여사는 아이들이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는 8학년 수준 이상의 독서 능력이 없는 성인이 무려 3천500만 명에 달했습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글을 읽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가 가정이 없는 데서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맹 퇴치와 가정의 유지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이를 위해 바버라 부시 기금을 설립하고 여러 관련 단체들을 지도해 나갔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전국 규모의 정규 라디오 방송도 실시했습니다.

8년간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이들은 텍사스주 휴스턴과 동북부 메인 주의 부시가 저택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1999년에는 아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하지만 바버라 여사는 아들의 승리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도 떨쳐버리고 아들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드디어 남편과 아들 대통령을 둔 여인이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지사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차남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의 주지사가 돼 있었습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명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소탈한 스타일, 솔직한 성품과 유머 감각 덕분에 미국 대중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남편이 대통령 임기 첫해 지지율이 한때 20% 아래로 곤두박질쳤지만, 부시 여사의 지지율은 여전히 40%에 육박했습니다.

노년에 들어서면서 바버라 여사는 호흡기 질환과 심부전을 앓았습니다. 타계하기 전 건강 악화로 가족과 텍사스 병원의 의료진은 추가적인 의학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바버라 여사는 남편 부시가 손을 꼭 잡자 어렵게 눈을 뜨고 바라보며, “당신 정말 엄청나게 핸섬한 사람이군요”라고 말했습니다.

16살에 첫 키스를 한 남자와 일생을 같이 한 바버라 부시 여사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018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시 여사는 4남 2녀를 낳았습니다. 자녀 5명에 손주 17명, 증손주 7명 등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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