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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기획인터뷰 2: 핵전문가 올브라이트] “북, 핵무력 완성 선포는 협상용…핵시험장 재사용 가능”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북한이 핵실험 중지와 핵시험장 폐기를 선언하며 핵역량 완성을 이유로 든 것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 자국의 역량을 선포한 의미가 있다고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이 진단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21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있는 담보”와 연결시킨 건 전례 없는 일이라며 핵시설 “접근” 가능성을 높인 행보로 풀이했습니다. 이런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선 협상 초반에 과거보다 훨씬 구체적인 조치를 현실화시켜 비핵화 시간표를 대폭 단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만, 이미 핵무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요. 원하는 걸 가졌다는 선언에 더 가까운 거 아닌가요?

올브라이트) 협상에 앞서 밝힐 필요가 있는 ‘엄연한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봅니다. 우선 핵 억제력 보유 목표를 달성했다는 걸 선언하고 협상에 나서겠다는 거죠. 저는 북한이 핵미사일로 미국을 타격할 능력을 확보했을 가능성에 회의적입니다만, 북한으로선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단은 이렇게 주장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기자) 그래도 북한이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주장으로 들리는데요.

올브라이트)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정말 관심이 있고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조건을 고수한다면, 핵폐기와 검증 과정에서 북한의 핵개발 수준에 대한 많은 사실이 드러날 겁니다. 핵 프로그램을 되돌리는 과정이 돼야지 그저 핵무기를 넘기는 것으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생산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다 밝혀야 하는 겁니다. 북한은 그런 부분까지 알 것 없다는 태도를 보일지 모르지만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번 발표가 앞으로 협상의 대상이 될 핵역량을 일단 선언한 것이라면, 김정은이 밝혔다는 비핵화 의지와 모순된 건 아니라는 얘긴가요?

올브라이트) 그렇습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정서의 다른 문장을 보면 “핵 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돼 있거든요. 물론 필요한 시험을 이미 다 마친데다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핵시험장인지 여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선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있는 담보”와 연결시킨 전례는 없습니다. 6자회담 당시 검증을 논할 때도 핵시험장은 “갈 수 없는 곳”으로 선을 그었었죠. 이번 선언으로 핵시험장에 대한 미국의 접근이 허용된 건 아니겠지만, 곤란한 문제였던 ‘접근’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는 의미는 있는 겁니다.

기자)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는 거군요.

올브라이트) 중요한 걸 양보하겠지만 “상점”을 포기하진 않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이 추는 “춤”이라고 할까요? 저는 이를 희망적인 신호이자 분명한 진전으로 봅니다. 중요한 건 핵시험장 폐기가 아니라 그걸 “투명성있게”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종류의 감시 활동을 허용하거나, 적어도 그런 가능성에 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2008년 북한은 핵시험장에 미국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투명성을 담보한 적도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기자)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핵무기와 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그럼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이 역시 핵보유국만 할 수 있는 얘기 아닙니까?

올브라이트) 핵확산을 하지 않겠다고 먼저 약속하지 않고는 미국과 협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뿐 아니라 관련 기술에 대한 중요한 약속을 한 겁니다. 저는 북한이 시리아에 원자로용 흑연 판매를 시도했던 정황을 조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이런 종류의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물론 제대로 판단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만 저는 옳은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고 봅니다.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건 적국에 북한이 핵역량을 제공하는 것이고, 따라서 김정은은 중요한 확산 이슈 또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겁니다.

기자) 이 역시도 김정은이 핵역량을 과시한 게 아니라 협상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하시는 거군요.

올브라이트) 그렇습니다. 협상 의지는 밝히되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하겠다는 거죠. 핵무기를 갖고 있으니,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은 핵포기 대가로 많은 걸 줘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협상을 위해선 확산을 안 하겠다는 약속과 핵시험장과 같은 군사시설에 대한 접근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여기에 제2의 농축시설이나 핵무기 생산, 저장고 등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곳들도 북한은 공개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하지만 이번 선언만큼은 긍정적인 진전입니다.

기자) 풍계리 핵시험장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시설이라는 지적도 있고, 따라서 폐기해도 아쉬울 게 없게 된 건 아닐까요?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때처럼 말이죠.

올브라이트) 냉각탑 폭파는 상징적 조치였지만 핵시험장은 실제 핵시설입니다. 북한이 접근을 허용한다면 플루토늄과 무기급 우라늄 보유량에 대한 중요한 검증을 할 수 있는 곳이죠. 풍계리 시험장은 이미 “고물”이 됐다고들 하는데, 2007년 5메가와트급 원자로를 폐쇄했을 때도 그런 지적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협상이 결렬되자 원자로 가동을 재개해 플루토늄 생산을 계속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핵시험장도 협상이 잘 안 되면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영변 밖에 있는 핵시험장과 관련해 투명성을 강조한 건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비핵화 협상 첫날부터 북한에 뭘 요구해야 합니까?

올브라이트) 매우 비중 있고 구체적인 비핵화 약속을 앞쪽에 놔야 합니다. 핵시설을 동결하고 나서 2년 뒤 검증하고, 또다시 2년이 지난 뒤에 핵무기를 폐기하는 식의 시간표는 안됩니다. 비핵화가 훨씬 빨리 달성되는 절차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 때처럼 쉬운 걸 먼저 한 뒤에 어려운 과정에 부딪쳐 협상이 결렬됐던 전철을 밟아선 안 됩니다. 따라서 북한의 훨씬 진전된 비핵화 의지와 절차가 한참 앞쪽에 놓여야 한다는 얘깁니다. 과거 협상에 매우 비판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매우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는 어떤 보상도 제공해선 안됩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으로부터 핵, 미사일 시험 중지와 핵시험장 폐기를 선언한 북한의 의도와 미국의 대처 방안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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