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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영화 '벤허'의 주연 배우, 찰턴 헤스턴


지난 196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3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배우상을 수상한 찰턴 헤스턴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영웅적인 지도자 역할을 많이 한 영화 배우 찰턴 헤스턴을 소개합니다.

강력하고 영웅적인 지도자 역할을 많이 한 배우 찰턴 헤스턴. 윤곽이 뚜렷한 얼굴, 근육질 체격으로 역사적인 지도자, 군인, 탐험가 등의 역을 많이 했고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배우입니다.

헤스턴은 60년간의 배우 생활을 통해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1959년에는 영화계 최고의 영예인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했죠.

챨턴 헤스턴은 1923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도시 시카고에 인접해 있는 미시가 간 호반의 도시인데, 태어나기는 거기서였지만 어렸을 때는 주로 인근 미시간 주 세인트헬렌에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들이 이혼을 하자 헤스턴은 어머니의 결혼 전 성 찰턴을 이름으로 삼고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 성을 따 헤스턴으로 성을 바꾸었습니다.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 연극을 하다가 배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에번스턴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인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영화를 배웠습니다. 노스웨스턴대학은 메릴 스트립과 같은 유명 연예인을 많이 배출한 학교죠. 그러나 대학 2년 후에 2차 대전이 일어나서 헤스턴은 미 육군항공부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1944년 대학 동기인 리디아 클라크(Lydia Clarke)라는 여성과 결혼을 합니다.

헤스턴 부부는 전쟁이 끝나자 뉴욕으로 옮깁니다. 거기서 배우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헤스턴은 극장과 텔레비전 방송에서 조그마한 배역을 맡게 됐습니다. 그런 역할 중에 제인 에어라는 소설을 극화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것이 세계 영화의 수도라 불리우는 헐리우드의 제작자 할 월리스(Hal B. Walis)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와 인연이 시작됩니다.

월리스는 그를 1950년에 나온 ‘어두운 도시’라는 영화에 출연을 시켰습니다. 그 다음에는 세실 B. 데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라는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헤스턴은 서커스단 감독의 역을 맡았습니다. 데밀 감독은 그 후 헤스턴에게 십계라는 영화에 출연해 모세의 역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영화는 1956년에 나왔죠.

그 유명한 십계,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축일이 되면 방송사에서 이 영화를 종종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헤스턴은 이집트의 왕자이지만 본래는 히브루 혈통이라는 것을 알고, 유태인 노예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의 역을 했습니다. 이 영화야말로 헤스턴을 일약 유명 배우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영화로 헤스턴은 영웅과 리더의 역을 주로 하는 배우로 굳혀지게 됐습니다. 영화 십계는 무척 길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간 영화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특수 효과 장면이 많은 영화입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영화 '벤허'의 한 장면.
찰턴 헤스턴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영화 '벤허'의 한 장면.

찰턴 헤스턴이 출연한 영화 중 최고의 찬사를 받은 영화는 벤허. 이 영화가 나온 건 1959년입니다. 벤허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찰턴 헤스턴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여기서 찰턴 헤스턴은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나중에 풀려나 로마의 통치에 항거하는 유다 벤허라는 유대인으로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벤허와 그의 정적이 벌이는 마차 경주 장면으로 유명했습니다.

영화에서 그와 같은 대규모 장면을 재연하는 데는 막대한 돈과 기술이 필요하게 마련이죠. 당시까지 영화 벤허는 미국 영화 제작사상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사인 MGM은 제작에 1천500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이 영화는 워낙 인기가 높아 그렇게 많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MGM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마차 경주와 같은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 많은 배우들은 그런 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즉 스턴트라는 대역을 쓰기도 하는데, 찰턴 헤스턴은 그런 역도 본인이 모두 했습니다. 찰턴 헤스턴은 자기 말들 그리고 팀이 빠른 마차 경주 장면을 잘 연기하도록 오랫동안 연습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이 영화는 무려 11개 부분의 아카데미 상을 받았고, 헤스턴은 남우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배우든지 자기가 맡은 역을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찰턴 헤스턴은 특히 등장인물의 성격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고통과 환희(The Agony and the Ecstasy)’에서 헤스턴은 16세기 예술가 미켈란젤로 역을 했습니다. 헤스턴은 주인공의 역할을 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직접 그림과 조각을 배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미켈란젤로가 쓴 수백 통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철저한 연구를 해가며 연기를 한 거죠.

그의 외모가 독특해서 기독교의 성자 세례자 요한을 묘사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든가 스페인의 영웅을 그린 영화 ‘엘씨드’ 처럼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의 역할을 많이 했는데, 현대의 수사관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56년 ‘악마의 손길’이라는 영화인데요, 여기서 헤스턴은 멕시코 마약 범죄 수사관 역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워낙 잘 만들어져서 범죄 영화 최고의 본보기로 여겨졌습니다.

카우보이, 군인, 체육인 등 워낙 많은 영화에 출연을 했는데, 그 외에도 헤스턴은 1960년대 여러 모험 영화에도 출연했고, 아프리카 수단의 도시를 말하는 카툼도 그가 출연한 유명 영화입니다. 공상과학 영화 ‘혹성탈출’ 즉 ‘Planet of the Apes’에서는 사람이 아니면서 강력하고 지능이 높은 존재가 통치하는 세상에 포로가 된 우주인 역을 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지진, 항공기 납치, "Airport 1975." 등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찰턴 헤스턴은 일생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습니다. 1950년대 헤스턴은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1963년에는 인종 평등을 위한 워싱턴 DC 시위에 연예인들이 참여하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다는 유명한 연설을 한 그 시위입니다. 당시 헤스턴은 적극적으로 킹 목사를 지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찰턴 헤스턴은 배우 조합인 ‘스크린 액터스 길드(Screen Actors Guild)’의 회장을 6년간이나 연임하는 등 영화계 단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헤스턴은 영화학교인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설립에도 적극 나섰고 소장을 역임했습니다.

헤스턴은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상 외에도 1977년에는 영화 예술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장 허셔트(Jean Hersholt) 인도주의상’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케네디센터 영예의 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찰턴 헤스턴은 연로해 지면서 차츰 보수적인 정치 사회 운동으로 성향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인 총기 소유 금지법에 강력히 반대하는 유명 인사가 된 것입니다. 1998년에는 미국 총기협회의 회장이 됐는데요, 이 기구는 총기 소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강력히 반대하는 단체입니다. 총기 소유는 미국 헌법에 보장된 중요한 개인의 권리라는 논리죠.

찰턴 헤스턴은 2000년, 치매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성명을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토록 강인한 인상을 가지고 불굴의 지도자상을 많이 연기한 그도 지병을 앓다가 2008년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영화에서 찰턴 헤스턴이 살려낸 강력한 영웅적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연기 스타일, 그가 출연한 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의 한때를 생생히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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