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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나라 짐바브베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지난 21일 전격적으로 사임했습니다. 짐바브웨는 장기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퇴진을 놓고 큰 혼란을 겪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은 바로 짐바브웨 사태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37년 1인 장기집권 시대를 끝낸 짐바브웨”

[녹취: 무덴다 국회의장]

지난 1980년부터 짐바브웨를 통치해온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21일 의회에 편지를 보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무가베 대통령은 제이콥 무덴다 국회의장이 대신 읽은 편지에서 이 결정이 자발적인 것이고 자신의 사임을 통해 순조로운 권력 이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환호하는 시민들]

한편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짐바브웨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또 짐바브웨 의회는 무가베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중단했습니다.

“갈등의 계기 - 내부 권력투쟁”

대통령의 사임을 촉발한 계기는 무가베 대통령이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지난 11월 6일 갑자기 해임한 것이었습니다.

무가베 대통령이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해임한 것은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해 권력을 부인 그레이스 여사에게 물려주려는 사전 작업으로 해석됐습니다.

무가베 대통령보다 나이가 40년 이상 어린 그레이스 여사는 ‘구찌 여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낭비벽이 심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무가베 대통령의 조처에 반발해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군부의 반란 움직임까지 나오면서 짐바브웨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들었습니다.

“무가베 대통령에게 가중된 사임 압력”

정국 혼란이 심해지자 짐바브웨 집권당인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 애국전선'(ZANU-PF)은 무가베 대통령에게 20일 정오까지 물러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무가베 대통령은 19일 저녁 TV에 나와 자신에 대한 퇴임 요구를 일축합니다.

[녹취: 무가베 전 대통령]

무가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가 지도자와 군 사령관인 자신의 지위에 변한 것이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날 뜻이 전혀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ZANU-PF’ 측은 무가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군부 반란 등 가중되는 압력에 못 이긴 무가베 대통령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짐바브웨 독립의 아버지 - 무가베 전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의 일생은 짐바브웨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지난 1924년 2월 21일, 현재 짐바브웨로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남로디지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효과: 아프리카 음악]

지난 1950년대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가나로 건너간 무가베는 현지 정부의 대민 정책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무가베는 소수파인 백인들이 다수 인종인 흑인들을 차별하는 것에 반발해 ‘짐바브웨 아프리카민족동맹’(ZANU)을 결성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ZANU는 경쟁 세력인 ZAPU와 협력해 1972년부터 무장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1979년에 들어서자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이 평화협정과 독립국 헌법을 중재했고, 이듬해인 1980년 남로디지아가 마침내 짐바브웨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에서 독재자로의 변신”

[효과: 짐바브웨 국가]

무가베는 짐바브웨가 독립한 1980년 총리가 됐습니다. 이후 1987년 무가베는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독립의 아버지 무가베도 짐바브웨를 번영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실업률은 올해 초 기준으로 90%에 달하고 물가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오르면서 화폐가치는 폭락했습니다. 게다가 연이은 흉년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만연으로 짐바브웨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가베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지난 2000년 백인 농장주들의 재산을 무상으로 몰수하고 이 자산을 흑인들에게 분배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짓밟힌 짐바브웨 민주주의”

짐바브웨의 어려움에는 정치적 불안정도 한몫 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인 무가베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전형적인 독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무가베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반대 세력을 국가기관과 폭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짐바브웨의 대통령 선거는 무가베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각종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졌습니다.

지난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가베 대통령은 야당이 내세운 모건 창기라이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하지만 무가베 정부는 권력 이양을 거부하며 결선 투표를 관철시켰고, 폭력이 만연한 가운데 창기라이 후보가 결선 투표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가베 대통령 혼자 결선 투표에 나와 당선됐고 창기라이 후보가 총리직을 맡는 선에서 여당과 반정부 진영이 타협합니다.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2013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됐지만, 야당은 이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93세로 세계 최고령 지도자였던 무가베 대통령은 내년에 치러질 대선에 나갈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불확실한 짐바브웨의 미래”

공석이 된 무가베 전 대통령의 자리는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승계했습니다.

집권당인 ZANU-PF는 지난 19일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을 당 대표로 선임했고, 22일 피신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돌아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24일 과도정부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짐바브웨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무가베 대통령의 퇴진이 혁명이 아닌 집권당 내부의 세력 교체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들은 ZANU-PF의 일당 지배체제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뉴스 속 인물”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의 주인공은 에머슨 음난가그와 신임 짐바브웨 대통령입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사임으로 새로 대통령이 된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올해 71살인 음난가그와 짐바브웨 대통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무가베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려온 사람입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1960년대 로디지아 백인 정권에 의해 투옥된 경력이 있고 70년대에는 무장독립 투쟁에도 참여했습니다.

중국과 이집트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짐바브웨 독립 초기인 1980년대 정보기구 수장을 맡았습니다.

이 기간 짐바브웨에서는 내전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당시 정보기관 수장으로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빈틈 없고 무자비하며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악어'로 불립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부통령 재직 시절, 내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주자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무가베 전 대통령이 지난 11월 6일 음난가그와 당시 부통령을 전격적으로 경질했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결국 37년 독재 체제를 끝내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살해 위협이 있다며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이곳에서 무가베 대통령을 반대하는 선전전을 펼쳤고, 그를 지지하는 군부가 결국 무가베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집권당내 음난가그와 지지세력도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무가베 대통령을 당 대표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결국 탄핵 위협을 통해 무가베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 냈습니다.

과도정부를 맡은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음난가그와 신임 대통령이 무가베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무가베와 다를 바가 없다고 경고합니다.

새로 취임한 음난가그와 대통령이 짐바브웨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 전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짐바브웨 사태’ 그리고 ‘뉴스 속 인물’로 에머슨 음난가그와 신임 짐바브웨 대통령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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