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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스페셜올림픽' 창설자,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스페셜올림픽'을 창설한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가 1975년 2월 뉴욕의 장애인 학교에서 지적장애 학생들과 농구를 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스페셜올림픽'을 창설하고 전세계 많은 지적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긴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입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스페셜올림픽(Special Olympics)을 창설하는 등 전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

그녀는 1987년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South Bend)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You are the stars and the world is watching you. By your presence, you send a message to every village, every city, every nation. A message of hope, a message of victory.”

“여러분은 스타입니다. 세계가 여러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출전함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나라, 모든 도시, 모든 마을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희망의 메시지이며 승리의 메시지입니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천만 장애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은 여성입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 가문 출신으로, 다른 형제자매와는 달리 정치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은 유니스 케네디.

케네디 남매는 모두 10명이나 되는데요, 큰 아들은 해군 대위로 2차 대전에서 전사, 그 다음이 1961년에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 암살당했고요, 여섯째가 바로 오늘 소개해드리는 유니스 케네디입니다. 여덟째가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자 대통령 후보, 역시 암살 당했죠. 막내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입니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다른 가족들처럼 공직 선거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여러 해 동안 오빠인 존 F. 케네디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막내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선거 운동은 열심히 도왔습니다. 1953년 결혼한 남편 서전 슈라이버가 부통령에 출마한 적은 있으나 실패했죠.

슈라이버 여사는 공직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매진해 어떤 공직자 못지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유니스 슈라이버 여사는 1921년 매사추세츠 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인 조셉 케네디와 로즈 케네디 사이 10명의 자녀 중 여섯째였습니다. 유니스는 캘리포니아 주의 명문 스탠퍼드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다음 여러 군데서 소셜워커, 사회복지사로 일했습니다.

케네디가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 전사한 조셉 케네디 주니어를 기리기 위해 사회복지를 개선하기 위한 조셉 케네디 주니어재단 (Joseph P. Kennedy Junior Foundation)을 창설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1957년 이 재단의 부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이때부터 장애인들을 돕고,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케네디 가족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는 가정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의 언니이자 존 F. 케네디의 바로 아래 동생인 로즈마리 케네디가 지적 장애아로 태어났습니다. 로즈마리는 커가면서 더욱 살기도 어렵고 보살피기도 어려웠습니다. 로즈마리가 20살 때 그의 아버지는 딸의 뇌 수술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로즈마리를 완전한 불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로즈마리는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중증 장애자 보호시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과거에는 지적 장애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희망이 없는 질환으로 간주됐었고, 그래서 많은 가정에서는 그런 자녀를 비밀리에 특수 수용시설에 보내 살게 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와 어울리는 활동, 자원, 일자리 제공 등은 거의 없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사회와 차단돼 있었고 배려도 없었으며 사회적인 권리도 극히 미약했습니다.

그래서 슈라이버 여사는 장애인들도 유용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여주면서, 이런 현상을 바꾸어 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오빠나 동생들이 요직에 있어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오빠인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해서 발달장애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도록 했고 그 노력으로 국립보건원에 국립 아동보건 인간개발연구소가 설치됐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1962년 시사잡지인 ‘Saturday Evening Post’에 ‘저능아의 희망’이란 글을 게재했습니다. 이 글에서 슈라이버 여사는 여러 해 동안 비밀로 해 왔던 언니 로즈마리의 불운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언니의 예를 들면서 장애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 하게 지적했습니다. 이어 지적 장애자들이 쓸모 있는 시민으로 대우받고 이들을 위한 특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케네디가의 뛰어난 점만을 들었던 미국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죠. 장애자를 갖고 있는 가정은 아무런 사회적 지원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한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고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슈라이버 여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Think of the families, think of the mothers who love their children but feel so desperately alone. Their children have done nothing wrong, committed no crime and perpetuated no injustice. They are the world's most innocent victims, and they suffer only because they are different."

“장애 아이들을 갖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보세요,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얼마나 절망적인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고,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희생자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오직 다르다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또 워싱턴과 인접한 메릴랜드 주에 장애자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열었습니다. 여름 동안에 장애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과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여름 학교입니다.

한 어머니가 여름 방학 동안에 장애인 아이를 보낼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말을 듣고 이를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정상적인 아이들도 이곳에 참여하는 걸 환영했습니다. 다만 모든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도우미들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립학교의 학생들에게 이 캠프에 와서 봉사를 해줄 것도 요청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자신이 직접 장애아이들과 수영도 하고 공놀이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셜올림픽이라는,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대형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장애인들이 다치거나 경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치부됐었습니다. 1968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최초의 올림픽을 열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In ancient Rome, the gladiators went into the arena with these words on their lips: let me win, but if I cannot win, let me be brave in the attempt. Today, all of you young athletes are in the arena. Many of you will win. But even more important, I know you will be brave and bring credit to your parents and to your country. Let us begin the Olympics, thank you."

“고대 로마에서는 검투사들이 ‘이기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기지 못한다 해도 용감하게 싸우게 해 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경기장에 나갔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 많은 사람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은 용감히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 자부심을 부모님께 그리고 여러분 나라에 가지고 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첫 대회에는 미국 26개 주와 캐나다에서 약 1천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은 육상, 수영, 하키 등 경기를 벌였습니다. 지적 장애인들에게 슈라이버 여사는 특별 올림픽이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뛰어난 아이들은 뛰어난 체육인기도 하다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170여 개 국가에서 570여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행사가 됐습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장애인 사업을 이루어 놓은 슈라이버 여사지만 여전히 할 일은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Let us not forget that we have miles to go to overturn the prejudice and oppression facing the world's one hundred eighty million citizen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세계 1억8천만 명에 달하는 지적 장애인들이 겪는 편견과 억압을 타파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페셜올림픽 말고도 슈라이버 여사는 다른 여러 가지 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교에 의학 윤리 센터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또 ‘Community for Caring’이라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보살핌의 공동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즉 10대의 임신을 피하도록 돕고, 학생들에게 불우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방법,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이런 여러 가지 활동으로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네르 훈장, 미국 민간인 최고의 상인 대통령 자유메달 상 등 여러 가지 표창을 받았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2009년 여러 차례 뇌졸중을 겪고 88세를 일기로 숨졌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개척자적 노력으로 전 세계 수천만 장애인들의 삶을 바꾸어 놓고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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