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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입니다] '접시닦이에서 백만장자로' 타시타 투파


타시타 투파 씨가 자신의 스쿨버스 회사의 차량을 직접 시운전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난민 신분으로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부터 시작해 25년이 지난 지금 백만장자가 된 타시타 투파 씨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난민을 비롯한 이민자 대부분은 미국에 처음 정착하면서 이런저런 고생을 하기 마련입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서 화려한 출발을 하기란 쉽지 않죠. 오늘의 주인공 타시타 투파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2년, 20대 후반의 나이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온 타시타 씨는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부터 시작했는데요. 25년이 지난 지금, 타시타 씨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손꼽히는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현장음: 스쿨버스]

매일 아침 미국의 도로 곳곳엔 아이들을 학교로 실어 나르는 노란색 통학버스 즉 스쿨버스가 줄을 잇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스쿨버스를 이용해 등교하기 때문인데요. 미 중서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가장 성공한 스쿨버스회사로 손꼽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MTN(Metro Transportation Network Inc.)’이라고 하는 회사인데요. 무려 1만5천 명의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현장음: MTN 터미널]

MTN이 새로 문을 연 버스 집결지. 노란색 스쿨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요. 이 회사의 대표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타시타 투파 씨 입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저는 지금도 운전을 많이 합니다. 새로 산 차의 운행 거리가 지난달에 1만6천km 를 찍었는데 한 달 만에 거의 두 배가 됐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 운전 중독인 것 같아요. ”

운전이 좋아 시작한 스쿨버스 사업이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타시타 씨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입니다. 오로모족이 거주하는 오로미아주에서 태어난 타시타 씨는 13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가족이 운영하던 농장에서 자랐는데요. 늘 도시로 가서 멋진 직업을 갖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타시타 씨는 난민 신분이 되고 맙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저는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든요. 미국에 오기 전, 저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주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에티오피아의 공산주의 군사정권이 소련 붕괴와 함께 무너졌죠. 저는 오로모 족의 일원으로 ‘오로모해방전선’의 활동을 도왔는데요. 하지만 결국 에티오피아의 최대 반군조직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저는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껴 에티오피아를 떠나게 됐습니다.”

정치적 난민으로 미국에 온 타시타 씨가 정착한 곳은 미국 미네소타주의 최대 도시 미니애폴리스였습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미니애폴리스에 온 게 1992년 9월이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을 날씨였죠.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에서 나와 도심을 걸었는데 정말 높고 멋진 빌딩이 있더라고요. 몇 층인지 세어봤는데 50층까지 세고는 멈췄습니다. 끝까지 못 셀 정도로 고층 빌딩이었어요. 나중에 이곳이 미니애폴리스의 명물이자 상업용 빌딩인 55층짜리 IDS 센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 훌륭한 건물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미국에서도 뭔가 해내고 싶다, 이런 다짐을 했죠.”

하지만 막상 미국 생활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에티오피아에 있을 땐 제가 영어를 완벽하게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와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미니애폴리스의 힐튼 호텔 주방에서 일을 했어요. 그릇 닦는 일이었죠. 시간당 5달러 60센트를 주는 일이었는데 전 그래도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이후에 직업 훈련 센터에 등록해서 일을 배우기도 했고요. 공장에서도 일하고 경비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타시타 씨는 학교에도 진학했는데요.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 석사를 따게 됩니다. 학위를 마친 후엔 미네소타 주 정부의 주택부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녹취: 타시타 투파]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두,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했던 저는 주 정부에서 일하면서도 택시 운전을 또 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살림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주말과 저녁 시간에 운전대를 잡았는데요. 돈을 버는 것도 좋았지만, 운송업 일이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거기다가 제가 운전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조금 일하다가 택시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

타시타 씨가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일하고, 또 공항 같은 먼 거리는 피하고 가까운 거리만 다닌다고 동료 운전사들이 타시타 씨를 회사 측에 고발한 건데요. 결국, 회사는 타시타 씨를 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타시타 씨는 본인의 사업을 구상하게 됩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특히 사업을 시작할 땐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저와 비슷한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과 일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2003년에 형과 함께 스쿨버스 사업을 구상해냈습니다. 그리고 지역 학교를 다 찾아다니며 직접 손으로 쓴 사업신청서를 냈습니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던 거죠.”

타시타 씨는 아내가 쓰던 밴 그러니까 승합차 한 대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보호소에 머무는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고, 오는 일을 한 건데요. 하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사업 자금을 빌릴 데가 없었죠. 은행에서도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신용도 없었고요. 제가 거래하던 은행원조차 돈 낭비를 하지 말라며 비꼬았습니다. 결국, 사업 융자를 받는 건 포기했고요. 정말 열심히 돈을 모아서 사업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밴 한대에 사업 자금도 부족했지만, 한때 외교관을 꿈꿀 정도로 탁월한 친화력과 협상력을 가진 타시타 씨는 일을 따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15년이 지난 지금, MTN은 직원 300명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는데요. 최근 새롭게 문을 연 버스 집결장엔 300대의 버스와 밴이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녹취: 타시타 투파] “저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주방 일을 도우라고 조언합니다. 훈련은 집 주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도 활용할 줄 하고, 기술도 더 좋고, 더 열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훨씬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더 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에티오피아 출신 타시타 투파 씨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타시타 씨의 성공 비결과 함께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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