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 입니다. 옷수선 기술 하나로 지역에 이름을 알린 이란 출신 파르빈 자말레자 씨의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2006년 미국에 정착한 파르빈 자말레자 씨는 이란에서 온 난민입니다. 바하이교를 믿는 파르빈 씨는 이슬람교를 믿는 모국에서 핍박과 차별을 받았고, 결국 이란을 떠나게 됐죠. 터키의 난민 보호시설에서 지내던 파르빈 씨는 미국의 민간단체인 국제난민구호기구(IRC)를 만났고, 이 단체의 도움으로 미국에 오게 됩니다.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라곤 옷 몇 벌이 전부. 하지만 파르빈 씨에겐 옷을 잘 만지는 손재주와 꿈이 있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기 싫었어요. 큰 식료품점의 점원 같은 일은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어떤 분이 옷 수선 가게를 소개해 주셨어요. 얼마나 기쁘던지요. 제가 이란에 있을 때 했던 일이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이었거든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옷 수선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지만 일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현장음: 야디의 옷수선 가게]
파르빈 씨는 남편 야돌라 씨와 함께 ‘야디의 옷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의 솜씨가 좋기로 소문나면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옷수선 가게는 늘 많은 손님이 드나듭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저는 샬러츠빌이 정말 좋아요. 다른 큰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이사 오라고 하는데 전 절대 안 갈 거에요. 샬러츠빌은 작고 오래된 도시이지만 역사적인 도시이고,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와서 처음 발붙인 곳으로 제2의 고향이기도 하고요. 샬러츠빌의 사람들은 제 생김새가 다르고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전혀 없어요. 다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이죠.”
9년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당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막막하기만 했던 파르빈 씨 가족은 IRC 직원들의 도움으로 샬러츠빌에 정착할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평화롭고 안전한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저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을 쓰고, 노력을 해요? 하지만 저는 난민으로 와서 이렇게 자리 잡았으니 기적과도 같죠. 또 일을 해서 돈도 모았고, 원하는 것들을 이뤄가고 있고, 그 어떤 위협이나 불편함이 없이 마음 푹 놓고 사니까 이보다 더 큰 복이 있나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세계 곳곳을 떠도는 난민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사람들 역시 저처럼 안전한 곳에서 먹고, 자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말이죠.”
[현장음: 야디의 옷 수선 가게]
파르빈 씨는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손님이 아닌 친구나 가족이 옷을 맡긴 것처럼, 정성스럽게 손본다고 했죠.
온종일 열심히 일하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또 누가 들어옵니다.
[녹취: 야디의 옷 수선 가게 손님]
가죽옷에 얼룩이 묻어 속상하다는 손님, 파르빈 씨 부부에게 가죽 세탁도 하냐고 물어보는데요. 세탁은 하지 않지만 대신 베이킹소다로 손쉽게 얼룩을 제거할 수 있다며 자세한 방법을 설명합니다. 손님은 고맙다고 말하며 가게를 나가는데요. 고마워하는 손님을 보며 파르빈 씨와 남편 야돌라 씨도 흐뭇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섭니다.
[현장음: 샬러츠빌]
가게에서 차를 타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파르빈 씨의 집. 두 사람은 사업체를 열심히 운영해 4년 전에 개인 주택도 마련했는데요. 파르빈 씨의 남편 야돌라 씨에게도 샬러츠빌은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녹취: 야돌라 자말레자]
“제가 처음 샬러츠빌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무척 조용했는데 지금은 도시가 더 커졌고요. 그만큼 성공의 기회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에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거든요. 그런데 저같이 이렇게 나이 들어 온 중년 남자도 잘 적응한 걸 보면 정말 좋은 동네라고 할 수 있죠.”
가죽 전문가로, 옷 수선 가게에서 묵묵히 가죽을 손보는 야돌라 씨는 고생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야돌라 자말레자]
“IRC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일했던 곳은 호텔입니다.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불과 몇 년 만에 아내와 함께 옷 수선 가게를 열게 됐어요. 미국에 와서 이렇게 제 개인 사업체도 열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에 오기로 결정한 이유가 자녀들 때문이거든요?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미국에 올 때 아들 둘은 24살, 22살이었고 딸은 10살이었는데 이제는 세 자녀도 다 대학 졸업을 하고 독립해서 잘살고 있습니다.”
세 자녀 외에 야돌라 부부에겐 보물이 또 있습니다. 이란에서 가져온 100년이 된 가위와 미국에서 어렵게 구한 150년이 된 수동 재봉틀인데요. 난민으로서 험난한 삶을 지탱해준 것들이자 성공을 가져다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녹취: 야돌라 자말레자]
“저는 제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나 최선을 다해 일한다면 저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하나쯤은 있으니까요. 우리 부부가 이란에서 가져온 것이라곤 이 가위가 다였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옷과 가죽을 손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기술 하나로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하거든요. 미국에선 수많은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잘만 찾는다면,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르빈 씨 역시 남편의 말에 동감했는데요. 무엇보다 미국인의 한 명으로 살아가는 데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저 역시 자부심을 느낍니다. 샬러츠빌 주민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요. 이웃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요. 아메리칸 드림이 뭐 그렇게 거창한 건가요? 이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죠.”
옷 수선 가게 주인. 남들이 보기엔 소박한 꿈일지 모르지만, 파르빈 씨에겐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성공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가위와 재봉틀로 이룬 파르빈 씨의 아메리칸 드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이란 출신으로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파르빈 자말레자 씨의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난민의 이야기를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