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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입니다] '재봉틀 아메리칸드림' 파르빈 자말레자 (1)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남편과 함께 '야디의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이란 출신 파르빈 자말레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옷수선 기술 하나로 지역에 이름을 알린 이란 출신 파르빈 자말레자를 소개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꼭 다 거창한 실력이나 든든한 기반을 가진 건 아닙니다. 기발한 생각이나 소소한 기술을 가지고도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많죠. 오늘 만나볼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라곤 옷 몇 벌이 다였지만, 타고난 손재주로 지역에서 인정받는 여성입니다.

[현장음: 샬러츠빌 거리]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주택가. 평범한 집들 사이로 작은 간판이 하나 보입니다. ‘야디의 옷 수선 가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쉼 없이 움직이는 재봉틀 소리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있는 '야디의 옷수선 가게(Yady's Alterations)' 전경.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있는 '야디의 옷수선 가게(Yady's Alterations)' 전경.

[현장음: 야디의 옷 수선 가게]

재봉틀 앞에서 꼼꼼히 옷 수선을 하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제 이름은 파르빈 자말레자이고요. 2006년에 미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야디의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파르빈 씨는 이란에서 온 난민인데요. 미국에 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저와 제 남편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특히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우리가 바하이교를 믿거든요.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바하이교도들은 핍박의 대상이다 보니 이란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결국, 종교적 난민 신분으로 이란을 떠나게 됐죠.”

파르빈 씨 부부와 세 자녀는 미국에 오기 전 터키에 있는 UN의 난민 보호시설에 머물렀습니다. 1년간 신분 검증 과정을 거친 후, 미국의 민간단체인 국제난민구호기구(IRC)의 도움으로 미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처음 미국 공항 처음 도착했을 땐 정말 막막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고, 어디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죠. 그런데 입국장에서 누군가가 우리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아, 우리를 아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에 놓였어요. 그때 공항에 왔던 분이 우리의 미국 입국을 도왔던 국제난민구호기구(IRC) 직원이었습니다.”

IRC 직원이 파르빈 씨를 데려간 곳은 버지니아주의 샬러츠빌. 이후 거의 10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샬러츠빌은 파르빈 씨의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6월에 샬러츠빌에 왔는데 온 마을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란과도 달랐고, 터키의 난민촌과도 너무나 달랐죠.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IRC 직원 덕에 살 집도 구했고, 또 IRC 사무실에 가서 어떤 일을 할지 의논하면서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IRC 직원들 덕분에 미국에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파르빈 씨 부부가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맨손으로 미국에 온 난민 출신인 데다 중년의 나이에, 영어도 한마디 못했으니까요. 거기다 파르빈 씨는 직장을 찾을 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기 싫었어요. 큰 식료품점의 점원 같은 일은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어떤 분이 옷 수선 가게를 소개해 주셨어요. 얼마나 기쁘던지요. 제가 이란에 있을 때 했던 일이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이었거든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옷 수선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일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의사소통이 크게 필요한 일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같이 일했던 사람도 다들 이민자들이라 일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영어는 빨리 늘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미국에 온 지 9년, 파르빈 씨는 손님들을 응대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영어도 능숙해졌고, 이제는 남편과 함께 옷 수선 가게를 직접 운영하는 사장님이 됐습니다. 파르빈 씨는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미국에서 계속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했는데요. 자신에게 이렇게 행운을 가져다준 소중한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파르빈 자말레자 남편 야돌라가 재봉틀 앞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파르빈 자말레자 남편 야돌라가 재봉틀 앞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이건 저희 남편 가위에요. 이 가위를 만지려면 남편한테 물어봐야 해요. 남편이 정말 아끼는 거거든요. 이 가위는 이란에서 가져온 거예요. 우리 남편이 한 40년 전쯤 옷을 만드는 사람한테 샀는데, 그 사람이 당시에 이 가위를 팔면서 60년이 지난 가위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100년 정도 된 가위죠. 그런데도 여전히 얼마나 잘 드는지 몰라요. 이 가위만 한 게 없죠. 저희 남편은 가게의 수많은 가위 중에서도 이 가위만 써요.”

파르빈 씨와 남편 야돌라 씨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 가위와 함께 두 사람이 가장 아끼는 또 하나의 보물은 바로 수동으로 돌아가는 재봉틀입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이 재봉틀은 인터넷에서 찾았어요. 이베이라는 경매 사이트에서요. 150년이나 된 재봉틀이고요. 전기가 아니라 발로 움직이는 수동 재봉틀이죠.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는 순간 이거다 싶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 끝에 결국 우리 손에 넣었습니다. 제가 옷 수선을 할 때도 또 남편이 가죽을 손볼 때도 이 재봉틀을 사용하는데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현장음: 옷 수선 가게 손님]

한 손님이 옷 수선 맡긴 옷을 찾으러 왔습니다. 옷이 제대로 잘 고쳐졌는지, 거울 앞에서 입어보자 파르빈 씨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손님의 표정을 살피는데요. 손님의 얼굴에선 이내 만족하는 미소가 번집니다.

파르빈 자말레자(오른쪽)가 영업장에 찾아온 손님과 함께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 있다.
파르빈 자말레자(오른쪽)가 영업장에 찾아온 손님과 함께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 있다.

[녹취: 게티 가드킨] “사실 이 옷 수선 가게를 이용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 친구가 이 동네 사는데 파르빌 씨 가게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더라고요. 옷을 정말 잘 고친다고요. 그래서 그 친구 말을 믿고 새로 산 윗도리 수선을 한번 맡겨봤습니다. 오늘 옷을 찾으러 와서 입어 봤는데 파르빈 씨가 깔끔하게 손을 잘 보신 것 같아요. 정말 마음에 듭니다.”

기쁜 표정으로 옷을 찾아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파르빈 씨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파르빈 씨는 비록 작은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고, 꿈꾸던 바를 이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녹취: 파르빈 자말레자] “네,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IRC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힘들었겠죠. 하지만 저희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영어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직장도 다니며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손님들이 옷을 가져올 때마다 안 된다고, 못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저와 남편은 고객이 어떤 옷을 가져오든 늘 고칠 수 있다고 말하고, 또 실제로 못 고친 적이 없답니다. 고객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저희도 행복해져요. 이게 바로 성공 아닌가요?”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이란 출신으로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파르빈 자말레자 씨의 첫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남편 야돌라 자말레자 씨의 이야기와 함께 파르빈 씨 가족이 이뤄가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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