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전의 날이 이제 불과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사실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요. 지금까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거둬들인 선거 자금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무려 3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선거와 정치 자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입니다.
"미국 선거에 돈이 많이 드는 이유"
우선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는 가장 큰 나라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 자신을 알리고 자신을 뽑아줄 것을 호소해야 하는데요. 후보들이 50개 주를 다 돌아다니려면 수시로 비행기가 이동수단으로 동원될 만큼 워낙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텍사스 같은 주 하나가 남북한을 합친 전체 면적보다 무려 3배나 더 클 정도니까요.
또 선거 유세 기간이 아주 깁니다. 보통 후보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기 한 해전부터 출사표를 던집니다. 예를 들어 올 대통령 선거를 위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지난해 6월에,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이보다 앞서 지난해 4월에 일찌감치 대권 출마를 선언했었는데요. 이듬해 11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 보통 1년 반에서 2년씩 걸리는 이 기간을 끝까지 버티려면 선거 자금이 충분해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면서, 선거 자금이 부족해 중도 탈락하는 후보들이 생기게 됩니다.
선거 자금 중 가장 많이 지출되는 분야는 텔레비전 광고입니다. 미국 주요 방송사의 광고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또 선거 유세 기간 중 일선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효율적인 선거 전략을 짜고 선거 운동을 펼치기 위해 각 분야 최고의 두뇌들을 영입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선거 자금의 종류"
미국은 합법적인 정치 자금을 ‘하드머니’와 ‘소프트 머니’ 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드머니는 개인이 어떤 특정 정치인에게 직접 주는 정치 자금으로 액수에 제한이 있고요. 연방 선거관리위원회(FEC)의 규제를 받습니다. 소프트 머니는 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이나 정치 후원회 같은 조직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돈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정치 후원회가 흔히 팩(PAC)이라고 하는 '정치활동위원회'와 슈퍼팩(Super PAC)이라고 부르는 '초강력 정치활동위원회'인데요. 미국에는 특히 선거철이 되면 여러 다양한 팩과 슈퍼팩들이 생겨나서 선거자금도 모으고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정치활동을 펼칩니다.
일반적인 팩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지만, 기부 액수나 방법 등이 엄격하게 규제돼 있습니다. 반면 슈퍼팩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정치 자금을 전달할 수는 없고 대신 TV 광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습니다.
[녹취: 트럼프 후보 광고]
지금 듣고 계신 것은 트럼프 후보 측이 최근 새로 선보인 TV 광고입니다. 클린턴 후보의 기침하는 모습과 휘청거리는 모습 등을 직접 겨냥하면서 클린턴 후보의 건강 문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녹취: 클린턴 후보 광고]
이건 자폐아를 둔 한 여성이 등장하는 클린턴 후보 쪽 광고입니다. 이 여성은 공화당원이지만 자기 아들을 트럼프의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당 차원을 떠나 클린턴 후보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TV 광고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후보들에게는 슈퍼팩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죠. 특히 지난 2010년 연방대법원이 기업과 노조 등은 선거 기간 중 정치 자금 기부를 포함해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판결한 이래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슈퍼팩을 만들고 액수에 제한 없이 원하는 후보들을 측면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줄 수 있게 됐습니다.
[녹취: 슈퍼팩 반대 시위 여성] "It is like a casino where very wealthy people are putting down money..."
미국에서는 간혹 슈퍼팩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금권 정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하는데요. 시위에 참여한 이 여성은 슈퍼팩의 정치 활동이 마치 돈 많은 부자들이 도박장에서 노름돈을 대주고 자신들은 뒷방에서 즐기고 있는 모습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선거 자금 투명성을 위한 규제"
미국은 선거 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 자금을 공개하게 하는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개인이 후보에게 어떤 금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엄격히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건데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정치인에게 엄청난 돈을 기부했다고 치면, 이 사람이 좋은 의도, 순수한 의도에서 돈을 기부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어떤 대가를 바란다든지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도록 법으로 방지하자는 겁니다.
이에 따라 '연방선거운동법'은 정치인들에게 선거 자금을 얼마나 기부할 수 있는지 조목조목 명시하고, 기부 액수나 기부 방법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단체, 기부금을 주는 주체와 받는 대상에 따라 다 다르고요. 기부금 한도 액수도 해마다 조금씩 바뀌는데요. 2015년과 2016년에 치러지는 연방 선거의 경우, 개인이 후보 혹은 팩(PAC), 정치활동위원회처럼 후보를 후원하는 단체에 줄 수 있는 기부금이 1인당 최대 2천700달러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팩은 이렇게 모은 돈을 후원하는 후보에게 전달하는 건데요. 이 팩에 가입한 후원자가 많을수록 기부금도 많아지겠죠? 하지만 이때도 1년에 최대 5천 달러 이상은 줄 수 없도록 제한돼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은 미국의 모든 선거에 어떤 형태의 기부도 할 수 없게 금지돼 있습니다. 반면, 미국 시민은 아니지만, 미국에 영구히 거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된 영주권자들은 얼마든지 법정 한도 내에서 기부할 수 있습니다.
"정치와 돈"
미국의 선거는 얼마나 선거 자금을 많이 모으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거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현직에 있는 대통령조차 재선에 도전할 때 선거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미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죠. 정치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긴 하지만 선거 자금을 모금하다 보면, 자칫 기부금을 많이 내는 단체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이런 선거자금 제도가 꼭 나쁜 건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선거 자금 제도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민심의 방향을 세심하게 살피게 해주고요. 또 정치인들이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다는 겁니다.
또 올해 민주당 후보로 경선에 나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후보는 단순히 돈의 힘이 통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샌더스 후보의 경우, 슈퍼팩을 통해 기부받은 선거 자금이 전체 후원금의 3%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소액 기부자들에게서 나왔는데요. 푼돈을 모아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클린턴 후보를 막판까지 몰아세울 만큼 풀뿌리 저력을 보였습니다. 반면 공화당 후보였던 젭 부시 후보는 부시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후보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슈퍼팩으로부터 가장 많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도무지 열세를 회복 못 하고 중도 사퇴한 바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선거와 정치 자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