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또 다시 관영매체를 통해 남파 공작원 지령용으로 보이는 `난수 방송'을 했습니다. 지난달 16년 만에 재개된 북한 측 난수 방송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요, 한국 정부는 구태의연한 행태라며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평양방송'은 29일 정규 보도를 마치고 자정을 넘긴 0시 45분부터 12분 간 남파 공작원 지령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여성 아나운서가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과제를 알려주겠다’며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135페이지 86번’과 같은 식으로 다섯 자리 숫자들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난수 방송을 중단했다가 지난달 16년 만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이번 난수방송은 방송이 재개된 지난달 24일과 지난 15일에 이어 세 번째로 포착된 겁니다.
이번 방송은 지난 15일 내보냈을 때와 같은 시간에 동일한 내용을 재방송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난수 방송 직전에 경음악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를 내보낸 것도 15일 방송 때와 동일했다고 통일부는 밝혔습니다.
북한은 과거 대외용 `평양방송'을 통해 자정쯤 김일성, 김정일 찬양가를 내보낸 뒤 난수를 읽어 남파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리곤 했습니다. 15분 정도 낭독한 뒤 다시 한 번 더 읽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29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북한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녹취: 박수진 부대변인 / 한국 통일부] “그 의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고 추측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만 북한이 이런 구태의연한 행태를 지양했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입니다.”
북한이 이처럼 난수 방송을 재개한 이유에 대해선 엇갈린 견해들이 나왔습니다.
난수 방송이 보안상 위험 때문에 남파간첩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옛날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회 교란을 위한 심리전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입니다.
[녹취: 김용현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북한 입장에서 지금 유엔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고 사드 국면 등 전반적 과정에서 뭔가 남한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자 하는 그런 차원에서 난수표가 실제 작동하기 보다는 대남 선전공세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남한사회의 긴장 조성,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한국 내 대북 방송인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지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 ‘페이스북’에 북한이 15일 방송했던 동일한 내용을 이번에 재방송한 데 대해 심리전이라면 굳이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며, 난수 방송이 단순한 심리전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하 의원은 북한이 바로 다음날 재방송하지 않고 14일 만에 재방송한 것은 해당 공작원이 남파될 때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거나 한 번 더 반복해 달라는 요청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난수 방송 재개는 북한의 대남공작이 더 공세적으로 변한 것이므로 한국 정보 당국도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따라하기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차두현 초청연구위원은 최근 한강에 선전 전단을 담은 비닐봉투를 띄워 한국으로 보내는 등 북한의 대남전술 수단이 복고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가장 형편이 나았던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초청연구위원 / 한국 통일연구원] “김일성 시대의 기법들을 동원함으로써 사실은 대남 혼란용이라기 보다는 북한 내부의 관료나 대남 공작원들에게 그 시절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자는 그런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차 연구위원은 이와 함께 북한이 난수 방송을 재개함으로써 한국 내 자신들의 첩보조직망이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한국 측에 보내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