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로마 가톨릭교회가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승인하면서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산 테레사 수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시성식은 테레사 수녀가 선종한 9월에 있을 예정인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빈자들의 성녀로 불리는 로마 가톨릭교의 테레사 수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가톨릭교 성인의 의미”
가톨릭교에서 말하는 성인(Saint)은 순교자 또는 살아서 훌륭한 행동으로 덕망이 높았던 신자가 사후 신앙의 모범으로서 교인들의 공경을 받도록 선포된 인물을 말합니다. 성인이 되면 기념 축일도 정해지고요. 가톨릭교의 기도문에도 이름이 오르게 됩니다. 성인이 되려면 먼저 복자(Blessed)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요. 사망 후 금방 복자로 추대할 수는 없고요. 5년 후에 가능한데요. 그의 전 생애와 이뤄낸 기적 등에 대한 아주 엄격한 심사를 거쳐 통과되면 복자로 공식 선포됩니다. 복자가 된 후 그에 대한 칭송이 계속되고 또 다른 기적이 발생한다든지 하면 시복 절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요. 일반적으로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순교자는 순교한 사실만으로 기적 심사에서는 면제됩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 초기 박해로 순교한 103명이 1984년에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녹취] 테레사 수녀 시복식 현장음
테레사 수녀는 사후 6년째인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복자로 추대됐습니다. 로마 가톨릭교가 인정하는 테레사 수녀의 두 가지 기적은 첫째, 1998년 인도에서 위암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테레사 수녀의 사진에서 빛을 본 후 치유된 사건이고요. 두 번째 기적은 2008년 브라질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한 남성이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후 완치된 사건입니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해 말 현지 조사 등을 통해 이들 사례를 기적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부모의 막내딸”
테레사 수녀는 1910년 지금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 알바니아계 부모 슬하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로 테레사 수녀의 원래 이름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건축과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안락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요. 하지만 테레사 수녀가 겨우 8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테레사 수녀의 아버지는 알바니아 독립 투쟁에 앞장섰는데요. 아버지의 사망과 관련해 정적들이 독살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는 이후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자녀들에게 가르쳤고요. 테레사 수녀는 특히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와 인도”
테레사 수녀를 말할 때 인도를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21살 때 인도에 첫발을 디딘 이래 87살 소천할 때까지 평생을 인도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 대해 처음 들은 건 12살 때였는데요. 성당의 신부에게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녀가 돼서 인도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고요. 18살 때 인도로 파견할 수녀들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지원합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였지만 딸이 수녀가 돼서 인도로 간다는 이야기에 하루를 꼬박 방에서 나오지 않을 만큼 번민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딸을 잘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결국 허락을 했고요. 테레사 수녀는 아일랜드에 있는 수녀원에 들어가 3년간 훈련을 받고 인도로 떠납니다. 이때 본명 대신 테레사라는 수녀명을 갖게 됩니다.
“부르심 속의 부르심,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인도로 파견되는 수녀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인도에 나가 있는 영국인 자녀들의 교육이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요. 테레사 수녀는 인도 콜카타 수녀원이 운영하는 부속 학교에서 약 16년간 지리와 역사를 가르칩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테레사 수녀에게는 안성맞춤의 일이었는데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 늘 편치 않았죠. 수녀원 안은 평화롭기만 한데 수녀원 밖을 나서면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1946년에 기차 안에서 그들을 도와주라는 신의 부름을 받게 되고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처음 수녀로 헌신하기로 했던 결심을 첫번째 부르심, 이 두번째 결심을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교단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오랜 설득 끝에 마침내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거리로 나설 수 있게 됩니다.
“검은 수녀복 대신 흰색 사리를 입은 수녀”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가뭄과 흉년, 끊이지 않는 종교 간의 폭력으로 한 때 노숙자가 4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사회가 불안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낯선 유럽 여성이 돕겠다고 나선 것을 인도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교화시키려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데요. 침을 뱉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검은 수녀복을 벗고 인도 여인 중 가장 미천한 여인들이 입는 흰색 사리를 입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의 마음을 알게 되죠. 기부자들도 나타나고요. 1950년에는 '사랑의 선교회'라는 공식 기관을 만듭니다. 테레사 수녀는 고아와 병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시설을 만들고 수녀들을 모으고 돌봤습니다.
[녹취] 테레사 수녀 연설
생전에 테레사 수녀의 목소리 듣고 계신데요. 처음에는 겨우 12명의 수녀로 시작된 사랑의 선교회는 100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큰 조직이 됐고요. 1979년에는 노벨 평화상도 받습니다.
[녹취] 테레사 수녀 사망 보도
테레사 수녀는 1997년에 87세를 일기로 타계하는데요. 테레사 수녀의 활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봤던 인도 정부는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러줍니다. 평생을 빈민굴의 성자로 살아온 삶과는 무척 대조적인 성대한 장례식이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테레사 수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