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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연속 인터뷰 2]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황인철 대표


지난 2014년 2월 황인철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대표가 한국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북한 적십자사를 찾아 부친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통일부에 방북신청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2014년 2월 황인철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대표가 한국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북한 적십자사를 찾아 부친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통일부에 방북신청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

VOA는 2016년 새해를 맞아 북한의 자유화와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올 한 해 활동계획 등을 들어 보는 특별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1969년 일어난 대한항공 납치 사건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입니다. 서울지국 김환용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먼저 KAL기 납치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십시오.

황인철 대표) 제 나이 두 살 때였습니다. 지난 1969년 12월 11일 낮 강릉발 김포행 대한항공 국내선 YS-11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강제로 납치된 사건입니다. 북한은 1970년도 2월 4일 전원 송환을 약속했다가 돌연 약속을 어기고 1970년 2월14일 승객 39 명만 부분 송환하고 아직까지 제 아버지를 포함해 11명이 돌아오지 못한 그런 사건입니다.

기자) 황 대표께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말씀해주세요.

황인철 대표) 2006년도 6월에 북한이 제 아버지에 대해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지서를 보냈고 제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보내줬습니다. 그래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남은 11 명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편지를 보내려고 시도했는데 북한이 거절했고 그래서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북한 적십자사에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야기하는 게 남으로 돌아가지 않는 자들은 자의에 의해 북한에 머무는 것이며 이들의 생사확인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얻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는 2010년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실무반 (WGEID)에 국내 납북자 중 제 아버지를 처음 접수하면서 2012년에 북한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강제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WGEID에서 다룰 인도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적대세력에 의한 대결 책동의 산물이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100만인 서명을 통해 전국 투어를 하면서 11인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황인철 대표) 저희 아버지는 당시 문화방송 (MBC) PD로 근무하셨고요.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 이유도 출장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셨습니다.

기자) 출장 중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북한에 납치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군요. 그렇다면 아버님을 포함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11명에 대해 북한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황인철 대표) 당시 1970년 2월14일 부분 송환된 승객 39명의 증언을 통해 북한이 강제로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야기하는 게 자의에 의해서 북한에 머무는 것이다, 의거입북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국제적십자위원회가 그렇다면 제3국과 제3자를 통해서 자유의사만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북한은 이 조차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6월 생사 확인 불가라는 통지서로 북한은 계속해서 생사 확인조차 해 주지 않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기자)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하고 있죠?

황인철 대표) 저희 가족회가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운 장벽은 과거의 사건이다, 1969년에 발생한 과거의 사건으로 현재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냉정한 반문에 굉장히 큰 장벽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고 현재도 진행 중이며 그래서 인도적 차원에서 분명히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놓지도 못하고 진행하고 있는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연계선상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게 항공기 불법납치 억제에 관한 협약을 북한이 비준하면서 그 협약 내용에 따라 과거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69년 발생한 KAL기 사건의 모든 것들을 보존시켜줘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갖고 정부 측에 요구를 했습니다. 이 협약에 따라서 그리고 국내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저희 아버지와 나머지 분들에 대한 신병인도를 북한 측에 제안하라고 요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최근 들어 국제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유엔도 이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이죠?

황인철 대표) 유엔 측에선 지금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실무반 (WGEID)에서 2012년 5월 9일 북한의 거짓 답변을 받았지만 다시 북한 측에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즉, 똑같은 답변을 받더라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 다음에 이 사건 자체가 비행기 납치 사건 가운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망각되지 않는 상태에서 저희 가족들은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잊혀지지가 않아요.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고 비록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도 제가 이런 활동을 하며 다니는 것 이 한 가지 만으로라도 저희 가족들은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에서는 특히 악랄한 인권유린 행위로,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로 바라보면서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자) 신년을 맞았습니다. 황 대표께서 이 문제로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하시고 지금도 열심히 문제 해결에 노력을 하고 계시는데요, 올해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황인철 대표) 제가 이 사건에 대해서 제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게 2001년도 제3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당시 아버지와 함께 납치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가 어머니 이후덕 씨와 상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주장하는 게 생사 확인 불가이고 아직까지 생사 자체를 확인해주지 않았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노력을 하다 보니까 제가 비공식적으로 제 아버지가 평양 근교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사조차도 확인하지 못하고 또 당시 제아버지가 자유의사를 밝히지 못했는데 제3국에서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는 그 시점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자) 황 대표님, 말씀 감사합니다.

황인철 대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난 1969년 일어난 대한항공 납치 사건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로부터 올해 소망 등을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서울지국 김환용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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