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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타이완 핫라인 개통...타이완, 내년 일본과 위안부 교섭


지난달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지고 상호 핫라인 설치를 합의했다.
지난달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지고 상호 핫라인 설치를 합의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소식을 전해 드리는 '지구촌 오늘' 입니다. VOA 조은정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소식이 준비됐습니까?

기자) 중국과 타이완 정부 간 직통전화가 30일 공식 개통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 위안부 문제와 관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를 계기로 타이완과 필리핀 등 다른 피해국들도 일본과의 협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우선 중국과 타이완 간 직통전화 소식부터 살펴볼까요?

기자) 예. 지난달 양안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사안인데요. 마샤오광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 들어보시죠.

[녹취: 마 대변인]

마 대변인은 장즈쥔 대만판공실 주임과 샤리옌 타이완 행정원 대륙위원회 위원장이 핫라인을 통해 30일 첫 통화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은 통화에서 `92 공식', 즉 1992년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다시 확인하면서 서로 긴밀한 소통과 우호적인 연계활동으로 양안관계의 평화적인 발전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진행자) 핫라인이란 게 뭔지 설명을 해주시죠.

기자) 정부 간 긴급연락용 직통선입니다. 시초는 1963년 미국 백악관과 소련 크렘린궁 간 설치된 직통전화인데요. 우발적인 전쟁이나 실수에 의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습니다. 1971년에는 남북한 간에도 설치됐습니다. 적대적인 국가들 사이가 아닌 동맹국들 간에도 직통 통신선을 놓기도 합니다.

진행자) 중국과 타이완 간 핫라인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내용이라고요.

기자) 예.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이 지난 11월 7일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열었는데요. 이날 비공개로 1시간 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 사항 중 하나가 핫라인 설치였습니다. 당시 마 총통이 설치를 제안하고 시 주석이 즉석에서 동의한 사안입니다. 시 주석은 핫라인이 “양측이 신속히 소통하고 오판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양안 사무 담당기구가 앞장서 개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진행자) 당시 정상회담에서 또 주목할 만한 합의 내용을 소개해주시죠.

기자)예. 앞서 잠깐 소개해 드렸던 ‘92 공식’ 즉, ‘하나의 중국’ 원칙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요. 타이완의 외교적인 고립 문제도 논의했습니다. 또 양안 정상회담을 정례화 하는 데에도 의견을 모았습니다. 무엇보다 두 정상은 중국과 타이완 국민들이 ‘한 핏줄’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시 주석은 “우리는 뼈가 부러져도 살은 이어진 형제이자 물보다 진한 피를 가진 가족”이라고 강조했고, 마 총통도 “양안 국민은 중화민족이며 염황의 자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타이완의 외교적 고립 문제를 논의했다고 하는데, 현재 타이완이 국제사회에서 많이 소외돼 있죠?

기자) 예. 타이완은 원래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유엔 회원국이었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수교를 맺었었지만, 19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타이완은 유엔에서 축출됐습니다. 현재 타이완과 수교한 나라는 태평양 섬나라들을 중심으로 22개국에 불과하고요.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공식 국호 대신 Chinese Taipei 즉, 중화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타이완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는데 양안 정상회담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중국의 눈치를 보던 나라들이 타이완과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진행자) 중국과 타이완이 처음으로 화해를 시도한 것은 언젠가요?

기자) 예. 양안은 1949년 분단 이후 30년 간 봉쇄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을 시작으로 교류와 협력을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두 나라 관계의 이정표는 1979년에 세워졌습니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타이완과 중국의 평화통일이라는 큰 방침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후 1987년에는 상호 친척 방문이 허용됐고, 1992년에는 ’92 공식’이 합의됐으며, 1993년에는 정부 간 첫 고위급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어 2005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 영수 간 첫 회담이 개최됐고, 2008년엔 양안이 통상, 통항, 통신 교류의 역사적인 대삼통 시대를 열었습니다. 타이완은 특히 마 총통 집권기간인 지난 7년 동안 무역 등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크게 늘렸습니다.

진행자) 타이완에서는 곧 총통 선거가 실시되죠? 전망이 어떻습니까?

기자) 예. 다음달 16일 총통 선거가 실시되는데요. 현재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 당선이 유력합니다. 정권교체가 되는 거죠.

진행자) 민진당은 타이완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실제로 차이 후보는 양안관계의 핵심 원칙인 ‘92 공식’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양안 간 현상유지를 하겠다고 모호하게 밝히고만 있는데요. 그래도 양안 간 화해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민진당이 집권해도 기존의 양안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진행자) 어떻습니까? 중국과의 관계 문제가 이번 선거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까?

기자) 예. 사실 양안정책은 이번 선거전의 가장 중요한 쟁점입니다. 특히 국민당의 친중 정책에 대한 심판론이 우세한데요. 타이완 국민들은 마잉주 국민당 정부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높이기만 하고 실제로는 일자리 창출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이 승리할 경우 지난 2000년부터 8년 간격으로 타이완의 토착정당인 민진당과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이 한 차례씩 정권을 바꾸게 됩니다.

진행자) 그런데, 올해 중국과 타이완 관계를 상징하는 한자어가 선정됐다고요.

기자) 예. 바로 ‘화할 화 (和)’자입니다. 중국 `해서신보'와 타이완 `왕보' 등이 이달 초 공동주최한 ‘해협 양안 연도 한자 선정’ 행사에서 ‘화’자가 올해의 한자로 뽑혔는데요. 702만여 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43만여 표를 얻었습니다. 올해 열린 양안 정상회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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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이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이번 주에 극적인 타결을 했죠. 타이완도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협상을 추진한다고요.

기자) 예. 타이완의 린융러 외교부장은 이르면 내년 초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교섭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린 부장의 지난 29일 기자회견 내용 들어보시죠.

[녹취: 린 부장]

린 부장은 타이완이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강한 입장을 절대로 바꾸지도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지금까지 일본과 타이완의 위안부 관련 논의가 좀 더 구체화 되는 것이군요.

기자) 예. 린 부장은 “이르면 내년 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타이완 측 주장인 배상과 정식 사과를 위한 일본과의 교섭을 진행할 것”이라며 “우선 실무작업반을 구성한 뒤 회의를 통해 명확한 주장과 요구 사항을 결정해야 담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린 부장은 또 일본과 한국 간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일본이 타이완에 설명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타이완의 마잉주 총통도 일본이 타이완 출신 위안부 여성들에게 사과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죠?

기자) 예. 마 총통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녹취: 마 총통]

마 총통은 일본 정부가 피해 여성들에게 정의와 존엄을 되찾아줘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타이완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타이베이여성구호재단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천 명의 타이완 여성들이 일본 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진행자) 필리핀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있다죠?

기자) 예. 필리핀의 군 위안부 피해단체도 필리핀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는데요. 한국 정부처럼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군 위안부 피해단체 ‘릴라 필리피나’ 측은 필리핀 정부가 일본 군 성노예 문제를 완전히 외면해 왔고,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의지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는데요. 릴라 필리피나는 174 명의 위안부 피해자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회원이 100 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진행자) 또 어떤 나라가 위안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나요?

기자)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의 `NOS' 방송은 28일, 네덜란드의 일본 군 위안부 피해여성도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기 원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네덜란드인 피해여성은 약 400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이들 중 일부는 약 10년 전에 일본으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지만, 상당수는 사과가 우선이라며 돈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중국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많죠?

기자) 예. 일본 군은 2차 대전 당시 약 5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안부들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조선인, 중국인 36%, 일본인이 12%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들도 “왜 일본이 한국인 피해자에게만 사과하고 중국인 피해자에게는 사과하지 않는가”라며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일본이 한국과의 합의를 어떻게 이행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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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중국에서 마침내 모든 지역에 전기가 공급된다는 소식이 있죠?

기자) 예. 중국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망'은 30일 중국에서 전깃불이 공급되지 않던 마지막 오지 마을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칭하이성 궈러 장족자치주 반마현 궈망촌과 위수 장족자치주 취마라이현 창장촌입니다. 지난 25일을 전후해서 전기가 개통됐습니다. 이 두 마을의 8천 614 가구, 3만9천800 명의 주민이 생애 처음으로 전기를 쓰게 됐습니다.

진행자) 이 마을들에는 어떤 계기로 전기가 개통됐나요?

기자) 예. 2011년 시작된 중국 정부의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르면 ‘모든 인구가 전기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지난 3년 간 오지 마을에 대한 전기공급 사업을 벌여왔고요. 그 중 이들 2개 마을이 마지막 사업 대상이었습니다.

진행자) 오지 마을이라서 공사가 쉽지 않았겠어요.

기자) 예. 중국의 내륙 오지에 위치한 이 두 마을은 평균 해발 4천m의 고원 지역인데다 환경보호 지역이어서 전기선을 놓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 당시에는 자연보호를 위해 대형 트럭 대신 말과 노새 수 천 마리로 장비와 물자를 운송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오늘은 여기까지 듣죠. 지구촌 오늘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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