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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주택법


미국 뉴욕 시의 주택에 매매 팻말이 세워져 있다. (자료사진)
미국 뉴욕 시의 주택에 매매 팻말이 세워져 있다. (자료사진)

미국 주요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박영서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오늘은 ‘공정주택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기자) 네, 혹시 지난달 25일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미국의 판도를 새롭게 할 역사적인 판결이 하나 나왔는데 기억하십니까?

진행자) 동성혼 합헌 판결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자)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연방 대법원에서 또 하나의 중대한 판결이 나왔었습니다. 동성혼 합헌 판결이 워낙 중대한 사안이다 보니까 묻혀버리긴 했지만 바로 이 ‘공정주택법’과 관련된 판결이었죠.

진행자) 연방 대법원이 내린 공정주택법 판결 역시 미국의 지형을 새롭게 그릴만한 의미 있는 판결 아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지난 2008년에 텍사스에 있는 한 시민단체가 텍사스 주 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시작된 건데요. 그 동안 일각에서는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점점 더 구분되는 현상에 대해 정부 기관이나 주택건설업자들이 세금 보조금 지급 같은 교묘한 방식으로 분리를 조장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연방 대법원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차별적인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건 공정주택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린 겁니다.


진행자) ‘공정주택법’이라는 이름부터 ‘공정한 주택 정책을 추구’하는 그런 법이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군요.


기자) 맞습니다. 미국의 공정주택법 (Fair Housing Act)은 1968년에 제정된 법인데요.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 등에 상관없이 주택을 구입하거나 빌릴 때 부당한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1960년대라면 미국에서 민권운동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대였죠?

기자)그렇습니다. 1964년에 공공장소에서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통과됐고요. 이어 1965년에는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됐죠. 이 공정주택법의 경우는 흑인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지 1 주일만에 민권법 관련 법안으로 “1968년 민권법 Title 8 ‘이라는 이름으로 전격 제정된 겁니다.

진행자) 공정주택법을 실행하는 주관부처가 어디입니까?

기자) 네, 연방주택도시개발부입니다. 연방주택도시개발부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fair housing은 당신의 권리입니다!’ 라는 문구도 볼 수 있고요.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베트남어, 한국어 등으로 불만 사항을 접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진행자) 여러 나라 언어로 만들어 놨다니 이 공정주택법이 특별히 인종이나 출신국 등에 따른 불공정한 대우를 금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 같군요. 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요. 그러면 어떤 걸 주택 관련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자) 네,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 등을 이유로 주택을 판매하거나 빌려주는걸 거부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또, 제공할 주택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안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의뢰인에게는 좀 더 나쁜 조건을 제시해서 집 구입이나 임대를 어렵게 만든다든지, 반대로 마음에 드는 의뢰인에게는 특혜를 제공하는 그런 행위도 포함되고요. 어떤 특정한 인종이나 특정 계층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광고를 내는 행위도 해당됩니다.

진행자) 미국은 장애인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복지 혜택이 잘 되어있는데, 그렇다면 주택 문제에 있어서도 보장을 받고 있겠죠?

기자) 물론입니다. 공정주택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는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에 따른 차별만 금지했는데요. 1988년에 장애인과 가족 상태에 대한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이에 따라 장애인들에게 판매나 임대를 거부하는 건 물론 위법이고요. 장애인들이 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자비를 들여 주택을 개조하거나 변경하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진행자) 그렇지만 집을 빌려주는 임대주로서는 그 장애인이 임대 기간이 다해서 떠나고 난 후, 다른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자면 곤란할테고, 손해 아닙니까?

기자) 네, 그래서 장애인이 이사할 때 주택을 원래 상태대로 복구시키기로 동의하는 조건으로 적절한 경우 이런 변경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 같은 공공 입주 건물의 경우, 장애인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건축하지 않는 것도 공정주택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진행자) 그러면 1988년에 추가됐다는 가족 상태에 대한 조항은 뭘 말하는 건가요?

기자) 네, 18살 미만의 자녀가 있다거나, 또는 앞으로 출산할 예정인 가족이 있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건데요, 예를 들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다거나 아이들의 장난으로 집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꺼려진다 해도 이걸 이유로 집을 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부동산 중개인이 일부러 어떤 특정 지역의 집만 소개하는 행위도 법적으로 금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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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공정주택법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구체적이고 강력한 지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의 주택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불공정한 차별이 있었다는 거군요.

기자) 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부분 집을 살 때 집값을 한꺼번에 다 내고 사지 않고 융자를 받아서 삽니다. 어느 정도 집값의 일부를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 차액에 대해서 사려는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는 그런 형태로, 모기지 융자( Mortgage Loan)라고 부르는데요. 공정주택법은 이 모기지 융자에 대해서도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기지 융자에 있어 인종 별로 제법 차이가 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진행자) 구체적으로 한번 볼까요?

기자) 네, 올 초, 미국의 부동산 전문 사이트 ‘질로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흑인은 12.3%입니다. 그런데 겨우 3%도 채 못 되는 사람들이 모기지 융자 신청을 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또 전체 인구의 17% 가량 차지하고 있는 중남미 히스패닉계 역시 5.5%만 모기지 융자 신청을 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진행자) 그런데도 또 반면 모기지 융자 거부율은 높은 편이라고요.

기자) 맞습니다. 흑인의 모기지 융자 거부율은 27.6%로 백인의 10.4%보다 3배 가까이 높았고요. 히스패닉계의 모기지 융자 거부율도 21.9%로 백인의 2배에 달했습니다. 반면 아시아계는 흑인과 히스패닉계보다는 상대적으로 거부율이 낮았습니다.

진행자) 모기지 융자를 잘 받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주택 소유 비율에서도 뒤쳐진다는 소리 아닐까요 ?

기자) 맞습니다. 질로우의 조사는 2013년 연방 정부 당국의 자료를 토대로 한 건데요. 전국적으로 볼 때 백인의 70% 이상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히스패닉은 45%, 흑인은 이보다 못 미치는 42%에 불과했습니다.

진행자) 흑인과 히스패닉계 모기지 융자 거부율이 이렇게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뭔가요?

기자)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흑인이나 히스패닉계보다 백인이나 아시아 계의 소득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돈을 빌려주려면 아무래도 돌려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안심하고 빌려줄 수 있는데, 소득이 많다면 그만큼 확실한 안전 장치 가운데 하나가 되는 거겠죠. 모기지 융자 회사들은 융자 심사를 할 때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히스패닉이나 흑인의 융자 조건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흑인인권단체들은 모기지 융자 대출 과정에 분명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집을 소유한다는 게 부의 상징이자 저축, 투자 수단으로 상당히 큰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런 인종간 대출 격차 역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영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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