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에바라드 전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것만 부탁합니다’란 책의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title refers to a conversation that is reported…”
답) 북한 군인이 제 동료가 사진 찍는 걸 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는 사진을 찍었는지 검사했죠. 그런 사진이 없는 걸 확인한 북한 군인이 사진기를 돌려주면서 그러더군요. “좋은 것만 부탁합니다”라구요. 거기서 책 제목을 착안한 겁니다.
문) 책을 통해 북한의 어떤 모습을 설명하고 싶으셨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hat I was trying to do was to introduce ground truth…”
답) 북한 내부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핵 문제 뒤에 가려진 일상 말입니다. 그 곳 주민들은 핵 협상이 어떻게 됐는지 그런 걸 고민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여느 나라 사람처럼 친구, 가족, 배우자, 동료와 관련된 일들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문) 외부에서 북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think one of the biggest misunderstandings is that…”
답) 그렇습니다. 바깥에선 북한 사람들을 당국 지시만 일률적으로 따르는 로봇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오해입니다. 북한인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각자 아주 강한 개성을 갖고 있어요. 제가 만난 북한인들은 아주 재미있고 유쾌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묘사되는 성격과는 아주 다릅니다.
문) 그럼 북한인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나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often. They are, as you get to know North Koreans…”
답) 자주 들었습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 그들은 속마음을 털어놔요. 제가 만난 북한인들은 한결같이 나라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또 한 가지 특징은 북한에선 김정일 위원장과 국가가 거의 동일시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김 위원장에 대해 물어봐도 국가에 대한 대답으로 연결됩니다.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요. 흥미로운 건 평양의 엘리트들조차 김정일 위원장의 복잡한 가계와 관련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문) 북한인들이 지도자에 대해 불평하는 소린 못 들어봤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No, you are quite right. In the time that I was there people…”
답) 못 들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것에 대해 불평은 많이 해요. 전력난, 음식의 질, 교통 수단 부족, 이런 것들 말이죠. 그런데 단 한번도 지도부에 대해 불평하는 소린 듣지 못했어요. 물론 제가 외국 대사라 그런 얘기 꺼내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겠죠.
문) 책에서 물질주의와 외부세계에 대한 북한인들의 태도가 변했다고 하셨거든요. 어떻게 바뀌었나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re has been a very big change on this…”
답) 정말 크게 변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직전까지만 해도 북한인들은 스스로 지상낙원에 산다고 믿었습니다. 북한이 풍요롭고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나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 닥쳤습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굶주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사는 곳을 더 이상 지상낙원으로 생각하긴 어려워진 겁니다. 그런 와중에 중국 등을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인들은 자국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문)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선 얼마나들 알고 있던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y know now that South Korea is much richer and…”
답) 북한 사람들도 이제 한국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론 한국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요. 하지만 중국을 통해 넘어오는 한국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 현실을 접하죠.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게 한국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만큼 궁금해들 했습니다. 특히 제가 북한에 있을 땐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영향을 받아 한국식 말투를 흉내내는 게 유행이었을 정도였습니다.
문) 외교관들이 북한과 같은 나라엔 부임을 꺼리진 않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ell, it’s true that foreign ministries who maintain…”
답) 북한에 대사관을 둔 나라들은 그곳에 부임하려는 지원자를 찾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자녀 교육 문제가 걸리죠. 어린 자녀를 뒀을 경우 평양에서 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우니까요. 또 서방에는 당연히 있는 시설들이 평양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게 지원자들이 적은 이유죠.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평양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주민들과의 단절입니다. 세계 어떤 빈곤국가에 주재하더라도 그곳 주민들과 접촉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그게 어렵습니다.
문) 북한 대사로 부임하신 지 몇 달 안 됐을 때인 2006년 10월 북한이 첫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내부에선 상황이 어땠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remember the day of the test as it happened. We were at…”
답) 핵실험 당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평양주재 독일대사가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전 연회 중간에 잠시 2층에 있는 제 사무실로 올라갔는데요. 거기서 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얼마나 놀랐었는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바로 1층으로 내려가 독일대사에게 알렸죠. 바로 옆에 북한 외무성 관리가 앉아 있었는데 저녁 만찬 내내 독일대사와 그가 핵실험 문제를 논의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북한에 계셨죠?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선 당시 얼마나 알려졌었나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think the insider community had known for sometime…”
답)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1년 전 독일 심장 전문의들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김정일을 치료하기 위해 왔다고들 짐작했죠. 그래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건 당시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문)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본 적은 있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nearest I came to this was I attended an event…”
답) 없습니다. 하지만 평양의 5.1경기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그를 바로 몇 미터 거리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이미 당시에도 정상적으로 걷질 못하더군요. 그게 2007년도 일입니다.
문) 북한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은에 대해선 언제 처음 들으셨습니까? 또 그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 알게 되셨죠?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don’t think it became completely clear that he was a…”
답) 2010년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까진 김정은의 후계 계승 여부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후계자가 될 거라는 소문은 이미 2007년부터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북한이 김정일 사후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습니다. 김정은이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낙점된 시점은 정확한 건 아니지만 2007년 이후, 아마도 김정일의 사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무렵이었을 걸로 봅니다.
문) 직접 보신 북한의 빈곤 상황은 어떻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saw quite a lot of poverty traveling around…”
답) 전 평양에 살았지만 가끔 지방을 여행하면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추운 겨울 난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집들, 야윈 주민들, 영양실조 상태로 수 년간 고아원에 방치된 아이들을 봤습니다. 특히 지방 도시들 상황은 정말 안 좋습니다. 그 곳을 가 보면 주민들이 얼마나 야위었는지 모릅니다. 평양은 특권층이 사는 곳이라 대접이 괜찮고, 협동농장은 식량에 접근이 가능한 곳 아닙니까? 그 곳 주민들은 어떻게든 제 몫을 챙겨 놓죠. 그런데 유독 지방 도시 주민들은 그런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겁니다.
문) 외국인들은 평양 밖으로 나가 보기 힘든데 그래도 지방을 많이 다니셨나 보군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foreigners are allowed to travel 35 kilometers…”
답) 외국인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반경 35km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 쯤만 나가 봐도 농민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농업의 기계화를 그렇게 강조했지만 트랙터는 찾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트랙터가 있어도 연료가 부족해 기껏해야 소를 이용하는 게 다죠. 특히 상황이 더 열악한 시골에선 아주 옛날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문) 지금 말씀하신 북한의 열악한 농업 실태 때문에 대북 지원의 필요성이 자주 강조되는 건데요. 지원된 식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니까 선뜻 지원하기도 부담스러운 거구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so it seemed to me. I saw rice in WPF bags being…”
답) 그렇습니다. 전 세계식량계획, WFP라고 적힌 주머니에 담긴 쌀이 북한 장마당에서 팔리는 걸 봤습니다. 세계식량계획에서 지원한 쌀이 원래 의도와는 달리 거래되고 있는 걸로 봅니다.
문)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에 대해 회의적이신 건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is is a subject on which there is no good answer…”
답) 정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북한의 영양부족 상황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참 동정이 가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식량이 군대 등으로 전용된다는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전 그런 전용이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문) 그래도 북한이 젊은 새 지도체제 아래서 여러 가지 비효율을 극복하고 긍정적 정책 방향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을까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f North Korea embraced reasonable economic policies…”
답) 물론 북한이 올바른 경제정책을 받아 들이면 현재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겠지만, 전 도무지 북한에서 그런 조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의 말처럼 주체사상을 부흥시키려는 듯 보입니다. 7, 80년대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경제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이 설 곳을 없게 만들어 버리려는 움직임 말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어떤 종류의 경제개혁도 정권 기반을 약화시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경제개혁을 단행할 경우 노동당이나 군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이 성장해 정권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적어도 당분간은 북한의 경제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문) 책에서 평양에 사는 3백만 명의 엘리트 계층에 대해 기술하신 게 생각나네요.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세력으로 지칭하셨는데, 그들이 누굽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e tend to talk about the North Korea elite as if…”
답)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 그냥 하나의 단일집단처럼 묘사되곤 하는데요. 그들간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우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김 씨 일가와 그 측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심부를 살짝 벗어나면 제가 ‘외부 엘리트 (outer elites)’라고 부르는 계층이 있죠. 주로 관리직 등에 종사하면서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인데요. 의식주 모두 만족스럽진 않습니다만, 의사결정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입니다. 정권이 붕괴되면 잃을 게 더 많은 사람들인 거죠. 이들이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세력들입니다.
문) 끝으로 북한에서 외부 방송을 어느 정도나 청취하는지 그 실태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regime doesn’t seem to block all broadcast…”
답) 북한 당국은 외부 방송을 완벽히 차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력난 때문이겠죠. 저도 직접 주파수를 맞춰가면서 외부 방송을 들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성공한 건 아니지만 가끔 방송을 들을 수 있었죠. 하지만 제가 만난 북한인들 중 어느 누구도 외부 방송을 듣는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죠. 특히 인민군 출신 탈북자 한 사람은 부대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청취했다고 증언했을 정도니까 외부 방송이 어느 정도 퍼져 있는지 짐작할 만 하죠.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title refers to a conversation that is reported…”
답) 북한 군인이 제 동료가 사진 찍는 걸 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는 사진을 찍었는지 검사했죠. 그런 사진이 없는 걸 확인한 북한 군인이 사진기를 돌려주면서 그러더군요. “좋은 것만 부탁합니다”라구요. 거기서 책 제목을 착안한 겁니다.
문) 책을 통해 북한의 어떤 모습을 설명하고 싶으셨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hat I was trying to do was to introduce ground truth…”
답) 북한 내부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핵 문제 뒤에 가려진 일상 말입니다. 그 곳 주민들은 핵 협상이 어떻게 됐는지 그런 걸 고민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여느 나라 사람처럼 친구, 가족, 배우자, 동료와 관련된 일들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문) 외부에서 북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think one of the biggest misunderstandings is that…”
답) 그렇습니다. 바깥에선 북한 사람들을 당국 지시만 일률적으로 따르는 로봇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오해입니다. 북한인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각자 아주 강한 개성을 갖고 있어요. 제가 만난 북한인들은 아주 재미있고 유쾌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묘사되는 성격과는 아주 다릅니다.
문) 그럼 북한인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나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often. They are, as you get to know North Koreans…”
답) 자주 들었습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 그들은 속마음을 털어놔요. 제가 만난 북한인들은 한결같이 나라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또 한 가지 특징은 북한에선 김정일 위원장과 국가가 거의 동일시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김 위원장에 대해 물어봐도 국가에 대한 대답으로 연결됩니다.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요. 흥미로운 건 평양의 엘리트들조차 김정일 위원장의 복잡한 가계와 관련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문) 북한인들이 지도자에 대해 불평하는 소린 못 들어봤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No, you are quite right. In the time that I was there people…”
답) 못 들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것에 대해 불평은 많이 해요. 전력난, 음식의 질, 교통 수단 부족, 이런 것들 말이죠. 그런데 단 한번도 지도부에 대해 불평하는 소린 듣지 못했어요. 물론 제가 외국 대사라 그런 얘기 꺼내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겠죠.
문) 책에서 물질주의와 외부세계에 대한 북한인들의 태도가 변했다고 하셨거든요. 어떻게 바뀌었나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re has been a very big change on this…”
답) 정말 크게 변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직전까지만 해도 북한인들은 스스로 지상낙원에 산다고 믿었습니다. 북한이 풍요롭고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나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 닥쳤습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굶주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사는 곳을 더 이상 지상낙원으로 생각하긴 어려워진 겁니다. 그런 와중에 중국 등을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인들은 자국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문)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선 얼마나들 알고 있던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y know now that South Korea is much richer and…”
답) 북한 사람들도 이제 한국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론 한국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요. 하지만 중국을 통해 넘어오는 한국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 현실을 접하죠.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게 한국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만큼 궁금해들 했습니다. 특히 제가 북한에 있을 땐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영향을 받아 한국식 말투를 흉내내는 게 유행이었을 정도였습니다.
문) 외교관들이 북한과 같은 나라엔 부임을 꺼리진 않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ell, it’s true that foreign ministries who maintain…”
답) 북한에 대사관을 둔 나라들은 그곳에 부임하려는 지원자를 찾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자녀 교육 문제가 걸리죠. 어린 자녀를 뒀을 경우 평양에서 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우니까요. 또 서방에는 당연히 있는 시설들이 평양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게 지원자들이 적은 이유죠.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평양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주민들과의 단절입니다. 세계 어떤 빈곤국가에 주재하더라도 그곳 주민들과 접촉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그게 어렵습니다.
문) 북한 대사로 부임하신 지 몇 달 안 됐을 때인 2006년 10월 북한이 첫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내부에선 상황이 어땠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remember the day of the test as it happened. We were at…”
답) 핵실험 당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평양주재 독일대사가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전 연회 중간에 잠시 2층에 있는 제 사무실로 올라갔는데요. 거기서 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얼마나 놀랐었는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바로 1층으로 내려가 독일대사에게 알렸죠. 바로 옆에 북한 외무성 관리가 앉아 있었는데 저녁 만찬 내내 독일대사와 그가 핵실험 문제를 논의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북한에 계셨죠?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선 당시 얼마나 알려졌었나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think the insider community had known for sometime…”
답)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1년 전 독일 심장 전문의들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김정일을 치료하기 위해 왔다고들 짐작했죠. 그래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건 당시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문)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본 적은 있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nearest I came to this was I attended an event…”
답) 없습니다. 하지만 평양의 5.1경기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그를 바로 몇 미터 거리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이미 당시에도 정상적으로 걷질 못하더군요. 그게 2007년도 일입니다.
문) 북한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은에 대해선 언제 처음 들으셨습니까? 또 그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 알게 되셨죠?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don’t think it became completely clear that he was a…”
답) 2010년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까진 김정은의 후계 계승 여부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후계자가 될 거라는 소문은 이미 2007년부터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북한이 김정일 사후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습니다. 김정은이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낙점된 시점은 정확한 건 아니지만 2007년 이후, 아마도 김정일의 사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무렵이었을 걸로 봅니다.
문) 직접 보신 북한의 빈곤 상황은 어떻습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 saw quite a lot of poverty traveling around…”
답) 전 평양에 살았지만 가끔 지방을 여행하면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추운 겨울 난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집들, 야윈 주민들, 영양실조 상태로 수 년간 고아원에 방치된 아이들을 봤습니다. 특히 지방 도시들 상황은 정말 안 좋습니다. 그 곳을 가 보면 주민들이 얼마나 야위었는지 모릅니다. 평양은 특권층이 사는 곳이라 대접이 괜찮고, 협동농장은 식량에 접근이 가능한 곳 아닙니까? 그 곳 주민들은 어떻게든 제 몫을 챙겨 놓죠. 그런데 유독 지방 도시 주민들은 그런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겁니다.
문) 외국인들은 평양 밖으로 나가 보기 힘든데 그래도 지방을 많이 다니셨나 보군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foreigners are allowed to travel 35 kilometers…”
답) 외국인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반경 35km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 쯤만 나가 봐도 농민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농업의 기계화를 그렇게 강조했지만 트랙터는 찾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트랙터가 있어도 연료가 부족해 기껏해야 소를 이용하는 게 다죠. 특히 상황이 더 열악한 시골에선 아주 옛날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문) 지금 말씀하신 북한의 열악한 농업 실태 때문에 대북 지원의 필요성이 자주 강조되는 건데요. 지원된 식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니까 선뜻 지원하기도 부담스러운 거구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Yes, so it seemed to me. I saw rice in WPF bags being…”
답) 그렇습니다. 전 세계식량계획, WFP라고 적힌 주머니에 담긴 쌀이 북한 장마당에서 팔리는 걸 봤습니다. 세계식량계획에서 지원한 쌀이 원래 의도와는 달리 거래되고 있는 걸로 봅니다.
문)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에 대해 회의적이신 건가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is is a subject on which there is no good answer…”
답) 정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북한의 영양부족 상황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참 동정이 가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식량이 군대 등으로 전용된다는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전 그런 전용이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문) 그래도 북한이 젊은 새 지도체제 아래서 여러 가지 비효율을 극복하고 긍정적 정책 방향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을까요?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If North Korea embraced reasonable economic policies…”
답) 물론 북한이 올바른 경제정책을 받아 들이면 현재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겠지만, 전 도무지 북한에서 그런 조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의 말처럼 주체사상을 부흥시키려는 듯 보입니다. 7, 80년대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경제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이 설 곳을 없게 만들어 버리려는 움직임 말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어떤 종류의 경제개혁도 정권 기반을 약화시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경제개혁을 단행할 경우 노동당이나 군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이 성장해 정권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적어도 당분간은 북한의 경제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문) 책에서 평양에 사는 3백만 명의 엘리트 계층에 대해 기술하신 게 생각나네요.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세력으로 지칭하셨는데, 그들이 누굽니까?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We tend to talk about the North Korea elite as if…”
답)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 그냥 하나의 단일집단처럼 묘사되곤 하는데요. 그들간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우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김 씨 일가와 그 측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심부를 살짝 벗어나면 제가 ‘외부 엘리트 (outer elites)’라고 부르는 계층이 있죠. 주로 관리직 등에 종사하면서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인데요. 의식주 모두 만족스럽진 않습니다만, 의사결정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입니다. 정권이 붕괴되면 잃을 게 더 많은 사람들인 거죠. 이들이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세력들입니다.
문) 끝으로 북한에서 외부 방송을 어느 정도나 청취하는지 그 실태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녹취: 존 에버라드 전 대사] “The regime doesn’t seem to block all broadcast…”
답) 북한 당국은 외부 방송을 완벽히 차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력난 때문이겠죠. 저도 직접 주파수를 맞춰가면서 외부 방송을 들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성공한 건 아니지만 가끔 방송을 들을 수 있었죠. 하지만 제가 만난 북한인들 중 어느 누구도 외부 방송을 듣는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죠. 특히 인민군 출신 탈북자 한 사람은 부대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청취했다고 증언했을 정도니까 외부 방송이 어느 정도 퍼져 있는지 짐작할 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