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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문가들 "남북 합의, 북한 체제 정당성 훼손 우려 보여줘"


25일 파주시 판문점에서 남북한 고위급 접촉이 타결된 가운데, 남측 대표인 김관진 한국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이 악수하고 있다.
25일 파주시 판문점에서 남북한 고위급 접촉이 타결된 가운데, 남측 대표인 김관진 한국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이 악수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북 간 극적으로 타결된 이번 협상 과정에서 체제 정당성에 대한 북한의 민감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추가 도발이나 긴장 국면 장기화의 구실로 삼는 대신 전격적 협상을 통해 급히 무마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또 박근혜 한국 정부의 단호한 대북 원칙이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면서도 북한의 합의 이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영문 기사 보기] Inter-Korean Deal Shows North’s Vulnerability to Criticisms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한 북한의 유별난 집착을 이번 합의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규정했습니다.

[녹취: 빅터 차 석좌] “I think it really speaks that how badly they really wanted those broadcast to stop. If they really didn’t care about the broadcast, they will just use it as a pretext for ramping up tensions. Then this could have gone on for much longer.”

차 석좌는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포격 도발로 인한 한국의 보복사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확성기 중단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 건 매우 흥미로운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확성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오히려 이를 구실 삼아 긴장 국면을 더욱 길게 끌고 갔을 텐데, 남북 간 합의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입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지낸 차 석좌는 김정은 체제가 정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다며, 김정은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에 대해 북한이 보였던 격앙된 반응을 상기시켰습니다.

[녹취: 빅터 차 석좌] “They are very sensitive about the legitimacy of the leadership right now, I think. We’ve seen this very sensitive reaction to the movie ‘The Interview’…”

차 석좌는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한 인정이나 직접적인 사과 대신 유감을 표시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이는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등 과거 도발 때 보였던 태도보다 훨씬 진일보한 변화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역시 온통 확성기 중단에만 쏠려있는 북한의 관심을 반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랠프 코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태평양포럼 소장 역시 이번 협상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정조준한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랠프 코사 소장] “They are afraid of the propaganda broadcast because they are attacking the legitimacy of the regime…”

코사 소장은 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갈등 속에 북한이 ‘새로운 한국’과 맞닥뜨리게 됐다며, 보복 조치를 공언하면서 더욱 단호하고 강한 태도로 나오는 한국의 기세에 한 발 물러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북한에 출구를 제공하면서 (지뢰 도발에 대한) 인정과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낸 것은 현명한 전략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물러서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지도력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이처럼 단호한 원칙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이명박 정권이 천명했던 대북 접근법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랠프 코사 소장] “I give her credit. I think she has been a very forceful leader but it started with Lee Myung-bak after the Yeonpeyong shelling and Cheonan incident…”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이번 협상 타결을 어느 일방의 승리라기 보다 남북한 모두 이득을 본 ‘윈-윈’ 회담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대표] “I think it’s a win-win because North Korea has gotten the attention of the South which is something it wanted and has perhaps opened the door to some modest steps at rapprochement. But the South has remained resolute in the face of North Korean aggression and has not provided one-way concessions to the North in order to try to convince the North to behave better.”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관심을 이끌어냄으로써 관계 개선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고,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맞서 단호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겁니다.

특히 비교적 젊고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서는 남북 간 대등한 협상 과정을 국내에서 정통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누지 대표는 북한의 유감 표명이 완전한 사과에는 못 미치지만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누지 대표는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긴장 고조를 막았을 뿐아니라 북한의 엄포에 굴복하지 않고 양보를 얻어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대표] “I would say that she has handled this crisis well; she has avoided escalation, she has avoided capitulating to the North’s bluster, and she has managed to extract a few concessions.”

박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얻어낸 더욱 중요한 양보는 사과 자체보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당국 간 회담, 민간교류 활성화 합의 등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의 밑거름이 될 환경을 조성하는 조치들이란 설명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 합의를 제대로 준수할지 여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빅터 차 석좌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북한이 9월 열기로 합의한 적십자 실무접촉이 첫 시금석이 될 것이라면서, 확성기 방송 중단 요구를 관철시킨 북한이 이후 가족 상봉 행사에 대가를 요구하는 등 태도를 바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누지 대표도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남북 경협과 교류 등과 관련해 약속을 어긴 전례가 한 두 번이 아니라며, 앞으로 가족 상봉과 당국 간 회담이 실제로 열리고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자제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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