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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 당국자들 북한 비핵화 ‘중간 단계’ 잇단 언급…전문가들 “대선 앞두고 핵 위협 고조 상황 관리”


정 박 미 국무부 대북고위관리가 5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했다.
정 박 미 국무부 대북고위관리가 5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잇달아 북한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를 언급하면서 발언의 의미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미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는 5일 워싱턴DC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며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정 박 대북고위관리는 특히 “북한이 관여할 의향이 있다는 어떤 신호도 우리는 환영한다”며 “어떤 직급에서도 관심 사항에 대해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보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도 지난 4일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2024’ 특별대담에서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만약 전 세계 지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연이어 북한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전제로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북한과 중간 단계 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겁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간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발신한 ‘조건없는 대화’ 제안과 비교하면 한층 대화 의지를 실은 구체적인 제안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미 고위 당국자들의 이런 발언의 의미와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북한 비핵화 협상은 통상 동결을 첫 단계로, 그리고 실질적인 비핵화를 두 번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는데 미국은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첫 번째 동결 단계 정도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이 집중되는 게 아니냐 물론 그 다음에 비핵화 단계도 간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걸 암시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보여집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이 언급한 중간 단계의 의미에 대해 김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 핵 프로그램 동결, 그리고 관련 검증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제 해제의 맞교환을 제안했다가 실패했던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박 대북고위관리는 중간 단계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술핵무기 고체연료, 극초음속 능력, 무인잠수정 등 북한의 무기 관련 활동 그리고 확산의 범위를 고려할 때 다뤄야 할 무기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정 박 대북고위관리의 발언엔 북한과의 협상 대상이 핵무기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위협 감소를 위한 보다 광범위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드러난 대목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이라는 게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운반하는 수단, 그 운반수단은 재래식 탄두를 운반할 수도 있고 또 현실적으로 다양한 군사적 위협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단순히 비핵화 협상, 핵 군축 협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위협을 포괄적으로 감소시키고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식의 포괄적인 협상 또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미국이 인정하는 것이고.”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 시점을 놓고는 미국이 중동과 유럽에서 두 개의 전선을 다루는 가운데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형 도발에 나서지 않도록 관리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핵 고도화를 방치했다는 미국 내 비판을 완화하고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북 핵 대응을 둘러싼 공세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겁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훨씬 더 의미있고 심각한 도발을 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니까 더욱이 그동안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 비판 중 하나는 너무 소극적이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는 전략적 인내, 전략적 방치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줄 필요는 있겠죠.”

박원곤 교수는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들이 사실상 북한을 향한 대화 촉구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박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더 선호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대화는 대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가 줄곧 뉴욕채널 등을 통해 외교적 해법 모색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하거나 핵 선제사용을 가능하도록 하는 핵무력 법제화, 핵무기 발전 고도화의 헌법 명기 등 핵 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장용석 박사는 북한으로선 지금이 핵 능력을 강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국면이라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물밑접촉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북한은 한국을 제1주적으로 공격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고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며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잡기 차원에서 미국과의 대화 타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중간 단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북한으로선 하노이를 떠올릴 수 있거든요. 미국이 주는 시그널을 제가 해석한다면 하노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열어 둔거다, 그렇게 보면 북한이 덥석 물진 않겠지만 아마 물밑 접촉 가능성은 있죠.”

일각에선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이 한반도에서의 우발적 충돌과 예기치 않은 긴장 고조를 꺼린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북한이 미 대선을 앞두고 이를 역으로 이용해 물리적 도발을 감행하거나 판을 흔드는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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