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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세계인이 즐긴 영화의 주역, 제임스 스튜어트


[인물 아메리카] 세계인이 즐긴 영화의 주역, 제임스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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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세계 영화 팬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명 배우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제임스 메이트랜드 스튜어트입니다.

이 시간에는 세계 영화 팬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명 배우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제임스 메이트랜드 스튜어트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제임스 스튜어트, 또는 그보다 더 짧게 지미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1905년 미국 동부 펜실배니아 주의 조그마한 도시 인디애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1850년대부터 가업으로 내려오던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지미는 고등학교 시절 미식 축구 선수였습니다. 아코디온 연주도 하고 연극도 했습니다. 그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 갈때도 아코디온을 갖고 갔습니다. 대학에서는 트라이앵글 클럽이라는 음악 클럽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그는 이 클럽에서 연기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지미는 1932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전 한 친구가 여름방학 때 연극 클럽에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미는 거기 가면 여학생들을 사귈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지미는 나중에 만약 그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영화배우가 못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철물점 일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라는 곳에서 청년들과 연극에 빠져있었습니다. 그중 한 멤버가 나중에 유명 배우가 된 헨리 폰다였습니다. 지미는 헨리 폰다와 평생 친구가 됐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영화사 MGM에서 배역을 줄때까지 뉴욕시 브로드웨이의 연극에 출연했습니다. 그가 영화의 고장 캘리포니아로 간때는 1935년이었습니다. 그후 6년 동안 그곳에서 24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코메디, 비극, 뮤지컬 등 출연 작품은 다양했습니다. 뮤지컬 코메디 영화 "Born to Dance" 에서는 직접 노래도 불렀습니다. 곡명은 "Easy to Love"였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를 헐리우드의 진짜 스타로 만든 건 1931년에 나온 정치 풍자 영화 “미스터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였습니다. 애국심이 강하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인 제퍼슨 스미스라는 인물이 상원의원이 되면서 부패세력과 싸우는 영화입니다.

"It's a funny thing about men, you know. They all start life being boys. I wouldn't be a bit surprised …

“남자들이란 웃기는 존재들이야.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출발하지. 저 상원의원들도 한때는 어린 아이였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아.”

그래서 그들을 단단히 가르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입니다.

그 다음해 지미 스투어트는 영화 “필라델피아 이야기” ( The Philadelphia Story)에서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이 있던 날 밤 펜실배니아에 있는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무슨 상을 받았다면서. 나중에 여기 올때 그걸 가져와라. 가게 창문 앞에 놓아두게.” 그후 25년 동안 스튜어트가 받은 오스카 상은 철물점 창가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을 때 스튜어트는 이미 유명한 배우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대에 가기로 했습니다. 1941년 초 그는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몸무게가

모자라 입대가 거부됐습니다. 그래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다시 지원했습니다. 두번째에는 입대를 할수 있었습니다.

군에서는 조종기술이 있는 그를 공군으로 보냈습니다. 스튜어트는 1943년 유럽의 폭격기 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20차례 이상 전투 비행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어떤 때는 독일에서 무려 천대의 항공기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한 그는1945년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여러 차례의 뛰어난 임무 수행으로 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공군 예비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59년에는 장성으로 진급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2주간의 현역 복 를 했습니다. 1966년에는 베트남 파병을 자원해 폭격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지미 스튜어트는 헐리우드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유명한 "It's a Wonderful Life"에 출연했습니다. 그 영화는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하나로 올라섰습니다. 작은 도시에 사는 한 남성이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게 나을번 했다며 자신을 비관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그렇지 않다고

일깨워 주는 이야기이니다. 영화는 충직성이라든가 가정의 사랑 등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JIMMY STEWART: "Can't you understand what's happening here? Don't you see what's happening? Potter isn't selling. …

이 영화는 한국에서 “멋진 인생”으로 소개됐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텔레비젼을 통해 다시 방영이 되곤 합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말년에 영화 It's a Wonderful Life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다른 역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다음해 나온 영화 ‘노스사이드 777을 돌려라’ (Call Northside Seven Seven Seven)에서의 기자역이었습니다. 1948년에는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로프’에서 의혹을 받는 학교의 교장 역을 맡았습니다. 1950년대에는 ‘윈체스터 총 73’ (Winchester Seventy-Three), ‘부러진 화살’ 등 여러편의 서부극에 출연했습니다.

1950년대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1959년에는 영화 “살인사건의 해부”로 베니스 영화제 상, 뉴욕 영화 비평가상, 데일리 작가상 등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된 군 장교의 변호인 역을 했습니다. 그는 코메디 영화 Harvey에서 상상속의 토끼 친구 역으로 아카데미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유명한 미스테리 감독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습니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나이, 뒷쪽의 창문, 현기증 등입니다. 악단장 글렌밀러 이야기, 비행기 ‘센트루이스 스피리트’ 호의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 역을 하는 등 영웅들의 모습을 연기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 그의 영화 출연은 뜸해졌습니다. 서부영화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서는 상원의원 역을 했습니다.

영화 ‘슈티스트’에서는 작은 읍의 의사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텔레비젼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TV에서는 별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스튜어트는 건강 문제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심장, 피부암, 청력 상실 등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행을 다녔습니다. 1989년에는 시집도 냈습니다. 그 시집은 인기가 있어 30만권 이상이나 팔렸습니다.

1980년 지미 스튜어트는 미국 영화연구소, AFI로부터 평생공로상을 받았습니다. AFI는 영화 제작자를 교육하고 영화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미국의 비영리 영화 기관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케네디 센터 영예훈장을 받았습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에게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국가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배우와 전쟁 영웅만이 아니라 그와같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타운에서 어린 사절을 보내며 배운 가치를 고스란이 간직하며 산 신사였습니다.

그는 1983년 70세 생일을 기해 고향인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에서는 그를 환영하는 커다란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레건 대통령은 그곳 상공에 항공기를 보내 축하 비행을 하도록 했습니다. 타운 센터에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1949년 글로리아 해트릭 매클린과 결혼했습니다. 지미와 글로리아는 쌍둥이 딸을 낳았습니다. 글로라아는 전 결혼에서 두 아들을 둔 여성이었습니다. 지미는 그 아이들도 친 아들 처럼 키웠습니다. 그중 한 아들은 해병대로 월남전에 나갔다 불행하게도 전사했습니다.

지미는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글로리아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면서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지미의 건강도 악화됐습니다. 지미 스튜어트는 1997년 7월 2일 고향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89세.

이 시간에는 아직도 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지미 스튜어트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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