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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장마당의 큰손 '돈주'


지난 2011년 북한 라선 시 장마당 입구. (자료사진)
지난 2011년 북한 라선 시 장마당 입구. (자료사진)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입니다. 북한의 신흥부유층으로 불리는 이른바 ‘돈주’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돈주들이 국가 건설사업에 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인 북한에서 ‘돈주’는 어떤 존재일까요?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는 상위 1%의 부자가 있으며, 이들은 ‘평해튼’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의 신문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평해튼’은 평양과 미국 뉴욕주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맨하튼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평양에서 사는 부자들의 생활이 미국 대도시에 사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빗댄 말입니다. 이 신문은 김정은 시대 들어 ‘돈주’들이 크게 성장했으며, 이들이 벌어들인 돈이 북한 사회 곳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도 13일자 평양발 기사에서 평양에서는 손전화가 보편화 됐으며, 미화로 가격이 표시된 포장 음식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외신 기자들에게 평양의 신흥 중산층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당부를 하는 당국의 안내인 스스로가 비싼 유럽산 시계를 차고, 고급 정장을 입는 신흥 중산층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돈의 주인’이라는 뜻의 ‘돈주’는 북한의 신흥 자본가들을 말합니다. 많게는 수백만 달러, 적게는 수만 달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알려졌습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지난 10월 평양발 기사에서 이런 돈주들이 북한의 지하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돈주가 등장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입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이 중단되고 국영상점마저 문을 닫게 되자 북한 주민들은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팔기 위해 장마당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이득을 본 사람들, 즉 돈을 모으기 시작한 사람들이 ‘돈주’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돈주는 ‘고난의 행군’이 낳은 산물인 셈입니다. 탈북자 출신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입니다.
<Money/9PHJ-ACT1> [녹취:안찬일 소장]
"돈주와 장마당의 발아기 시기는 거의 같은데, 자영업자가 등장하고, 장마당 경제는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움직이고, 화폐가 필수적이니까, 돈주가 등장한 겁니다.”

장마당이 활성화 되면서 돈주들의 돈벌이도 점차 다양해졌습니다. 매대에서 물건을 파는 소매상부터, 지방과 평양을 연결하는 도매상, 심지어는 국경을 넘나들며 물건을 들여오는 ‘상품떼기’등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마당이 북한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 때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폐쇄했습니다. ‘비사회주의 요소’로 간주해 엄격히 통제한 겁니다. 하지만 식량난과 생필품 부족 등으로 주민 반발이 커지자 두 달 만에 다시 허용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 4년 동안 장마당에 대한 이렇다할 단속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마당의 기능과 필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Money/9PHJ-ACT2> [녹취:안찬일 소장]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이걸 통제하려면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장마당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기 때문에 공권력으로 이를 무너뜨리거나 막을 수 없는 겁니다”

북한 당국은 오히려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화 흐름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지난 2014년 5월 내놓은 새로운 ‘경제개혁조치’ 이른바 ‘5.30 조치’가 대표적입니다. 5.30 조치는 북한 내 모든 기관과 기업소, 상점 등에 자율적 경영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이를 통해 각 개인이나 기업소가 얻는 이윤의 10~15% 정도를 세금으로 징수합니다.

시장 경제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인 경제 개혁을 통해 김정은 체제가 공언하던 인민 생활 향상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당국이 시장에 관여하면서 시장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의 일정 부분을 국개 재정으로 거둬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장마당에서 돈을 번 돈주들은 장마당을 나와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생필품 판매를 넘어 운송업과 서비스업으로까지 진출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버스인 ‘써비차’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바이 택시’도 나타났습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살다가 2008년 탈북한 백화성 씨입니다.
<Money/9PHJ-ACT3> [녹취:백화성]
"써비차는 개인이 하는 운송, 버스, 택시 이런 건데, 사람도 싣고 짐도 싣고, 경제난 이후 개인들이 먹고 살려고 만든 건데, 이것 없이는 이동을 못해요.”
돈주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금융 시장까지 형성하고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돈주들이 고리대금업을 비롯해 전당포 운영 등 다양한 이권 사업에 투자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과 분양에 관여해 돈은 버는 이른바 ‘부동산 거간’도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부동산 시장을 조사한 한국 경상대학교 정은이 교수입니다.
<Money/9PHJ-ACT4> [녹취:정은이 교수]
"입사증 문제가 해결 안돼 많은 분쟁들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입사증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주택 거간 즉, 부동산 중개인이 나타났습니다. 주택 거래 가격의 10%를 수수료를 내면 문제가 안됩니다.”
이들은 국가 건설사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지난해 6월 경남대 임을출 교수는 돈주 80여명을 직접 인터뷰한 뒤 발표한 연구자료에서 김정은 정권 들어 추진한 창전동 아파트나 문수물놀이장 건설 사업에 돈주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들이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는 못하지만, 북한사회에서 시장경제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주와 이들의 이권을 비호해주는 권력층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권 차원에서도 돈주의 자금력을 ‘업적 쌓기용’으로 진행되는 각종 건설공사와 토목공사에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을출 교수입니다.
<Money/9PHJ-ACT5> [녹취:임을출 교수]
“지금 김정은은 가능하면 자기 재정은 덜 사용하고 주민들이 갖고 있는 돈을 어떻게든 끌어들여 경제건설 업적도 자랑하고 자기들의 국가계획 목표도 달성하고 이러기 위해서 돈주를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돈주와 김정은 정권은 잘 협력해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돈주’들 역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광물 수출이 금지되고 북-중 교역이 축소됨에 따라 주로 대외 무역을 통해 큰 돈을 벌고 있는 돈주의 손해가 불가피 하다는 겁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남북물류 포럼 김영윤 박사입니다.
<Money/9PHJ-ACT6> [녹취:김영윤 박사 교수]
“돈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이익이 되는 모든 물품을 중국에서 가져와 북한 시장에 내다 팔아서 이익을 챙겼는데, 제재가 되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대북 제재가 장기화 되고 돈주의 손해가 늘어나면, 이것이 결국 김정은 체제의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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