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포격으로 파괴된 공동묘지.
15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포격으로 파괴된 공동묘지.

이번에는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면서 또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와 최근의 흐름 짚어보겠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어떤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동유럽과 서아시아 사이, 이른바 유라시아 지역에 있는 나라입니다. 동쪽은 카스피해와 접해 있고, 러시아와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등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1918년,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아제르바이잔민주공화국이 탄생하는데요. 하지만 2년 뒤 소련에 가입하면서,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구소련 공화국의 하나였습니다. 수도는 ‘바쿠(Baku)’이며 주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어떤 나라?”

역시 유라시아에 있는 아르메니아는 바다와 접해 있는 아제르바이잔과는 달리 내륙국입니다. 조지아와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에 둘러싸여 있는데요. 1922년 소련에 가입했다가 1990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수도는 ‘예레반(Yerevan)’이며 주민의 대부분이 기독교의 일파인 아르메니아 정교를 믿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지표 비교”

아제르바이잔의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1천만 명입니다. 국가 면적은 약 8만6천600㎢입니다. 2019년 아제르바이잔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1천9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국토는 아제르바이잔보다 훨씬 작습니다. 총면적이  약 2만9천㎢이고요. 인구도 300만 명이 채 안 됩니다. 아르메니아의 2019년 국내총생산(GDP)도 약 330억 달러로, 여러 지표에서 아제르바이잔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매우 복잡하고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인종도 다르고 종교도 전혀 다릅니다. 

아르메니아는 AD 301년, 전 세계에서 제일 처음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입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의 뿌리가 깊어 오랫동안 서로 반목해왔습니다. 

여기에 아제르바이잔이 같은 투르크계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최우방국인 것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두 번에 걸쳐 아르메니아인들을 집단 학살했습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전쟁 중 발생한 불행한 사건이라며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조직적 집단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갈등의 도화선, 나고르노-카라바흐”

두 나라는 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싸고 아주 오래전부터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두 나라 남쪽에 있는 산악 고원 지대인데요.  
기원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주로 살다가 7세기 중반 페르시아 왕국이 이곳을 점령하고 이슬람교도들이 정착하면서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고, 여러 민족이 독립 국가를 선언하는데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도 그런 나라였습니다. 

두 나라는 당시도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놓고 마찰을 빚었는데요. 1922년 소련이 출범하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소련에 가입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집니다. 

당시 소련 스탈린 정권은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공산주의 지지를 얻고, 아제르바이잔을 발판 삼아 이슬람 국가인 신생 터키와 새로운 관계를 맺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하고 아르메니아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주는데요. 이후 소련의 강력한 통제로 이 지역의 갈등은 한동안 잠잠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독립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향후 아르메니아와 통합하겠다고 선언하며 이 지역은 다시 갈등의 도화선이 됩니다. 

“전쟁과 국제사회의 중재”

1992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독립을 지지하는 아르메니아와 이들의 독립을 막으려는 아제르바이잔 간에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점령하고 주변 아제르바이잔 영토도 일부 차지하는데요. 이 기간,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3만 명 이상 사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사회는 1992년 양국의 분쟁 해결을 위해 ‘민스크그룹’을 출범시킵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가 공동의장국을 맡았는데요. 그리고 두 나라는 1994년 5월 휴전에 합의합니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지난 2017년부터는 ‘아르차흐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국호를 정했는데요. 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운 충돌- 더 커진 외부 개입”

두 나라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지난 9월 27일부터 다시 무력 충돌을 재개했습니다. 전투기와 드론, 포격이 오가는 가운데 양측 모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요. 정확한 피해는 양국이 확실한 정보 공개를 꺼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두 나라는 2주일 넘는 교전 끝에 10월 10일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대방이 휴전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교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을 무력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터키가 시리아 무장반군을 전선에 용병으로 투입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민스크그룹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두 나라가 휴전을 준수하고 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스피해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송유관이 매장돼 있어 이 두 나라의 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하면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뉴스 속 인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입니다. 

지난 9월 23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격렬한 반정부 시위 속에 여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1991년 독립한 벨라루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1954년생으로 올해 66살입니다. 구소련에 속해 있던 벨라루스의 코피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힐료우 교육대학과 벨라루스 농업 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1979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고, 군 제대 후에는 집단 농장의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이 기간 그는 지도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벨라루스 최고위원회 대표로 선출돼, 부패와 범죄척결을 강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당시 벨라루스는 소련 붕괴의 후유증으로 경제난이 심화되며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그는 1994년 벨라루스가 소련에서 독립한 후 민주적 방식으로 치른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시아 정책과 경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80%의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벨라루스 역사상 초대 민선 대통령이었던 그는 그러나 이후 임기를 연장하고 연속 3선 금지 조항을 철폐하며 지금까지 26년째 장기 집권 중입니다. 

하지만 벨라루스 야권과 시민 사회는 지난 8월 초에 있었던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며 대통령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도 벨라루스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현재 루카셴코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선출된 공식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 EU는 부정 선거와 시위대 강경 진압에 연루된 벨라루스 고위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하고 있는데요. 유럽연합(EU)은 오랜 논의 끝에 지난 10월 12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제재하기로 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관계에 대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