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jeong-Graduation
탈북 청년 김유정 양이 올해 고등학교 졸업 당시 수양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유정 양 제공)

12월 18일은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세계 이주민의 날’입니다. 미국에도 4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탈북민들이 거주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는데요, VOA는 두 차례에 걸쳐 꿈을 이룬 탈북민 장년들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부시센터의 ‘2020년 북한자유 장학생’ 인 김유정과 에블린 정의 사연입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내 인생의 첫 13년 동안의 꿈은 강을 건너 전기가 끊어지지 않는 나라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항상 전기가 있는 나라에 산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전기가 없어지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나와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얼음 경계가 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든 것은 우리가 다르다는 점이 아니라, 거부에 대한 두려움과 자만심이라는 것을. 이제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의 일부를 버리지 않겠다.”
(‘보이지 않는 두꺼운 얼음’ ‘Invisible, Thick Ice’, 김유정 작)

탈북 청년 김유정 씨가 지난 10월 자신이 다니는 펜실베이니아주 채텀대학교의 글짓기 대회 ‘빅 리드 2020’에서 1등 상을 받은 ‘보이지 않는 두꺼운 얼음’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김 씨는 이 글에 자신의 삶의 여정과 깨달음을 담았습니다. 

2014년 겨울, 함경북도의 북중 국경지대에서 살던 열세 살 김 씨는 세 살 많은 언니 손을 잡고 브로커의 안내로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1년 먼저 탈북한 아버지가 보내준 브로커였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 정착했고, 두 딸은 미국에 와 각각 다른 수양 가정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김 씨는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이 특별히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유정] “I didn’t speak any English and people would try to communicate with me and I will just misunderstand everything they were saying and I would just pretend I understood.”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전부 오해하고 그저 이해하는 척만 했다는 것입니다.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친아버지와 통화하고, 친언니와 주변의 한인 언니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탈북 청년 김유정 양이(우측 산타 모자) 수양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김유정 제공)

 김 씨는 지금까지 매 순간 물질적,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며 자신도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채텀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 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녹취: 김유정] “You know how I’m studying psychology. I’m thinking more of those like emotional help, like emotionally feeling depressed. I think it will be very helpful because I experienced it personally.”

김 씨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 또한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고 극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크리스마스 무렵 미국에 도착했다는 김 씨는 이맘 때면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두고 온 친척과 가족을 생각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도 밝혔습니다. 

김 씨는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미해결 사건 클럽’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 사고를 깊이 파기도 하고, ‘봉사활동 클럽’에서 생일 선물과 장난감을 만들고 옷들을 기부 받아 전달하기도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집에 머물렀던 지난 여름에는 주변 지인들 30명을 모아 메신저 채팅방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또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고 일상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석사 공부와 해외 유학 등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녹취: 김유정] “There are just so many things I haven’t done compared to my friends who grew up here. For me, I’m just catching up with my friends who did so many different things.”

미국에서 자란 친구들에 비하면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친구들을 따라잡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씨는 자신에게 있어 ‘아메리칸 드림’은 ‘교육’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용 공부와 유튜브 활동을 병행하는 ‘에블린 정’

시카고 I.M 미용 전문대학을 다니고 있는 에블린 정 씨도 2014년 겨울 어머니와 북중 국경을 넘었습니다. 

중국에서 어머니가 구해 놓은 아파트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정 씨에게 혼자 미국으로 가서 새 삶을 개척하라고 권했습니다. 

[녹취: 에블린 정] “어머니가 중국이랑 연관이 많이 있으시다 보니까 그런 뉴스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다른 세상도 일반 북한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아시고, 소식도 더 많이, 빨리 접하시고. 중국 청년들도 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말씀을 들으셨어요. 기회가 돼서, 미국에 오는 것을 결심했던 것 같아요.”

탈북 청년 에블린 정이 올해 10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에블린 정 제공)

정 씨는 미성년의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에 와 수양 가정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중국에 남았던 어머니는 최근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녹취: 에블린 정] “저는 제일 어려웠던 점이 영어인 것 같아요. 제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많이 울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저희 어머니랑 전화할 때 ‘왜 나는 여기에 있냐고, 엄마는 없고’ 이러면서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가 익숙해지고 미국 사회에도 적응한 정 씨는 예전보다 훨씬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미용 전문학교를 다니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 미용실에서 일하며 수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등 1인 3역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TV 방송 출연도 하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녹취: 에블린 정] “저는 북한에서 성악 단체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고 그런 걸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런 데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팬들이랑 소통을 많이 하는데, 팬들이 너무 예쁘고 진짜 좋은 얘기 많이 해주고 그래서 자신감도 엄청 상승했고요. 기회가 된다고 하면 방송에 나가서 얘기도 하고 싶어요.”

자신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가족’이라고 밝힌 정 씨는 언젠가 자신의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습니다. 

김유정 씨와 에블린 정 씨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설립 한 부시센터가 선정한 ‘2020년 북한자유 장학생’들입니다. 

미국 내 탈북민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이 장학 프로그램은 지난 4년간 25명의 탈북 청년들에게 총 11만 8천500달러의 장학금을 수여했습니다. 

[녹취:린지 로이드 국장] “I think probably the most importantly and closest to President Bush’s heart. We started the North Korea Freedom Scholarship…”

부시센터의 린지 로이드 인권 담당 국장은 앞서 VOA에 “부시 전 대통령의 마음이 가장 많이 담겨 있는 사업이 ‘북한자유 장학금’”이라며, 부시센터는 이것이 북한의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탈북민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전해드리는 기획, 오늘은 두 번째 마지막 순서로 미국 내 탈북 청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을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