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 양각도 호텔 로비의 화장실 입구가 거울이 비쳤다.
지난 2017년 12월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개막식 직전 개조된 한국 강릉 모텔의 화장실을 모텔 주인이 소개하고 있다.

매년 11월 19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화장실의 날’입니다. 화장실 위생 개선이 보건과 환경 보호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높이기 위한 날인데요, 탈북 지식인들은 북한 당국이 세균의 온상인 화장실과 낡은 하수도 개보수에 국가 자원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는 탈북민 장정혁 씨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탈북파이터TV’를 통해 ‘대한민국 화장실에서는 밥도 먹겠는데요?’란 제목으로 어머니와 남북 화장실 문화를 비교했습니다.

[장정혁 씨] “대한민국에 와서 여러 놀랄 일이 많지만, 제일 놀랐던 게 화장실이 너무 깔끔해서”

[장 씨 어머니]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하나같이 칭찬하는 부분이야”

[장정혁 씨] “맞아. 탈북해서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잖아요. 그래서 화장실을 처음 썼는데, 와 일단 제일 신기한 게 바닥이 너무 깔끔하고 화장실이 정말 깔끔해서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화장실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장 씨 모자뿐 아니라 많은 탈북민들은 한국에 정착하며 받는 가장 큰 문화적 충격 가운데 하나로 화장실 문화를 꼽습니다. 

북한에서는 24시간 온수가 나오는 청결한 수세식 화장실을 수령 가족이나 외국인 전용 호텔 숙박객들만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가정과 공공장소 등 어디나 대부분 이런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독자가 12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북한 남자’를 운영하는 박유성 씨는 수세식 양변기 아래에서 냉·온수가 뿜어져 나오는 자동 세척은 물론 건조까지 해주는 전자식 ‘비데’에 탈북 청년들이 충격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박유성 씨 동영상] “여기는 제일 좋은 게 뭐냐하면 비데! 와 정말 좋더라고요. 항문을 시원하게 닦아주는 게 정말 좋고. 깔끔하고. 휴지도 많이 사용하지 않으니까 환경에도 많이 도움이 되고. 저희 사무실에도 비데가 다 설치돼 있거든요. 정말 좋아요”

북한 의사 출신인 최정훈 한국 고려대학교 공공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8일 VOA에, 북한 화장실의 위생 상황은 미국이나 한국과 비교해 매우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정훈 선임연구원] “위생과 보건, 방역 쪽으로 봐도 남한 화장실은 오염이 되어서 들어갔다가 다 세척해서 나올 수 있잖아요. 북한은 볼일 보러 들어가지만, 들어갔다 나올 때는 오히려 화장실 안에 있는 오물이나 균을 묻혀 나옵니다. 씻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가장 기본도 안 돼 있는 겁니다.”

대부분 재래식인 농촌은 물론 도시도 일제 강점기 때 만든 낡은 상·하수도 망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배설물이 주변 물과 토양까지 오염 시켜 각종 질병과 기생충 감염증까지 일으킨다는 겁니다.

유엔은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북한 등 주로 저개발국 인구 42억 명이 이렇게 안전한 위생 관리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7월 북한 평양 류경원(Ryugyong Health Complex)의 대중 목욕탕에서 직원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지를 위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해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위생 보건, 환경 보호를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유엔은 비위생적인 화장실 내 파리 등 각종 곤충을 통한 감염, 배설물에 따른 물과 토양 오염으로 인해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하고,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불결한 위생으로 더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한국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해 언론 기고를 통해 북한 내 화장실 위생 문제에 관해 자신이 겪은 여러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가령 외국 손님과 판문점 등 지방을 여행할 때는 열악한 화장실 상황을 감추려 출발 전 호텔에서 용변을 보도록 하는 게 철칙이었고, 방문 마을 진입 전에는 차량을 세우고 산에 올라가 용변을 보도록 했다는 겁니다. 

또 ‘세이브 더 칠드런’ 등 국제 인도주의 단체가 농촌에서 어린이들에게 손을 깨끗이 씻는 운동과 사업을 펼쳤음에도 설사 증세가 계속돼 조사한 결과 화장실 오물에 오염된 우물물로 손을 씻어 질병에 걸린 사실을 밝혀냈다고 지적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유럽 국가들의 원조로 학교 화장실을 다시 짓고 하수구 시설도 정비해 상부에 보고했지만, 중앙당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선전에 해가 된다며 “화장실 협조”란 표현을 “물 위생 협조”로 바꾸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북한 당국이 2017년에 실시한 다증지표군집조사(MICS)에 따르면, 북한에서 하수도관을 갖춘 수세식 화장실은 44.6%, 정화조를 갖춘 수세식은 12.3%, 재래식은 43%입니다.

한국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그러나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생활용수 부족과 낡은 하수구 문제 등으로 실제 수세식 이용률은 낮으며, 농촌은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안현민 연구원은 앞서 VOA에, 2018년에 탈북 여성 1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화장실 위생 문제로 인한 여성 질병 사례가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현민 연구원] “생리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장소를 생각하면 화장실인데, 화장실이 미비하고 위생적이지 않은 화장실로 인해 여성들은 독성쇼크증후군, 질염, 생리 관련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수질, 청결한 화장실 등 깨끗한 위생 시설은 여성의 생리 기간 신체적인 건강과 심리적 안정감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 대학에서 주체 철학을 가르쳤던 현인애 한국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18일 VOA에, 북한 지식인들도 화장실의 문제점을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체제 유지를 위해 재원을 국민의 생명과 보건·복지보다 군사력에 집중하는 것이며, 만성적인 경제난 또한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현인애 교수] "화장실 문화라는 것은 (주민들이) 수준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나라 경제가 발전해야 합니다. 문화는 결국 돈이잖아요. 돈이 없으니까. 경제가 안 되니까 문화생활을 할 수 없는 거죠.”

현 교수는 한국도 과거 재래식 화장실이 다수였지만,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통해 문화 수준도 높아지면서 화장실은 청결과 위생뿐 아니라 휴식과 사색까지 즐기는 여유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최정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심각한 화장실 위생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낡은 하수구의 전면 개보수 등 사회기반 전체를 바꿔야 한다며,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는 한 화장실 문화는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