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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AP통신 초대 평양지국장-진 리 


[여성 언론인 대담] AP통신 초대 평양지국장-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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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북한은 세계 언론 매체들에 중요한 취재 대상입니다. 하지만 서구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서 활동하기 힘든 곳이 북한인데요. 그건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의 AP통신이 서방 언론 최초로, 2012년 1월 북한 수도 평양에 지국을 열었습니다. 초대 지국장을 맡아, 생생한 북한 소식을 현지에서 외부에 알렸던 사람이 바로 여성인데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진 리(Jean Lee) AP통신 초대 평양 지국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진 리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
진 리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

기자)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리) 제 이름은 진 리(Jean Lee)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오랫동안 미국 밖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했고요.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은 한국이나 북한 관련 현안이 나올 때마다 분석가와 평론가로 다양한 매체와 행사에 나서고 있고요. 워싱턴 D.C.에 있는 정책연구기관 ‘윌슨센터(Wilson Center)’에서 한반도 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요즘은 취재 현장에선 한 발 물러나신 건가요?

리) 아뇨. 여전히 제 핵심 역할은 현장 언론인이에요. 다만 속보 기사를 안 쓰는 것뿐이죠. 요즘 제 보도 활동은 심층 분석이나 평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안에 관한 기사도 종종 쓰고 있어요. (웃으며) 솔직히, ‘한번 언론인은 영원한 언론인’이라고나 할까요,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은 놔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안 그런가요?

기자)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처음에 언론계에 입문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리) 제 외할아버지가 언론인이셨어요. 한국에 있는 한국일보 기자셨는데요. 저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할아버지가 저를 보러 한국에서 오시거나, 제가 외할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갈 때마다, ‘기사 쓰기’ 임무를 주셨어요.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특파원이었던 거죠, 제가. 그때 썼던 게 ‘경주 답사기’, 그런 것들이었는데요. 외할아버지한테 많은 걸 배우고 기질을 물려받았어요. ‘크면 외할아버지처럼 돼야지’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기자) 외할아버지께서 한국일보 부사장을 지낸 조풍연 선생인데, 그 영향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론인이 되려는 꿈을 꾸신 거군요?

리) 네. 실제로 기자 생활도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했어요. 미네소타주 저희 고향 마을 지역 신문에 정식 기자로 기사를 쓴 게 고등학교 다닐 때였으니까요.

기자) 외할아버지가 임명한 ‘특파원’ 경험 때문에, 실제로 기자가 된 뒤에도 국제 문제에 관심을 두신 건가요?

리) 그렇죠. ‘세계 문제’를 다루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 가지 목표를 잡았는데요. 하나는 미국 내 현안 중에서 ‘이민’과 ‘인종’, ‘다양성’ 문제에 전문성을 키우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국 밖에 나가서 특파원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차근차근 실천했고, 성과도 인정받았습니다.

기자) 그 성과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게, AP통신 평양지국장 시절이죠?

리) 맞습니다. 기자로서 세계의 어떤 문제를 다루든, 항상 한반도로 돌아가서 그곳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서울에 가서,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 기자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생각한 게, ‘나중에 미국에 돌아간 뒤 특파원으로 한반도에 다시 와야겠다’는 거였어요. 결국, 2008년에 AP통신 서울 지국장으로 그 계획을 성취했는데요. 한국계 미국인이 서울 지국장을 맡은 게 AP통신 역사상 처음이었어요. 아마 그 뒤로도 없어서, 지금도 제가 유일할걸요? 평양 지국장을 맡은 건 나중 일이에요.

기자) 평양 지국장을 맡으신 계기가 뭔가요?

리) 서울 지국장을 할 때 ‘북한에 대한 접근 경로를 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어요. 솔직히 불가능한 임무처럼 보였죠. 하지만, 그게 제 임무였기 때문에, 저는 그대로 해냈습니다. 북한 측과 처음 지국 개설 협상을 시작한 게 2008년이었고요. 3년 뒤인 2011년에 외신기자 주재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에 드디어 평양 지국을 열게된 거죠.

기자) 서방 언론이 북한에 상주하게 된 게 처음이고, 그걸 주도하셨어요. 그에 앞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AP 서울 지국장을 맡은 것도 최초였다고 하셨는데, 그런 과정에 도움받거나 본받은 사람이 있나요?

리) 별로 없어요. AP통신에서만 보더라도, 제 위치까지 오른 한국계 여성이 지금도 전무해요. 솔직히 말해, 저희 세대 한국계 미국인 여성들은 언론에 입문해서 도움받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 안에서는, 제가 항상 ‘최초’였고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기자) 그렇게 본받을 사람도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언론계에 자리 잡고 인정받는 과정이 순탄했나요?

리) 제가 자라면서 항상 들은 이야기가 ‘미국에선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이런 거였어요. 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겪은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저의 생김새를 보고 먼저 판단하더라고요. 저는 소수인종이고 여성이니까요. 순수하게 언론인으로서 대해주지 않는 거예요. 인종과 성별 때문에 무시하고 낮춰 보는 풍조가 만연했어요.

기자) 기자로서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네요?

리) 물론이죠. 제가 처음 발을 들인 25년 전만 해도, 언론계는 특별히 남성 지배적인 곳이었어요. 신문 1면은 죄다 백인 남성, 특히 군 복무자 출신 기자들이 쓴 기사들로 채웠거든요. 그런데, 이런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유럽에서도 그랬어요. 여성들이 겪어야 할 ‘냉혹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무엇을 성취할 거냐’에 집중했어요. 실력으로 편견을 깨야 하니까요.

기자) 지금은 실력으로 인정받으셨는데,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까?

리) 솔직히 말해, 지금도 날마다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어요. 제가 기자로서 책임자급 자리에 올랐고,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는데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평가를 못 받을 때가 많아요. 같은 보도 활동을 해도 남성에게 더 평가가 후하고, 특히 백인 남성에게 좋은 평가가 가는 게 현실입니다. 저 같은 ‘한국계 여성’이 평생 겪어야 할 어려움이에요.

기자) 이제 북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북한의 ‘언론 자유’ 실태는 어떻습니까?

리) 북한엔 언론 자유가 없습니다. 당국이 언론 매체들에 원하는 건 ‘프로파간다(선전전)’ 뿐이에요. 정보 유통이 자유롭게 안 되도록 통제하고 있고요. 더욱이 나라 밖 소식은 흘러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국경까지 봉쇄한 상태라, 북한 주민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기자) 그럼 북한의 ‘양성평등’ 상황은 어떤가요?

리) 그건 좀 더 복잡한 양상이에요. 우선 (남존여비에 관한) 아시아 특유의 문화가 있잖아요. 게다가 사회주의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여성들도 동등하게 노동하도록 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거죠.

기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최근 북한 정권 ‘2인자’로 자리 잡는 것 같은데, ‘양성평등’ 개선의 신호는 아닙니까?

리) 그게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김여정(부부장)이 선택받은 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김씨 일가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니까요. 김일성(주석), 김정일(국방위원장), 김정은(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가족 간 권력 승계에 맞춘 거예요. 김여정의 등장은 양성평등 상황이 개선되는 게 아니고, 김씨 일가의 권력 구조가 강화되는 것, 그뿐이에요. 김씨 일가 밖에서는,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매우 드물잖아요.

기자)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리)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미국이라고 상황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쪽에서, 상대방의 자유를 넓혀주지 않으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언론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득권자들이 알리고 싶어 하는 사실과 실체적 진실을 구별해 내야 해요.

기자) 기득권자들이 알리고 싶어 하는 사실, 그리고 실체적 진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어떻게 구별합니까?

리)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걸 언론이 보도해야 한다고 칩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게 ‘어떤 범주(range)에 맞춘 사실’로 보도되길 바랄 거예요.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요. 하지만 제대로 된 기자는 이게 모든 배경과 인종, 관점, 경험에 비춰봐도 보편타당한가를 따져봐야 돼요. 어느 관점에서 봐도 부정할 수 없는 게 실체적 진실이에요. 저한테는 이걸 따지는 과정이, 아주 아주 기본적인 취재 보도 원칙입니다.

기자) 정말 중요한 말씀 해주셨네요.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밝혀주시죠.

리)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북한 문제를 떠나진 않을 겁니다. 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굉장히 드무니까요. 저처럼 북한에 직접 들어가 살면서, 곳곳을 다니며 취재할 기회를 가졌던 미국 언론인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제가 그곳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알게 되고, 몸으로 배운 것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오늘 대담도 그런 일 중의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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