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언론인 대담] NPR 초대 서울지국장, 엘리스 휴

2020.8.12 2: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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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NPR 초대 서울지국장, 엘리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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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최근 몇 년 새, 미국 주요 언론에서 한반도 이야기를 다루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한국 문화ㆍ예술 산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미국 언론이 한반도를 주목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뭔지, 공영방송 NPR의 초대 서울 지국장을 지내고, 한국과 북한 관련 사안을 중점 보도해온 엘리스 휴(Elise Hu) 기자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NPR 초대 서울지국장을 지낸 엘리스 휴 기자.

기자)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 해주시죠.

휴) 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엘리스 휴입니다. 언론인으로서, 공영방송 NPR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요. NPR 서울 지국을 개설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요. 지금도 NPR에서 일하면서, 책을 몇 권 쓰고 있습니다. 유명한 강연 행사인 ‘테드’의 인터넷 방송, ‘테드 톡스 데일리(TED Talks Daily)’를 주관하고 있고요. NPR 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의 책임진행자(host-at-large)를 맡고 있습니다. 

기자) 진행하시는 것 중에 ‘퓨처 유(Future Youㆍ미래의 당신)’이라는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가 좋던데요?

휴) 아, 2018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뒤 시작한 건데요. NPR 텔레비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예요. 제목처럼 ‘미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특별히 ‘인간의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같이 선구적인 사람들이 미래와 인간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잖아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 쉽게 풀어주는 시간도 있고요. 미군 병사들이 공상과학 영화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과정을 전망하는 이야기도 있어요. 

기자) 아주 흥미로운 소재인데, 그런 프로그램을 구상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휴) 어느 범주까지 인간의 능력이 확대될 수 있을까,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미국 기술기업들이 인간의 경험과 능력을 증강(augmentation)해주는 다양한 장비들을 만들고 있잖아요. 이게 2050년이나 2060년쯤 되면 어디까지 가고, 그런 장비들을 활용해 인간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전망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자) NPR 서울 지국을 만드신 이야기를 해 보죠. 한국 생활은 어땠습니까?

휴) 아, 정말 즐거웠어요. 한국은 아주 아주 역동적인 곳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밖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본 적이 없는데요. 향수병이나 그런 걸 전혀 느낄 틈이 없었어요. 저희 남편과 딸도 한국 생활을 아주 좋아했고요. 서울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이도 둘이나 더 낳았어요. 

기자) 한국말을 좀 할 줄 아십니까?

휴) 아뇨. 제가 언어를 전혀 이해 못 했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것이 감각에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저는 한국에서 어린 아기나 다름없었어요. 그래서 더 한국의 모든 것을 쑥쑥 흡수할 수 있었던 거죠. 아기들이 배우는 게 빠르잖아요.

기자) 한국에서 어떤 걸 배웠습니까?

휴) 세계를 보는 관점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한국과 북한이 맞서고 있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잖아요. 그런 지정학적 중요성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떤 현상으로 발현되는지 현장에서 경험한 거죠. 이렇게 세계관이 넓어지면서, 저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한 단계 더 올라섰어요. 더 흥미롭고, 이해력 깊고, 관용 있는 언론인이 된 거죠. 

기자) 서울에 지국을 만든 이유는 뭡니까? 일본 도쿄 같은 다른 곳에 만들 수도 있었는데요.

휴) 이미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지국을 운영중이었어요. 거기선 중국 소식을 전담하기 때문에,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을 담당할 지국을 열어야 했는데요. 가장 합당한 선택이 서울이었어요. 북한 문제를 가까이 취재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죠. 당시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도발 행위를 거듭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미사일 시험 발사도 많이 했었고요. 

기자)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일본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한국에 지국을 정했단 얘기인가요?

휴) 다른 이유도 있어요. 일본은 뉴스 중요도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기울고 있는 나라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올라가고 있고요. 물론 일본은 아직도 세계 3위 경제 대국이기 때문에, 경제 뉴스는 일본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북한 안보 현안 외에, 한국의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이 세계에서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했어요.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하는 엘리스 휴 NPR 서울지국장.

기자) 세계에서 한국의 사회ㆍ문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자) 한국 영화, 한국 음악, 한국 연속극, 한국 미용법의 인기를 보세요. 지금 아시아 전역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충성도가 높아지는 중이잖아요. 인문학에서, 정치력이나 군사력을 ‘하드 파워(hard power)’라고 하고, 사회ㆍ 문화적 영향력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고 하잖아요. 한국은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지배적인 나라가 되고 있어요. 

기자) 잘 알겠습니다. 한국 출신 인기 악단 ‘BTS(방탄소년단)’을 미국 언론에서 처음 다룬 사람 중 하나가 휴 기자잖아요. 휴 기자의 개인적 이야기로 돌아가죠. 언론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뭡니까?

휴) 언론인이 되겠단 다짐을 어릴 적부터, 마음 깊이 했어요. 8살 때였는데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 영재 프로그램 같은 게 있었어요. 방송국 견학 시간에, 한 30분 동안 뉴스 진행자가 돼보는 실습을 했는데요. 그 경험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때 ‘나는 커서 언론인이 될 거야’라고 주변에 말했는데, 그 말이 제 인생을 지탱했던 겁니다. 

기자) 그런데, 공영방송인 NPR를 택한 이유는 뭔가요?

휴) NPR은 미국 문화에서 중요한 매체니까요. 사실 제가 NPR을 택한 건 아니고요, NPR에서 저를 뽑은 겁니다. 저는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텍사스주에서 자랐는데요. 텍사스에 있는 작은 지역 언론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보도 활동을 높이 평가한 NPR 측에서 언론인 단체를 통해 연락을 해왔어요. 저는 흔쾌히 응답했죠. 그래서 워싱턴 D.C.에 있는 본사에서 일하다가, 서울 지국 근무를 마친 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컬버시티에 있는 서부총국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기자) 서울 지국은 아직도 운영중입니까?

휴) 네. 제 후임으로 앤서니 큔(Anthony Kuhn) 지국장이 2018년 8월 이후 서울 지국을 맡고 있어요. 큔 지국장은 아주 오랜 경력을 가진 아시아 전문 언론인입니다. 

기자) 여성으로서 공영방송의 해외 지국장을 역임하고, 지금 책임 진행자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휴)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여자라서 힘들었던 건 아니에요. 양성 모두, 성공적인 언론인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 지금 미국 언론계는 다른 어떤 산업 분야보다 양성평등이 진전된 곳이라고 봐요. 그래서 실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자든 남자든 일을 잘하면 승진도 하고, 중요한 자리를 맡을 수 있습니다. 

기자) 미국 언론계에선 실력만 있으면 인정받고, 성차별은 없다는 말씀인가요?

휴) 네, 제 경험에 비춰보면 그래요. 저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고, 이 안에 들어와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런 과정과 결과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젊은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감을 갖고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세우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실력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주변 상황에 불평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기자) 휴 기자가 중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잖아요. 인종적 배경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휴) 그건 있었습니다.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요. 먼저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직 미국 사회에 남아있어요. 순종적이다, 수동적이다, 방어적이다, 소극적이다, 이런 관념들요. 고쳐야 할 나쁜 일들이 있어도, 아시아 여성들은 문제 제기를 안 하고 그냥 받아들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론인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취재원들이 많았어요.

기자)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또 다른 하나는 뭡니까?

휴) 또 다른 문제는, 아시아계 여성이 ‘도구화’된다는 점이에요. 텔레비전 뉴스 채널 한 곳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나왔다고 하면, 인종 배려로 해석돼서, 다른 채널이 그냥 따라 합니다. 당사자의 실력과 역량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종 안배를 위한 수단이 되는 거죠. 이런 현상이 역설적으로, 인종차별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해당자가 개별 언론인으로서 존중받는 게 아니고, 그냥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는 거니까요. 

기자) 아쉽지만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향후 계획을 밝혀주시죠.

휴) 지금 쓰고 있는 책을 완성하는 게 당면 목표에요. 내년에 내놓을 예정인데요. 제목은 ‘잡티 없음(FLAWLESS)’입니다. 한국 미용법(K-beauty)에 관한 책인데요. 한국의 미용ㆍ화장품 산업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됐고, 거대한 인기를 끌게 됐는지 분석하는 내용이에요. 아울러, ‘양성평등’에 관한 내용도 들어가 있는데요. 예쁘게 보이는 게 사회적으로 왜 그렇게 중요한지, 여기에 여성들이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에 관해 쓰고 있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휴) 두 가지 사항 모두, 진전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다고 봅니다. 두 가지 가치 모두, 민주주의의 근본인데요. 더 많은 세계인이 발전 과정에 동참해야 합니다. 성취하기 어려운 과제여서,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기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계기가 되면, 오늘 못다 한 이야기 마저 해주시죠.

휴) 네, 언제가 좋을지 말씀해주세요. 또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NPR 책임 진행자 엘리스 휴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