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째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프랭크 L. 바움의 저서 '오즈의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의 혁신,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 오늘은 주말을 앞두고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한 편 소개해드립니다. 조상진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오늘 소개할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입니다. 1939년 8월에 개봉했으니 올해로 87년 된 영화인데요, 지금도 많은 미국인이 첫손에 꼽는 고전 영화입니다. 오늘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미국 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먼저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짚어볼까요?

기자: 네. '오즈의 마법사'는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1900년에 쓴 동화를 원작으로, 영화사 엠지엠(MGM)이 1939년에 만든 뮤지컬 영화입니다. 주인공 도로시 역은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주디 갈런드가 맡았는데요, 열세 살 때부터 엠지엠과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해 온 배우였습니다. 갈런드가 부른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사실 촬영 도중 세 차례나 삭제될 뻔했는데요, 이야기 흐름을 늦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끝까지 살아남아 그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훗날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역대 최고의 영화 주제곡'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갈런드 자신도 이 영화로 아동 배우에게 주는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는 갈런드가 평생 받은 유일한 오스카상이었습니다. 제작비는 당시 기준 약 270만 달러가 들었는데, 이는 당시 엠지엠의 최고 수준 제작비 중 하나였습니다.

진행자: 이 영화,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앞선 작품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그해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더불어, 삼중 색분해 방식의 컬러 기술인 '테크니컬러'를 전면적으로 사용한 초기 영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캔자스의 흑백 농장 장면에서 토네이도를 만나 총천연색 오즈의 나라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지만 당시 관객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경험이었겠죠.

진행자: 그런데 이 영화 처음부터 아주 큰 사랑을 받았을 거 같은데, 실제 처음 개봉했을 때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1939년 8월 15일 할리우드에서 시사회를 가진 뒤 8월 25일 정식 개봉했는데, 제작비를 약 270만 달러를 들인 데 비해 흥행 수익은 300만 달러에 그치면서 수익적으로는 기대만큼의 흥행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명작으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던 겁니다. 이 영화가 진짜 이익을 남긴 건 10년이 지난 1949년 재개봉 때였습니다.

진행자: 그럼 지금처럼 미국인에게 널리 사랑받는 고전 영화로 자리 잡은 계기는 뭔가요?

기자: 바로 텔레비전 때문입니다. 1956년 CBS 방송이 이 영화를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방영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 소개됐는데요, 이후 수십 년 동안 매년 명절이나 특별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방영되는 사실상의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오즈의 마법사’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극장 개봉보다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인의 마음속에 훨씬 더 깊이 자리 잡은 셈입니다.

진행자: 영화 속 명대사와 소품들도 지금까지 미국 문화 곳곳에 남아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도로시가 신은 빨간 구두, 이른바 '루비 슬리퍼'는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소품이 됐고요, "집만 한 곳은 없다"는 대사나 "여긴 더 이상 캔자스가 아닌 것 같아"라는 대사는 지금도 일상 대화에서 인용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4년 12월에는 주디 갈런드가 신었던 루비 슬리퍼 한 켤레가 경매에서 3천250만 달러에 낙찰돼, 영화 소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진행자: 87년이나 된 영화의 소품이 그렇게 비싸게 팔릴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있다는 뜻이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 영화의 프리퀄격인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 열풍이 더해지면서 관심이 다시 커졌습니다. 프리퀄은 원작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을 나중에 영화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데요. '위키드'는 작가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1995년에 쓴 소설을 원작으로, 200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2024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미국 내에서만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작 영화로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해에는 후속편 '위키드: 포 굿(Wicked: For Good)'도 개봉했는데요, 서쪽 나쁜 마녀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를 다룬 이 이야기들도 결국 모두 '오즈의 마법사' 세계관에서 출발한 겁니다.

진행자: 결국 87년 전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지금까지 미국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장면, 도로시의 빨간 구두, 그리고 "집만 한 곳은 없다"는 대사까지, 87년이 흘렀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여전히 미국인의 어린 시절과 추억, 그리고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화로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네, 87년째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조상진 기자와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