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 역대 대통령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미국 제10대 존 타일러 대통령에 관해 전해드립니다.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하면 부통령이 곧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건국 초기에는 이 원칙이 헌법에 분명하게 규정돼 있지 않았는데요, 존 타일러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그 상황을 맞아 대통령직을 승계한 대통령입니다.
진행자: 전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초의 부통령이었군요. 미국 대통령 승계 제도의 첫 사례이기도 했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할 경우 부통령이 정식 대통령이 되는지, 아니면 권한과 의무만 임시로 행사하는지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이 취임 31일 만에 숨지자, 존 타일러 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정식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고 대통령 선서를 했습니다. 이 결정은 '타일러 선례(Tyler Precedent)'로 불리며 이후 대통령 승계의 기준이 됐고, 1967년 발효된 수정헌법 제25조를 통해 헌법에 명확하게 규정됐습니다.
진행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통령이었다가 갑자기 대통령이 됐는데, 존 타일러는 어떤 정치인이었습니까?
기자: 존 타일러는 1790년 버지니아주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버지니아 주지사와 연방 법원 판사를 지낸 인물이었죠. 존 타일러는 변호사로 활동한 뒤 연방 하원의원, 버지니아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고,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보다는 각 주의 권리를 중시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184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해, '티퍼커누와 타일러도(Tippecanoe and Tyler, Too)'라는 유명한 선거 구호를 내세웠는데요, 이 구호를 담은 선거 노래와 대규모 유세, 각종 홍보물을 활용하면서 미국 최초의 현대식 대통령 선거운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해리슨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미국 제10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진행자: '히즈 액시던시(His Accidency)', 즉 ‘우연히 대통령이 된 각하'라는 조롱 섞인 별명도 있었고, 개인사에서도 미국 대통령 역사에 남는 기록을 세웠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His Accidency'는 대통령 존칭인 ‘히즈 엑설런지(His Excellency)’를 비튼 표현으로, 반대파들이 타일러의 대통령 승계를 조롱하며 붙인 별명입니다. 하지만 타일러는 자신이 정식 대통령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러한 결정은 미국 대통령 승계 제도의 선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개인사에서도 기록을 남겼는데요, 첫 부인이 1842년 세상을 떠난 뒤, 2년 뒤인 1844년 자신보다 30살 어린 줄리아 가디너와 재혼해 재임 중 결혼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또 두 아내와의 사이에서 모두 15명의 자녀를 둬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녀가 가장 많았습니다.
진행자: 대통령 승계 원칙을 세웠지만, 대통령이 된 뒤의 정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죠?
기자: 그렇습니다. 휘그당 소속이었지만, 대통령이 된 뒤 당의 정책 노선과 계속 충돌했습니다. 결국 국무장관을 제외한 각료들이 집단 사퇴했고, 휘그당은 현직 대통령인 타일러를 당에서 제명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소속 정당에서 제명된 미국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습니다.
진행자: 정치적으로는 고립됐지만 대통령으로서 성과도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남겼습니다. 영국과 웹스터-애슈버턴 조약을 체결해 메인주와 캐나다 사이를 비롯한 북동부 국경 분쟁을 해결했고, 청나라와 왕샤 조약을 맺어 미국이 중국과 공식적인 통상 관계를 확대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또 임기 말에는 텍사스 병합을 적극 추진해 의회의 병합 공동결의안을 승인했습니다.
진행자: 텍사스 병합은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텍사스는 독립한 공화국이었는데요, 타일러는 텍사스를 미국에 편입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병합 조약은 상원에서 한 차례 부결됐지만, 타일러는 양원 공동결의 방식으로 다시 추진해 퇴임 사흘 전인 1845년 3월 1일 결의안에 서명했습니다. 텍사스가 미국의 28번째 주가 된 것은 후임 제임스 K. 포크 대통령 재임 때였지만, 병합의 길을 연 주역은 타일러 대통령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타일러 대통령은 퇴임 후 남부연합 편에 서면서 더욱 논란이 됐죠?
기자: 그렇습니다. 남북전쟁 직전에는 남과 북의 타협을 위해 노력했지만, 협상이 실패하자 고향 버지니아주와 함께 남부연합 편에 섰습니다. 남부연합 임시의회에서 활동한 뒤 정식 의회 의원으로도 선출됐지만, 의회에 출석하기 전인 186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도 매우 이례적이었는데요, 미국 연방정부는 타일러 대통령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애도하지 않았고, 장례식은 남부연합 정부 주관으로 치러졌습니다. 관도 미국 성조기가 아닌 남부연합기로 덮였습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사망 후 연방정부의 공식 애도를 받지 못한 유일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행자: 타일러 대통령과 관련된 유적지도 남아 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살았던 버지니아주 셔우드 포리스트 플랜테이션(Sherwood Forest Plantation)에 타일러 가문의 유품과 가구가 보존돼 있고요, 또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할리우드 묘지에는 타일러 대통령의 묘와 기념비가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 최초로 대통령 승계 원칙을 확립한 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 이야기, 김미옥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