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한 경제 3년 연속 성장, 주민 생활 개선과는 별개”

북한 나진항 주변 마을 모습 (자료사진)

북한 경제가 3년 연속 성장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일반 주민들이 이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북한 경제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생산 기반에 대한 투자 부족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에 의존한 성장 구조로는 장기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31일 '2025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5%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는 2023년 3.1%, 2024년 3.7%에 이어 관측된 3년 연속 성장입니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따른 국경 봉쇄 여파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역성장했습니다.

한국은행은 북한의 경제 성장을 이끈 요인으로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와 대중국 무역 증가, 국가 정책사업 추진 등을 꼽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 규모가 커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성과가 주민들의 생활 여건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카네기멜런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은 4일 VOA에 "북한 경제는 매우 분절된 구조"라며 "경제 성장의 혜택을 일반 주민들이 누리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스탠가론 연구원은 "북한은 군수 생산과 같은 일부 부문이 일반 경제와 상당 부분 분리돼 있다"며 "다른 나라처럼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이 사회 전반이나 주민들에게 폭넓게 확산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영희 동국대학교 북한연구소 박사는 이번 성장의 핵심은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느냐'보다 '무엇이 성장했느냐'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재정학을 전공하고 무역 분야 실무를 담당하다 2012년 한국으로 탈북한 김 박사는 무기류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화학공업이 7.8%로 산업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데 주목했습니다.

북러 군사협력 확대에 따른 무기 생산 증가와 외화 유입이 이번 성장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로 분석되는데, 이렇게 확보한 외화는 당과 군이 관리하는 부문으로 유입될 뿐 주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희 / 동국대학교 북한연구소 박사
"사실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고 거기서 들어오는 외화 확보라든가 이런 부분은 경제 부문으로 돌려줄 가능성이 크지 않아요. 그러면 결국은 군수 부문에 들어가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 과실이 권력층에 집중되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톰 라마지 정책연구원은 3일 VOA에 "북한은 경제 규모가 커지더라도 그 혜택이 주민들에게 고르게 돌아가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라마지 연구원은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은 평양과 권력층에 우선 배분되는 경향이 있고, 지방 주민들과 취약계층은 물가 상승을 따라갈 만큼 소득이 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주민들의 구매력이 함께 개선되기는 어렵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한 GDP 증가만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2012년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 탈북민은 외화 유입 등으로 북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주민들이 생활의 변화를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익명)
"소비재 생산을 위한 생산 수단에는 거의 투자를 안 해요. 소비재 생산에 투자를 해서 사람들이 먹는 문제, 입고 쓰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북한은 거기에는 투자를 안 해요. 그러니까 경제 성장의 효과를 주민들이 체감하지 못하죠."

이 탈북민은 외화 유입으로 장마당 경제가 일시적으로 활기를 띨 수는 있지만 장마당 물가가 내려가거나 주민들의 생활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의 현실적인 경제 지표는 경제성장률이 아닌 쌀과 생필품 가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3년 연속 이어진 것으로 관측된 북한 경제 성장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평가를 내놨습니다.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한미경제연구소(KEI) 연구원은 북한의 최근 성장은 대규모 자본 투자보다 시장화에 따른 노동 생산성 향상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 KEI 연구원
"경제가 성장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노동이 늘어나거나 자본 투자가 늘어나거나 외부 기술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세계적인 기술 발전의 영향을 일부 받고 있습니다. 또 주민들이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노동 투입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본 투자 측면에서는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 경제가 시장화에 따른 변화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톰 라마지 정책연구원은 북한이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불법적이거나 비전통적인 수입원으로 메우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라마지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북한의 대중국 공식 교역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 증가한 것은 북한 경제가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면서도 "2026년 들어서만 중국에 대한 북한의 무역적자가 8억5천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러한 대중 무역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러시아의 북한군 파병 대가와 암호화폐 탈취 등 사이버 범죄, 회색시장 거래와 같은 불법적이거나 비전통적인 수입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분석을 내놨습니다.

김영희 박사는 북러 군사협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무기 공급과 인력 파견 등을 바탕으로 일정한 성장세가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전력난과 원자재 부족, 대중국 교역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