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기자) 8월 15일은 광복 8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북한 주장하고 있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이 사실인지, 아닌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올해는 광복 81주년인데,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김일성이 해방을 주도했다고 믿고 있나요?
기자) 그렇게 믿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김일성 항일투쟁 학습이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 그리고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체계적으로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는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 시절’이라는 동화와 노래를 배웁니다. 이어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고등중학교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역사’를 배웁니다. 그러니까 학교와 사회생활에서 15년 이상 김일성 항일투쟁을 학습하는 겁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항일투쟁은 단순히 ‘역사 과목’이 아니라 주민들의 충성심과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사상적 기반입니다.
진행자) 하나씩 짚어보죠.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주도로 8·15 광복이 됐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요?
기자) 사실이 아닙니다. 2차세계 대전 중 벌어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은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당일인 8월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쇼와 천황은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한 겁니다. 한반도를 해방시킨 것은 미국과 소련이지 김일성이 아닙니다.
진행자) 북한은 김일성이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 해방을 이뤘다고 주장하는데요?
기자)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1930년대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항일 유격대는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동북항일연군’이었습니다. 김일성 역시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하급 간부(군사장, 여장)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명칭을 가진 군대나 사령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을까요?
기자) 1940년대 들어 일제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항일 유격대가 괴멸 위기에 처하자, 김일성과 대원들은 소련으로 탈출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소련군 산하의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에 편입되어 소련 군인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의 지휘를 받거나 소련군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김일성의 ‘주체적 독립 영웅’이라는 신화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김일성이 창설한 군대로 일제를 무찔렀다’는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가공의 군대를 만든 겁니다.
진행자)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을 때 김일성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기자)광복 당시 김일성은 한반도가 아닌 소련 극동 지방의 하바롭스크 인근 비야츠코예(Vyatskoye) 기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계급은 대위였습니다. 광복 직후 김일성은 바로 입국하지 못하고, 약 한 달 뒤인 1945년 9월 19일 소련 수송선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비밀 해제된 뒤 공개된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정찰보병여단) 관련 정식 군사 기밀문서, 당시 군인들의 증언 문서 등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진행자)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한 것은 사실 아닌가요?
기자) 네, 사실입니다.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 지역에서 중국공산당 산하 항일연군에 들어가 항일 무장 투쟁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김일성의 항일 투쟁이 실제 행적에 비해 크게 과장되고 신화화되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천보 전투는 1937년 6월 4일 밤,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면을 기습 공격한 사건입니다. 당시 유격대는 일제 경찰 주재소에 사격을 가하고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기물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보천보 사건에 대해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의 최고 분수령이자 조선 해방의 기틀을 마련한 세기적 사건”으로 부풀려서 김일성 1인 독재와 권력 세습 정당성의 핵심 근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 백두산이라는 것도 그런 역사 왜곡 중 하나인가요?
기자) 네, 김정일 백두산 출생설도 북한의 역사 조작 사례입니다. 옛 소련 측 기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극동 지방 하바롭스크 인근 비야츠코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인 ‘유라 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그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북한 당국은 양강도 삼지연군에 ‘백두산 밀영’이라는 가상의 항일 기지를 만들고 이곳을 ‘김정일의 생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또 1941년생인 김정일의 출생 연도를 1942년으로 1년 늦췄습니다.
진행자) 권력을 잡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역사 조작을 한 것인데, 김정은은 어떻습니까?
기자) 김정은 역시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역사 조작과 신화화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은 후계 과정이 2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신동’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살 때 승용차를 몰았고, 8살 때 총을 쏴 명중시켰다”는 겁니다. 또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대중적 향수를 이용하기 위해 옷차림, 머리 모양, 걸음걸이 등을 모방했으며, 이를 ‘백두혈통의 완벽한 계승’으로 포장했습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8·15 광복절을 맞아 김일성 일가의 역사 왜곡 사례를 살펴봤습니다.